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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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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마르자, 마르지 않는 전쟁

미군 ‘전후 최대 규모’의 군사작전…
오바마의 ‘새 아프간 전략’이 부시의 ‘새 이라크 전략’을 닮았네
등록 2010-02-24 16:38 수정 2020-05-03 04:26

‘마르자, 유령의 도시.’
북위 31도 31분, 동경 64도 07분. 아프가니스탄 서남부 헬만드주의 남쪽에 자리한 마르자는 메마른 땅이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를 보면, 마르자 일대에서 비 구경을 할 수 있는 건 12월부터 3월 사이 넉 달가량이 고작이다. 한 달에 25mm가량 비를 뿌리는데, 그나마 강우량이 가장 많다는 1월에도 평균 62.48mm에 그친단다.

중무장한 미 해병대 병사들이 2월17일 아프간 서남부 헬만드주 마르자의 텅 빈 거리에서 군견까지 동원해 수색작전을 벌이고 있다. 다국적군의 대규모 공세가 시작되기 전 탈레반이 미리 도시를 빠져나간 탓에 격렬한 교전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REUTERS/ GORAN TOMASEVIC

중무장한 미 해병대 병사들이 2월17일 아프간 서남부 헬만드주 마르자의 텅 빈 거리에서 군견까지 동원해 수색작전을 벌이고 있다. 다국적군의 대규모 공세가 시작되기 전 탈레반이 미리 도시를 빠져나간 탓에 격렬한 교전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REUTERS/ GORAN TOMASEVIC

작전 개시 24시간 만에 적록기 올려

그럼에도 마르자 일대는 아프간의 유일한 ‘성장산업’을 떠받치고 있다. ‘핵심 산업벨트’라 부를 만하다. 지난 2001년 10월 아프간 전쟁이 터진 이래 지속적으로 다국적군의 주요 표적이 돼온 것도 이 때문이다. 한때 세계 시장의 10%를 차지할 정도의 ‘제품’이 마르자에서 생산됐다. 바로 아편이다. 아편으로 벌어들인 수입이 끈질기게 저항을 이어가는 탈레반의 뒷돈을 대주고 있으니, 포화를 피하긴 어려웠을 터다.

지난해 5월에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과 아프간군은 나흘간에 걸친 합동작전을 벌여 탈레반 6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당시 NATO군은 주민 소개령을 내린 뒤 대대적인 공습을 감행해, 파종을 앞두고 있던 양귀비 씨앗과 완성된 생아편 등 92t을 파괴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난해 12월에 이르면, 등 외신들이 다국적군 지휘부의 말을 따 “마르자는 헬만드주에서 탈레반의 기세가 가장 높은 곳”이라는 보도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마르자를 손에 넣기는 쉬워도 지켜내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이 마르자의 그 메마른 땅에서 새삼 대규모 탈레반 소탕 작전에 들어갔다. 2월13일 시작된 이번 작전은 2001년 10월 전쟁이 시작된 직후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린 뒤 다국적군이 벌인 ‘전후 최대 규모의 군사작전’으로 불린다. 미군 주도로 아프간 군경과 영국군 등 1만5천여 병력이 대거 투입된 탓이다.

막상, 전투는 싱거웠다. 작전 개시 24시간 만에 다국적군은 마르자 시내를 장악했다. 작전 닷새째인 2월17일 〈AP통신〉은 미군 지휘부의 말을 따 “마르자의 주요 거점이 모두 다국적군 손에 떨어졌다”고 전했다. 탈레반을 상징하는 흰색 깃발이 내려진 자리에 아프간 중앙정부를 상징하는 적록기가 올려졌다. 상황은 끝난 건가?

다국적군의 작전 목표가 단순히 도시를 점령한 뒤 철수하는 게 아니었음은 그 준비 과정을 보면 자명해진다. 이번 공세가 시작되기 전날인 지난 2월12일치 보도를 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하니프 아트마르 아프간 내무장관이 마르자 일대 부족 지도자 350여 명을 모아 ‘슈라’(부족원로회의)를 열어, 재건·복구 작업 등에 대해 설명했다는 게다. “이 자리엔 미군 고위 인사들도 다수 참석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공세에 앞서 지역 원로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민사작전’의 일환이었던 셈이다.

