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중국 통합’에 흔들리는 광둥어

아시안게임 앞두고 TV 프로그램 푸퉁화 전환에 광둥성 주민들 반발…
수천 년 이어온 언어 전통을 국가가 흔들 수 있나
등록 2010-08-04 20:39 수정 2020-05-03 04:26
지역민이 수천 년 동안 사용한 언어를 국가가 바꿀 수 있을까. 지난해 9월6일 중국 광시성 좡족자치구 난닝시의 한 극장에서 광둥어 경극을 공연하고 있다.

지역민이 수천 년 동안 사용한 언어를 국가가 바꿀 수 있을까. 지난해 9월6일 중국 광시성 좡족자치구 난닝시의 한 극장에서 광둥어 경극을 공연하고 있다.

중국이 ‘캔토니즈’로 불리는 광둥어 탄압 논란으로 때아닌 몸살을 않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오는 11월 광둥성의 성도인 광저우시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시 인민정치협상회의가 의 광둥어 프로그램 방송을 중국의 표준어이자 ‘만다린’으로 불리는 푸퉁화(普通話)로 전환할 것을 제안하면서 촉발됐다. 그렇지 않아도 광둥어를 사용하던 홍콩이 중국으로 귀속된 뒤 중국 정부의 푸퉁화 확대 정책에 따라 광둥어 입지가 더욱 좁아졌다고 생각하는 광둥어 사용자들이 이를 ‘광둥어 탄압’으로 간주하고 반발하는 것이다.

 

통역이 있어야 소통되는 7개 방언들

이런 상황에서 광저우시 초등학교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푸퉁화만 사용할 것을 강요하면서 광둥어를 사용하는 어린이들에게 체벌을 가한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둥관시의 한 공원에 서 있는 위안충환 장군의 석상 받침대에 새겨진 광둥어 명판이 뚜렷한 이유 없이 지방정부에 의해 철거되면서 사태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 광둥성 주민 2천여 명은 이를 ‘광둥어 말살정책’이라며 휴일인 지난 7월25일 광저우 시내 중심가에서 항의집회를 열었다. 홍콩 주민도 ‘중국의 유산을 보호하고 모어를 지키자’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8월1일 항의집회를 한다. 집회 참석자들은 주로 1980~90년대에 태어난 20∼30대 젊은 층이었으며, 이들은 ‘나는 광둥어를 사랑한다’ 등의 글귀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채 광둥어 노래를 부르며 시위를 벌였다.

유구한 전통과 광활한 영토를 자랑하는 중국은 일찍이 진시황 때 문자의 통일을 이루었다. 그러나 복잡다단한 역사를 지닌 중국에서 언어 통일은 아직도 요원하다. 중국에는 통역이 없으면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7개 방언 체계가 있다. △한족 공동의 기초 방언으로 한족의 약 70%가 사용하는 북방(北方)방언 △상하이·장쑤·저장 등지에서 사용하는 오방언 △후난성 일대의 상(湘)방언 △장시성 대부분 지역의 감방언 △광둥성 동부, 푸젠성 서부 등지의 객가(客家)방언 △푸젠성 푸저우 말로 대표되는 민방언 △광둥성 광저우 말로 대표되는 월방언 등이다.

한국의 방언이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는 지방적 특징에 불과한 반면, 중국 방언은 7대 방언 내부에서 지역적 차이가 존재하는 ‘차(次)방언’이라는 등급이 있을 정도로 복잡하다. 일반적으로 방언에는 민중의 꾸밈없는 삶의 모습과 그들이 지닌 꿈과 욕망의 흔적이 담겨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광둥어 사용자들은 푸퉁화의 확대가 광둥어는 물론 광둥 문화와 광둥인의 삶을 앗아간다고 우려한다. 중국어의 중심에는 표준어인 푸퉁화만 자리잡고 그 변방에 위치한 방언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광둥어는 1911년 신해혁명을 통해 중화민국이 수립됐을 때 표준어가 될 수도 있었다. 아시아 최초의 공화정 국가인 중화민국 수립 뒤 ‘중국의 국부’로 불리는 쑨원 등 중국 혁명지도자들은 표준말을 정하기 위한 표결을 했다. 그 결과 과반 언어인 만다린, 즉 푸퉁화가 광둥어를 가까스로 누르고 표준어가 됐다. 푸퉁화는 말 그대로 보통 사람들이 다 쓸 수 있는 언어를 표방하며 언어학적으로 규범화를 통해 나름대로 정제화한 언어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전통 관습어 성격을 갖는 방언들과는 어휘나 사용하는 한자가 일부 다르다. 발음 자체도 완전히 다른 구조를 가졌으며 심지어 어순에서도 차이가 난다. 홍콩 등지를 여행하다 보면 중국 푸퉁화에서는 잘 쓰지 않는 한자를 많이 보게 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특히 푸퉁화에는 네 가지 성조가 있지만 광둥어는 아홉 가지 성조를 가지고 있을 만큼 차이가 난다. 푸퉁화와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언어 중 하나인 광둥어는 광둥성, 광시성, 홍콩, 마카오와 동남아, 그리고 해외에 거주하는 화교 사이에서 널리 쓰이는 언어로 현재 약 1억1천만 명이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푸퉁화를 구사하면 유식해 보인다?

