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고시키가하라 원시림이 동북아시아 생태관광의 새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주민들이 주도하는 전면 예약 가이드제도로 원시림의 훼손도 막고 관광객도 끌어모으는 방식이라 더 주목을 받는다. 일본 중부지방인 기후현 다카야마시의 고시키가하라 원시림 생태지역을 지난 10월 말 찾았다. 모든 방문자는 관광 일주일 전에 사전 예약을 하고 전문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야만 생태탐방을 할 수 있다. 이런 사례는 일본은 물론 한국과 중국, 대만 등 동북아시아에서 거의 찾기 힘들다.
고시키가하라는 일본 중부 산악국립공원 노리쿠라다케의 해발 1500~2천m 산자락 계곡 속에 넓게 자리잡고 있다. 독특한 지형의 평원과 습지로 이뤄진 곳이다. 일본열도는 아열대림부터 아한대림까지 길게 이어져 있는데, 이곳은 그 가운데 온대성 기후에 해당한다. 중부 국립공원의 대표적 생태계다. 반달가슴곰과 일본산양, 여우 등 동북아의 주요 멸종위기종을 비롯해 너도밤나무와 분비나무속의 고산침엽수 그리고 자작나무과의 일부 한대수종들까지 어우러진 원시림을 보여준다.
천천히 걸어서 8시간전체 생태탐방로는 10km짜리 2개 코스로 이뤄져 있다. 초입부터 절벽 사이로 흘러내리는 폭포가 인상적이다. 대체로 급경사가 길게 이어진 비탈길은 적고, 완만한 길이 숲 속으로 아기자기하게 이어져 있다. 크게 힘들 일이 없고 생태탐방에 걸맞은 적절한 난이도를 갖추고 있다. 탐방로를 걸어보면 곳곳에서 비경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다양한 자연경관을 만난다. 숲과 계곡 사이로 폭포가 곳곳에 펼쳐지고 중간에는 여러 군데의 고층습지가 어우러져 있다. 탐방객은 자연이 빚어낸 다양한 볼거리를 몸으로 느끼고 관찰할 수 있다.
밟거나 손으로 누르면 스펀지처럼 푹신푹신한 이탄층에는 다양한 희귀식물들이 분포하고 있다. 더불어 탐방로를 휘어감아 흐르는 계곡과 사이사이 개울들에는 차고 맑은 1급수에만 서식하는 산천어와 같은 냉수성 어종이 여유롭게 노닌다. 특히 계곡에서 더 들어간 지류와 습지 주변에는 한국의 꼬리치레도롱뇽과 같은 과면서 행태적으로도 거의 비슷한 하코네산도롱뇽이 특유의 귀여운 눈빛으로 가끔 나타나 탐방객을 맞이했다.
1개 코스를 탐방하려면 천천히 걸어서 8시간 정도가 걸린다. 탐방은 봄에서 가을까지 이어지는데, 5월1일에 시작해 10월31일이면 문을 닫는다. 고도가 높은 산지라서 겨울이 빨리 오고 늦게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눈이 많이 쌓이는 겨울에는 정상적인 생태탐방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또 원시림에도 휴식이 필요하다.
생태관광으로 돌아서자 경제 활력 되찾아이곳 원시림의 관리와 운영을 맡고 있는 고시키가하라가이드협회는 하루 탐방 인원을 15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원시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탐방객 수용 한계점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자연 생태계를 고려한 적정한 탐방객 수는 생태관광의 중요 원칙이다. 국립공원의 정상까지 케이블카를 놓아 수많은 등산객을 불러모으려는 우리나라의 상황과는 크게 대비된다.