탈레반도 ‘약간의 돈’, 미군도 ‘약간의 돈’

이번 공세의 작전명은 ‘모슈타라크’라 붙여졌다. 현지어(다리어)로 ‘함께’란 뜻이다. 미 해병이 전투의 중심에 서긴 했지만, 아프간 군과 경찰들을 대거 작전에 참여시킴으로써 ‘아프간의 얼굴을 한 작전’으로 비치도록 신경을 썼다. 이런 방식은 미군이 팔루자를 위시해 이라크에서 가장 저항이 거셌던 바그다드 서부 안바르주에서 활용한 전술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새 아프간 전략’이 조지 부시 행정부의 ‘새 이라크 전략’을 닮아 있다.

다국적군의 대대적인 공세를 피해 마르자 주민들이 트랙터 등에 가재도구를 싣고 피난길에 오르고 있다. REUTERS/ ABDUL MALIK WATANYAR

다국적군의 대대적인 공세를 피해 마르자 주민들이 트랙터 등에 가재도구를 싣고 피난길에 오르고 있다. REUTERS/ ABDUL MALIK WATANYAR

“당신들 아들을 우리에게 달라. 그들을 경찰로 훈련시켜, 탈레반에 맞설 수 있도록 하겠다.”

는 슈라에서 아트마르 장관이 부족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했다. 아프간 내무부는 지난해부터 이른바 ‘부족경찰’ 제도 도입을 추진해왔다. 지역 차원에서 탈레반에 대항할 병력을 확보하려는 전술인데, 이 역시 안바르주에서 톡톡히 재미를 본 수니파 민병대 조직, 이른바 ‘각성 위원회’를 흉내낸 것으로 보인다.

잘 알려진 것처럼, 아프간 젊은이 중에는 ‘직업이 탈레반’인 경우가 많다. 아무런 일자리가 없는 시골마을에 사는 아프간 젊은이들이 평상시엔 집에서 농사를 짓다가, 전투가 벌어지면 탈레반이 주는 약간의 돈을 받고 ‘전사’로 둔갑하는 식이다. 미국과 아프간 정부 역시 ‘약간의 돈’을 젊은이들에게 내밀며 ‘아예 편을 바꾸거나 적어도 대항해 싸우지는 말라’는 주문을 하고 있는 셈이다.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AP통신〉이 2월17일 전한 기사를 보면, 전망이 그리 밝지 않아 보인다.

“대다수 주민은 탈레반의 통치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고 말한다. 수익의 일부를 탈레반에 세금으로 내긴 했지만, 아편 농사를 맘 편히 지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세가 시작된 뒤 일부 주민은 다국적군에게 차를 대접하는 등 반겼지만, 절대다수의 주민은 다국적군이 거리에 매설된 폭발물이나 치운 뒤 곧 떠나기를 원하고 있다.”

지금, 마르자의 거리는 텅 빈 채다. 〈CNN방송〉이 2월17일 현지발로 전한 보도를 보면, 진흙으로 빚어 올린 건물 사이에서 삼엄한 발걸음을 놀리는 건 다국적군 병사들뿐이다. 공세가 시작되기 전부터 주민들은 하나둘씩 마을을 떠났기 때문이다. 유엔이 운영하는 인터넷 매체 〈IRIN뉴스〉는 2월17일 “마르자와 인근 나드알리 일대에서 1573가구 1만여 명의 주민이 헬만드주 주도인 라슈카르가로 피난을 나왔다”며 “이들 대부분은 일가친척 집에 머무르거나 잠깐 집을 빌려 지내면서 귀가를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30여 년 전쟁의 땅에 공식 인구통계가 있을 리 없다. 비공식적 추정치로 마르자의 인구는 대략 8만~8만5천 명으로 알려져 있다. 부근 일대의 인구까지 합쳐도 12만5천 명 선이 고작이다. 그러니 마르자 주민 10명 가운데 1명 정도는 피난길에 올랐다는 얘기가 된다. 아프간 주재 유엔난민기구(UNHCR) 관계자는 〈IRIN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마르자 피난민 대부분이 임시 거처를 마련했기 때문에, 따로 난민캠프를 운영할 계획은 아직까지 없다”고 말했다. 교전이 길어진다면, 상황은 달라질 터다.

