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멸종위기종도 클릭하면 딩동?

제15차 CITES 당사국 회의에서 ‘희귀 동식물 인터넷 거래 현황’ 공개…
참가국 입장 차이로 ‘거래 금지’ 조처는 실패
등록 2010-04-01 17:13 수정 2020-05-03 04:26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 최대의 적은 인터넷?’
지난 3월13일부터 25일까지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멸종 위기 야생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 제15차 당사국 회의에서 흥미로운 주장이 나왔다. 사라져가는 희귀 야생 동식물마저 ‘인터넷 쇼핑’ 대상이 됐다는 게다. 영국 〈BBC방송〉은 3월21일 인터넷판에서 세계야생동물보호기금(IFAW)의 폴 토드 국장의 말을 따 “인터넷 상거래 활성화로 멸종 위기로 내몰린 희귀동물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고 전했다.

석 달간 7천여 종 거래, 코끼리 상아 인기

‘이거, 사실래요?’ 인도네시아 자바섬 서부 펠라부한 라투 지역의 해변에서 한 남성이 멸종위기종으로 보호받고 있는 희귀 바다거북이의 갓 태어난 새끼를 들어 보이고 있다. REUTERS/ BENAWIHARTA

‘이거, 사실래요?’ 인도네시아 자바섬 서부 펠라부한 라투 지역의 해변에서 한 남성이 멸종위기종으로 보호받고 있는 희귀 바다거북이의 갓 태어난 새끼를 들어 보이고 있다. REUTERS/ BENAWIHARTA

“지난 2008년 석 달여에 걸쳐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인터넷 경매 사이트를 통해 7천여 종의 멸종위기종이 거래됐다. 거래 총액만도 380만달러에 이르렀다. 가장 큰 시장은 미국이었지만, 유럽 각국과 중국·러시아·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서도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토드 국장은 “가장 거래가 활발한 것은 아프리카 코끼리의 상아였다”며 “희귀 조류를 매물로 올려놓은 사이트도 많았으며, 희귀동물의 모피까지 심심찮게 팔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새끼 사자나 북극곰같이 세계적으로 보호를 받고 있는 멸종위기종까지 온라인 경매 사이트나 채팅 사이트에 버젓이 매물로 올라와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실 인터넷이 야생동물 거래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는 몇 년 전부터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돼왔다. 영국의 야생동물 거래 감시단체인 ‘트래픽’은 지난 2004년 중반 내놓은 보고서에서 “올 2월부터 5월까지 넉 달여 동안 코끼리 상아 판매광고가 일주일에 평균 1천 건씩 꾸준히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왔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단체는 2008년 세계 최대 경매 사이트인 이베이가 상아 판매광고 게재를 전면 금지하는 조처를 이끌어낸 바 있다.

이번 당사국 회의를 앞두고도 이 단체는 여덟 달에 걸쳐 중국 본토는 물론 홍콩과 대만 등지에서 운영되는 중국어 사이트를 세밀히 분석해 지난 2월 말 실태보고서를 내놓았다. 보고서를 보면, 희귀종 또는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된 야생 동식물 판매광고를 올려놓은 사이트가 무려 4200여 개에 이른단다.

문제는 인터넷을 통해 거래되는 멸종 위기 동식물의 전체 규모조차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마땅한 단속 방안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는 새 실제 멸종 직전까지 내몰린 동물도 있다. 이란 자그로스산 일대에만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도마뱀처럼 생긴 희귀 파충류 ‘카이저 점박이 뉴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BBC방송〉은 야생동물 보호운동가들의 말을 따 “현재 생존해 있는 뉴트의 개체는 1천 마리 남짓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최근 몇 년 새 인터넷을 통해 200마리 가까이 판매된 것으로 파악됐다”며 “현재도 10여 개 사이트에 뉴트 판매 광고가 올라 있다”고 전했다. 3월21일 열린 회의에서 참가국들이 뉴트 거래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데 전격 합의한 것도 사안의 위급성 탓이다.

‘뉴트’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다른 동물들은 그만큼 운이 좋지 못했다. 북극곰, 블루핀 참다랑어, 상어 등 이번 회의 기간에 거래 금지 또는 제한 대상으로 올라온 동식물은 42종에 달했지만, 대부분 ‘보호 대상’ 지위를 얻어내지 못했다. IFAW는 회의 폐막일인 3월25일 성명을 내어 이렇게 비판했다.

북극곰과 블루핀 참다랑어는 어찌하나

“CITES 당사국 회의의 의제는 위협받고 있는 생물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장기적인 노력에 모아져야 했다. 하지만 이번 회의에서도 각국 참가단은 눈앞의 이익에만 골몰했다.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 보호 방안을 논하는 대신,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밀실 거래를 일삼고, 지구 생태계의 파멸을 재촉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앞선 회의 때와 마찬가지로….”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4월2일부터 한겨레 로그인만 지원됩니다 기존에 작성하신 소셜 댓글 삭제 및 계정 관련 궁금한 점이 있다면, 라이브리로 연락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