이런 언어인 광둥어가 최근 푸퉁화에 밀려 입지가 좁아지고 있으니 광둥어 사용자들의 반발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비록 광둥어를 완전히 축출하자는 움직임은 아니지만 언어가 사라지면 문화도 사라질 수 있다는 역사적 경험을 간직한 중국인, 특히 광둥 사람들에게는 이 사태가 각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광둥인은 원래 자신들이 중국의 중원을 지배했으나 이민족의 침입으로 남하해 현재 광둥 지역에 살고 있으며, 실질적인 한족은 자신들이고 따라서 자신들의 언어가 원래 한족의 정통 언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광둥어 탄압이나 말살로 불릴 만큼 반향을 일으키는 이번 사건이 발생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대개 다음의 몇 가지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우선 중국 정부의 푸퉁화 보급 정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은 푸퉁화 보급을 사회 통합적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중국 정부의 노력에 비해 푸퉁화 사용 캠페인은 큰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중국은 지난 2001년 국가기관 근무자들은 의무적으로 표준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국가 통용 언어문자법’을 제정하고 강력한 표준어 보급 정책을 실시해왔다. 최근 중국 교육부와 국가언어위원회가 지난 5년간 전국 31개 성·시·자치구 주민 47만여 명을 대상으로 공동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중국인 13억 명 중 53%만이 표준어인 푸퉁화를 구사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이들도 실제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중국 정부의 강력한 표준어 보급 방침에 따라 중국 대부분 도시의 교육기관과 공공기관에서는 푸퉁화를 사용하지만, 주민끼리는 일상 대화에서 해당 지역의 방언을 사용한다는 얘기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아시안게임이라는 국제 행사를 앞두고 지방정부가 인위적 무리수를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광둥 지역의 언어와 문화를 둘러싸고 광둥성 정부 간부와 광둥인 사이에 존재하는 인식의 간극을 들 수 있다. 광둥성 정부의 대다수 간부는 광둥성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광둥 문화에 대한 이해심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뒤 공업건설이나 행정관리 인원이 필요해서 많은 사람들이 광둥으로 들어오고 개혁·개방 정책에 따라 많은 지도층이 유입됐기 때문에 정부 간부를 비롯한 고위층은 광둥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한 면이 있다.

정권에 따라 위상이 달라지는 대만 민난어

이들에 비해 본래 광둥인은 오랫동안 이어져온 광둥의 독특한 문화유산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특히 언어적 측면에서도 만주어·몽골어 등 북방 방언이 혼합된 푸퉁화보다 오히려 광둥어가 정통성 있는 순수한 언어라고 여긴다. 여기에 마치 푸퉁화를 구사하는 것이 문화적으로 성숙하고 유식해 보인다는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의 사회·문화적 분위기에도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광둥인만이 광둥어와 광둥 문화를 지킬 수 있다는 생각에 거리로 나서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수천 년간 이어져온 언어·사회 문화의 전통이 정부의 정책적 노력으로 재편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이미 국공 내전에서 패해 대만으로 갔던 국민당 정부에서 그 예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민난어를 사용하던 대만인은 중국의 정통성을 부르짖는 국민당 정부 때문에 자신들의 언어를 자유롭게 쓰지 못했다. 그러다가 대만 출신의 천수이볜 총통의 민진당 정권이 출범하면서 대만은 민난어의 부활을 맞이한다. 그러나 국민당의 정권 회복으로 다시 상대적으로 민난어의 사용이 줄어들고 있다. 이런 인위적 조절은 해당 민족의 특성을 말살하는 우매한 행위다.

언어와 문화는 역사와 전통의 산물이다. 통치나 사회적 통합에 일정한 규범은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위한 작업이 본연의 전통을 훼손하는 일이라면 시도하지 않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더구나 그것이 어느 일방의 상대적 우월감에서 나온다면 이는 역사에 대한 도전이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를 거스른 정권이 번창하는 경우는 없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중국학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