“안전한 집 안에 머무르라.”

은 2월15일 다국적군 사령부가 공세에 들어가기 전 주민들에게 안내장까지 뿌렸다고 전했다. 이를 어쩐다? ‘집’은 안전하지 않았다. 작전 이틀째인 2월14일 NATO군의 박격포탄 두 발이 애먼 가정집에 떨어져 일가족 12명이 목숨을 잃었다. 2월14일과 15일 이틀에 걸쳐 민간인 3명이 추가로 목숨을 잃었다. ‘민심’을 얻기 위한 ‘민사작전’은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도심을 ‘장악’했다?

그럼에도 남은 주민들은 바깥출입을 하지 않고 있다. ‘탈레반 잔당’과 그들이 숨겨놓은 무기를 찾기 위해 다국적군 병사들은 빗으로 머리를 빗듯 가택수색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산발적인 총격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르자는 철저히 숨을 죽이고 있다. 대체 탈레반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는 2월15일 인터넷판에서 “탈레반이 ‘전략적 철수’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했을 때도 비슷했다. (탈레반의 전신 격인) 무자헤딘들은 소련과 아프간 정부군의 대규모 합동 공세가 임박하면 근거지를 비우는 전략적 철수를 단행했다. 북동부 판지시르 계곡을 호령하던 아메드 샤 마수드 같은 전설적 게릴라 지도자들은 (민간인 희생을 줄이기 위해) 아예 일대 주민들까지 데리고 몸을 피하기도 했다.”

그래서다. ‘도심을 장악했다’고 떠벌리는 게 객쩍다. 할 일이 산더미다. 치안을 유지하며, 재건·복구에 나서야 한다. 누가 해야 할까? 다국적군은 군이 주도하겠다고 나섰다. 반응은, 신통찮다. 는 2월17일 인터넷판에서 “미국 등 다국적군이 마르자 일대에서 진행할 재건 사업에 유엔 산하기구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신문은 와엘 하즈 이브라힘 아프간 주재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국장의 말을 따 “군대가 의료 지원이나 교육 등에 간여해선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고 전했다. 왜?

“군사 전략의 일환으로 인도 지원이 이뤄진다면, 상대방(탈레반)은 이를 파괴하는 걸 목표로 삼게 될 것이다. 군대를 동원해 인도 지원을 하는 것은 한정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데 좋은 방식이 아니다. 군대의 활동은 치안 위협 요소를 제거하고, 인도 지원 단체가 원활히 활동할 수 있도록 안전을 보장해주는 데 한정돼야 한다.”

이브라힘 국장의 발언은 위험을 무릅쓰고 현지에서 활동하는 인도 지원 단체 활동가들의 주장과 맥이 닿아 있다. “인도 지원에 군이 개입하면 지역 주민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주는 것은 물론 자칫 인도 지원 활동가들이 탈레반의 공격 목표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현지에서 활동하는 국제 인도 지원 단체에서 꾸준히 제기해왔다.

“우리는 다국적군을 포위하고 있다.”

교전을 피해 잠적한 탈레반은 ‘여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아랍 위성방송 는 2월17일 인터넷판에서 탈레반 대변인의 말을 따 “이번 공세는 다국적군에게 치욕스런 패배를 안겨주며 막을 내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을 포함한 다국적군은 2011년부터 철군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오는 8월 말로 자국군 파병 기간이 끝나는 네덜란드에선 벌써부터 기한 연장을 놓고 정치권이 충돌을 거듭하고 있다. 급한 건 어느 쪽일까?

‘시작의 끝’도 보이지 않는 전황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쪽이 지난 1월 말 몰디브에서 평화협상을 벌였다. 사흘에 걸친 당시 협상의 목표는 아프간 전쟁을 평화롭게 끝내는 방안에 모아졌다.” 2월18일 〈AP통신〉의 보도다. 대공세에 앞서 아프간 정부가 미국의 승인 없이 탈레반과 ‘협상’에 나섰다고 보기 어렵다. 그동안 아프간 전황은 ‘시작의 끝’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끝의 시작’을 예감해도 되는 건가? 너무 성급한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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