고시키가하라 생태관광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예약 가이드제도는 철저하게 지역 주민들이 주도한다. 다카야마 시청의 지원 아래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고시키가하라가이드협회를 운영한다. 협회에서는 가이드 1명이 인솔하는 탐방객 수를 10명 안쪽으로 제한하고 있다. 생태탐방로의 안전 순찰 및 훼손 방지 모니터링은 이 협회에 소속된 가이드들이 한 코스당 하루 두 명씩 순번제로 돌아가면서 맡는다. 협회에는 현재 생태 전문 교육을 받은 가이드 44명이 등록해 활동 중이다.
생태관광의 거점인 방문자센터의 도시유키 다니구치 소장은 고시키가하라를 “우리의 보물”이라고 불렀다. “비경을 사람들에게 소개하면서 마을의 활성화에도 보탬이 되고 있다. 그렇지만 주민들은 방문자로 인해 비경과 생태계가 훼손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그럼 점에서 예약 가이드제는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는 지역 활성화에 대해 “고시키가하라는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라 하루 종일 시간을 내어 관찰하고 느끼는 일정이라 방문자들은 거의 마을에서 숙식을 하게 된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사실 이 지역도 일본의 거품경제가 부글거리던 때는 스키장과 리조트 등 산악 레저시설을 지으면서 대세를 따랐다. 하지만 거품이 꺼지면서 마을 경제도 함께 침체돼 활기를 잃었다. 그러다 2004년께 생태관광으로 돌아서면서 활력을 되찾기 시작했다. 조합 형태로 운영되는 고시키가하라가이드협회의 슈이치 히가시데 조합장은 “생태관광객 1명이 잠도 자고 밥도 먹으면서 쓰는 돈이 적어도 평균 1만2천엔(약 15만원)가량”이라며 이런 돈은 고스란히 지역경제로 흡수된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들은 가이드 활동으로 수입을 얻고 민박과 식당 등으로도 돈을 번다”며 “고향의 비경이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지역이 활기를 띠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지역의 자연과 문화에 대한 풍부한 해설로 무장한 가이드들은 걷기 위주의 단순 탐방을 지양하고 고시키가하라의 자연과 역사, 문화를 탐방자가 충분히 느끼고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자연 생태계를 살펴보고 공유한다는 생태관광의 지향점을 가이드와 탐방자가 함께 실현하는 형태다. 방문자센터와 가이드협회가 함께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체 이용자의 92%가량이 고시키가하라 생태관광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이처럼 성공적인 생태관광 모델이 출현한 배경에는 충분한 사전 준비가 놓여 있다. 다카야마시는 생태관광을 시작하기 3년여 전부터 고시키가하라 지역에 대한 정밀 생태조사를 벌였다. 이를 바탕으로 생태 조성에 관한 원칙과 기준을 세밀하게 만들고 나서 개방을 검토했다. 이런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중앙정부의 환경성과 광역지자체인 기후현, 기초지자체인 다카야마시 등이 협약을 맺어 예약 가이드제와 탐방 인원 제한 등의 생태관광 제도를 이끌어냈다.
관광 시작 3년 전부터 정밀 생태조사탐방의 거점이자 생태계 홍보·교육의 필수적 시설로 꼽히는 방문자센터도, 거품경제 때 지었다가 놀고 있던 스키장 시설을 재활용해 무상으로 사용 중이다. 지역의 방치된 시설을 적절히 활용한 것이다.
한국도 지난해부터 정부 차원에서 생태관광에 관심을 갖고 사업을 발굴 중이다. 환경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나서고 있지만 아직도 방향과 내용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다. 국내의 명소를 소개하고 안내하는 홍보 수준의 대상지 발표 빼고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생태관광 개발의 중심은 역시나 해당 지역이라는 전제를 인정하고, 실질적이고 정밀한 생태조사와 분석·연구를 해야 한다. 여기에 지역 주민들이 관리 운영 주체로 나설 때만이 제대로 된 생태관광이 실현될 수 있다. 정부부터 개념을 잡아 주민들과 손잡고 단 한 곳이라도 모범적인 사례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다카야마(일본)=글·사진 서재철 녹색연합 녹색사회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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