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워싱턴 정가에서 최근 608쪽에 이르는 두툼한 책 한 권이 화제다. 출간 전부터 서평이 돌더니, 책이 나오자마자 온라인 서점 ‘아마존’에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섰다. 이란 제목의 이 책은 “역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칭찬으로 하는 말은 아닌 듯싶다. 책을 언급하는 사람마다 ‘왜곡’과 ‘날조’란 단어를 심심찮게 입에 올린다. 글쓴이?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부비서실장을 지낸 칼 로브다.
‘부시의 뇌’로 불렸던 참모
로브는 ‘부시의 뇌’로 불렸다. 부시 전 대통령을 정치에 입문시켜, 텍사스 주지사를 거쳐 백악관의 주인으로 만든 것도 로브다. 그가 기억하는 부시 행정부 8년 세월은 어떤 모습일까?
“탁월하게 일을 해냈소, 브라운 청장.” 지난 2005년 9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 남동부 멕시코만 연안을 휩쓸고 갔다.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가 최대 피해지역이었다. 뒤늦게 현장을 방문한 조지 부시 대통령은 재해복구를 진두지휘해온 마이클 브라운 연방재난관리청(FEMA) 청장을 한껏 치켜세웠다. 당시 브라운 청장은 늑장 대응으로 일관하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었다.
부시 대통령의 뜬금없는 ‘칭찬’은 비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브라운 청장은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자진해서 물러났다. 로브는 그때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는 “재해복구와 이재민 지원이 지지부진했던 것은 루이지애나주 당국과 뉴올리언스시 당국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루이지애나 주지사(캐서린 블랑코)와 뉴올리언스 시장(레이 나긴)은 모두 민주당 소속이었다.
회고록의 백미는 역시 이라크 침공을 둘러싼 논쟁이다. 로브는 먼저 “부시 행정부의 잘못이 아니라, 당시 정보기관이 잘못된 정보를 전해줬기 때문에 침공을 ‘마지못해’ 결정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그들(정보기관)이 잘못된 정보를 가져왔고, 바로 그게 문제였다”며 “당시 부시 행정부는 제출된 정보를 바탕으로 최선의 정책을 결정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결과적으로 사담 후세인을 제거함으로써 미국도 세계도 더 안전해졌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이 밖에 “부시 행정부가 고문을 방조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도 내놨다. “이른바 ‘워터보딩’(물고문)은 고문이 아니었으며, 테러범을 잡는 데 효과적으로 활용된 것을 뿌듯하게 생각한다”는 말도 서슴잖았다. 교토의정서에서 발을 뺐던 부시 행정부가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발 빠르고 공세적으로 대처했다”고도 강조했다. 이를 두고 영국 일간 은 “마치 지구는 평평하고, 달은 초록색 치즈로 이뤄져 있으며, 아주 쓸 만한 중고차를 구입했는데 당신에게 되팔고 싶다고 말하는 꼴”이라고 비꼬았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말하는 꼴”
요즘도 “전화나 전자우편으로 매일 안부를 주고받는다”는 부시 대통령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할까? 그는 미 공영라디오 〈NPR〉와 한 인터뷰에서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기초를 닦은 대통령이자, 해외로 민주주의를 확산하는 데 앞장선 대통령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그의 주장엔 부시 행정부 출신 인사들까지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스콧 매클렐런 전 백악관 대변인은 〈MSNBC〉에 출연해 “로브가 여전히 자기 만의 세계에 갇혀 지내는 것 같다”고 평했다.
로브는 부시 대통령의 임기가 1년4개월여 남은 시점인 2007년 9월 백악관에서 물러났다. 그는 회고록을 낸 이유를 묻는 질문에 “역사적 기록을 똑바로 세우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부시 전 대통령과 딕 체니 전 부통령도 지난해부터 회고록 집필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네오콘 3인방의 결기가 애처롭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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