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은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것에서 찾아졌다. 하지만 달리던 차량을 멈출 수는 없었다. 대안으로 떠오른 게 야자열매나 사탕수수 등 작물을 이용해 생산하는 이른바 ‘바이오 연료’였다.
예상치 못한 ‘부작용’은 초기부터 나타났다. 광활한 농토가 바이오 연료 생산용 작물 재배에 이용되면서, 저개발국가에서 식량난이 가중되기 시작한 게다. 지난 2008년 세계적인 식량값 폭등 사태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은 “뛰어오른 식량값의 20~30%는 바이오 연료 생산이 급격히 늘어난 탓”이라고 지적했다. 그해에만 전세계적으로 무려 1억2500만t에 이르는 곡물이 바이오 연료 생산용으로 쓰였다.
식량값도 20~30% 뛰어오르는 부작용
그럼에도 세계 각국은 바이오 연료 사용을 늘리기 위해 동분서주해왔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지 않고는 기후변화의 파국을 피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런 추세를 앞장서 이끄는 건 유럽연합(EU)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지난 2008년 해마다 바이오 연료 사용량을 늘려 오는 2020년까지 유럽 전체 운송연료의 10%를 바이오 연료로 전환하도록 결정했다. 그런데…. 또 다른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디젤유 등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게 이른바 ‘녹색에너지’로 불리는 바이오 연료를 사용한 것보다 훨씬 친환경적이다.” 영국 일간 는 3월2일치에서 일부 입수한 정부의 공식 연구보고서 내용을 따 이렇게 보도했다. 신문은 “바이오 연료 생산용 작물 재배를 위해 막대한 면적의 열대우림이 파괴되고 있으며, 이렇게 생산된 바이오 연료는 EC가 규정하는 최소한의 지속 가능성 기준조차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무슨 말일까?
신문이 전한 바이오 연료 생산·사용에 관한 EC의 기준을 보면, 바이오 연료 1ℓ는 같은 양의 화석연료를 사용할 때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소 35% 줄일 수 있어야 한다. 는 정부 보고서 내용을 따 “문제는 대표적인 바이오 연료인 야자유가 화석연료를 사용할 때보다 되레 온실가스 배출량을 31%나 높였다는 점”이라고 전했다. “바이오 연료 생산용 야자를 재배할 대규모 농장을 만들기 위해 열대우림을 불태우면서 뿜어져나온 탄소 가스를 새로 심은 야자나무가 모두 흡수하기 위해선 최장 840년이 걸릴 것”이란 게다.
EC 역시 지난해 비슷한 연구조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 결과물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를 비롯한 일부 언론이 공개한 ‘내부 문서’를 보면, EC 농무국 쪽의 고심이 여과 없이 드러나 있다. “바이오 연료 생산을 위해 열대우림을 대규모 농장으로 전환하는 과정까지 지속 가능성 기준을 적용하면, 한 해 33억 유로가 넘는 각종 보조금과 세제혜택을 받고 있는 유럽의 바이오 연료 업계 전체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영국 환경 당국은 올해 자국에서 사용하는 운송용 연료 가운데 바이오 연료 의무 사용 비율을 3.25%까지 높일 계획임을 밝힌 바 있다. 2020년까지는 이 비율을 13%까지 끌어올릴 예정이란다. 영국 재생가능연료국(RFA)의 자료를 보면, 지난해 영국에서 판매된 야자유는 1억2700만ℓ에 이른다. 이 가운데 2700만ℓ가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됐다.
인도네시아, 세계 3위 이산화탄소 배출국세계 각국의 거대 바이오 연료 업체가 앞다퉈 몰려드는 인도네시아는 이미 중국과 미국에 이어 세계 3위의 이산화탄소 배출국이란 오명을 뒤집어썼다. 해마다 영국 웨일스 지방 면적의 열대우림이 사라지면서, 수마트라섬에선 오랑우탄이 멸종 위기로 내몰리고 있단다. 이른바 ‘녹색성장’의 시대에도, ‘녹색’이 아니라 ‘성장’에 무게중심을 두려는 이들이 많다. 그 억지스런 무지가 낯익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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