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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인가, 무분별한 철부지인가

극과 극의 평가, 미 국무부 외교전문 폭로한 위키리크스 편집장

줄리언 어산지는 누구인가
등록 2010-12-09 15:41 수정 2020-05-03 04:26

지난 4월, 가느다란 눈에 섬세한 얼굴을 가진 한 남자가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미군 아파치 헬기가 12명의 민간인을 살상하는 극비 동영상을 공개하며 세계인의 이목을 단숨에 끌어모았다. 미국 은 그에 대해 “중간톤의 음성에 신중한 태도로 조심스럽게 단어를 선택해 인터뷰에 응했고, 사생활 부분은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다”고 평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이 남자는 자신을 2006년 12월 설립된 내부고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의 편집장 줄리언 어산지(39)라고 소개했다.

188개국 공개수배에 살해 주장까지

지난 10월23일 위키리크스 편집장 줄리언 어산지가 미군의 이라크전 비밀문서를 폭로한 뒤 영국 런던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REUTERS/ LUKE MACGREGOR

지난 10월23일 위키리크스 편집장 줄리언 어산지가 미군의 이라크전 비밀문서를 폭로한 뒤 영국 런던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REUTERS/ LUKE MACGREGOR


언론 자유, 검열 철폐, 정보 공유 등을 기치로 내건 위키리크스의 정보유통 방식은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사람들은 끔찍한 이라크 동영상이 날것 그대로 전세계에 중계됐을 때, 우리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폭로의 세기’가 왔음을 직감했다.
1974년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사임을 불러온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자. 내부고발자 ‘디프스로트’는 라는 거대 언론사의 직업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에게 닉슨 정권의 선거 방해와 부정·수뢰·탈세에 관한 극히 한정된 정보를 누설했을 뿐이다. 정보는 특정 인물들에게 한정됐고, 사실이 확인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에 견줘 위키리크스는 정보기술(IT)의 힘을 빌려 ‘엄청난 양의 문서’를, ‘매우 효율적’으로, ‘빠른 시간’에, ‘전세계에 전파’하는 새로운 정보 공유의 모델을 만들어냈다. 정보 유출자로 지목되는 브래들리 매닝(23) 육군 일병은 25만 건에 달하는 막대한 정보(1.6기가)를 CD를 통해 손쉽게 내려받았다. 지난 7월 공개된 아프간전 관련 국방부 비밀문서 9만여 건, 10월의 이라크전 비밀문건 40만여 건, 그리고 이번에 공개된 미 국무부 외교전문 25만여 건에 이른다. 이를 전해받은 위키리크스는 그 정보를 누리집(www.wikileaks.org)에 올려 원하는 이들은 언제 어디서든 접속해 볼 수 있게 했다.
11월28일 미 외교전문 공개 이후 어산지는 세계 최고의 ‘이슈메이커’로 떠올랐다. 그는 선정 ‘올해의 인물’ 투표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고, “다음 목표는 미국의 대형은행”이라는 그의 말이 보도된 이후 미국 월스트리트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그만큼 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한쪽에서는 어산지를 더 투명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고난의 십자가를 진 ‘메시아’로 추어올리지만, 반대쪽 사람들은 그를 ‘무분별한 철부지’로 평가절하한다. 그는 현재 스웨덴 여성 2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전세계 188개국에 공개수배된 상태다. 어산지의 변호인인 마크 스테판은 “현재 우리 법률팀이 스웨덴 사건의 배후에 ‘이번 문서 공개의 배후에 있는 사람들을 처벌하겠다’는 미국 정부가 있는 게 아닌지 확인하고 있다”며 “나는 그가 박해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견줘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의 한 보좌관은 “그는 살해돼야 한다”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고,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 등 미국의 극우주의자들은 “위키리크스를 알카에다와 같은 테러조직처럼 다뤄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 는 지난 11월30일 어산지에 대한 분석 기사에서 “그는 매우 복잡한 인간”이라고 평했다. 그는 1971년 오스트레일리아 북부 퀸즐랜드주 타운즈빌에서 유랑극단을 운영하는 자유분방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어산지가 태어난 뒤 얼마 안 돼 이혼했다. 그는 올해 초 와의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톰 소여 같은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14살이 될 때까지 37번 이사를 다녔고, 10대 때부터 컴퓨터 해킹을 시작했다.

“자유 시장은 자유 정보를 전제로 한다”
위키리크스 누리집 화면

위키리크스 누리집 화면


그는 지난 11월 미국 와의 인터뷰에서 “해커로 활동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16살 때 모친이 사준 컴퓨터와 모뎀을 통해 처음 정보의 바다를 접하게 된다. 그는 해커 시절 ‘뚫고 들어간 컴퓨터 시스템을 망치지 않기’ ‘정보를 변경하지 않기’ ‘획득한 정보를 공유하기’ 등의 원칙을 지켜왔다고 말했다. 언론들은 “해커로서의 경험이 지금 그가 갖고 있는 권위의 부정, 비밀에 대한 증오 등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어산지는 “나는 여러 곳에서 다양한 이들에게 배웠기 때문에 특정한 철학이나 경제학파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스스로를 ‘시장원리주의자’(libertarian)라고 부르는 데 동의했다.
경제학에서는 시장 참여자 사이의 이런 정보 격차를 ‘정보의 비대칭성’이라고 부른다. 그는 정보의 비대칭성을 줄이면 궁극적으로 기업과 국가에도 이익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위키리크스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기업들은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위키리크스의 일은 비윤리적인 회사에 ‘나쁜 평판’이라는 (사회적) 세금을 물리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종종 권력과 특권 등에 혐오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지난 12월1일 과의 인터뷰에서 “우리(위키리크스)는 세계를 좀더 시민적으로 만들려는 조직”이라며 “법이란 힘있는 사람이 ‘이것이 법이다’라고 말하는 게 아니고, 힐러리 클린턴이 ‘이게 법이다’ 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만을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는 주장에는 “우리는 철저히 주어진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만약 우리가 탈레반에 대한 자료도 공개하는 게 어떠냐고 사람들이 말하면 나는 ‘우리가 탈레반에 대해 말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겠습니다.” 그는 미국보다 더 폐쇄적인 중국이나 러시아에 대해서는 “그들도 조만간 내부고발자에 의해 개혁될 가능성이 크다”며 “중국 정부가 언론의 자유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언론의 자유가 아직 개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긍정적 신호”라고 해석했다.

더 깊이 숨어버린 미 정부의 극비 자료
그의 활동에 대해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미국 과학협회에서 정부 기밀에 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스티븐 애프터굿은 “위키리크스는 단순히 비밀에 대한 공격을 하고 있을 따름”이라며 “위키리크스는 단순히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공개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어산지가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세계를 더 폐쇄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 정부가 극비 자료를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는 더 깊숙한 곳에 꽁꽁 감춰두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 비밀이 존재하는 한 이를 숨기고 캐내려는 인류의 숨바꼭질은 영원히 계속될 듯하다.
길윤형 기자 한겨레 국제부문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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