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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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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열차’가 독일 전역을 달리는 이유

군국주의 부활과 노동자 탄압에 맞선 연대투쟁 촉구…
2천km 돌아 연방의회 선거날 베를린 의사당 도착
등록 2009-09-30 16:17 수정 2020-05-03 04:25

9월27일 연방의회 선거를 앞두고 독일 곳곳에서 선거전이 벌어지고 있다. 녹색으로 경제위기에서 벗어나자는 녹색당의 호소, 아프가니스탄 철군과 부유세 징수를 주장하는 좌파당, 힘세다고 자신만만한 기민당, 무엇인가 주장하는 사민당…. 그런 선거전 거리에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선거전보다 계급전을 하자-비상시국 반대’ 이벤트 열차가 달린다. 선거 보이콧 캠페인은 아니다. 투표한다고 정치참여를 다 했다고 생각하지 말자는 뜻이다. 전 방위적 노동자 탄압 기제로 발전하는 국가의 구조조정을 각성된 노동자의 대단결로 막아내자는 호소다.

‘붉은 열차’를 이루는 다섯 대의 트럭이 독일 헤센주 하나우 시내를 통과하고 있다.

‘붉은 열차’를 이루는 다섯 대의 트럭이 독일 헤센주 하나우 시내를 통과하고 있다.

열차는 화물트럭 5대로 구성됐다. 맨 앞 트럭에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배부른 자본가와 증권시장 혹은 금융경제를 뜻하는 황소 형상, 둘째 트럭에는 자본가의 국가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든 자들과 독일의 팽창주의와 군국주의를 뜻하는 악어가 실려 있다. 셋째 트럭은 아직 딱히 속한 곳이 없는 일반 사람들이 타고 있다. 넷째 트럭에는 붉은 깃발이 펄럭인다. 노동자들이다. 간간이 노동가가 흘러나온다. 마지막 트럭엔 예술가들이 타고 있다. 공산주의자와 사민주의자와 사회주의자와 무정파 시민들이 함께하는 이벤트 열차는 9월12일 라인란트팔츠주 뵈르트시 소재 다임러벤츠 공장 앞에서 출발해 독일 전역 2천km를 돌아 9월27일 국회의사당 앞에 도착하기로 일정이 잡혀 있다.

주민은 신기한 듯 쳐다보고, 여행객은 사진을 찍고, 공사판 노동자들은 환호하며 손을 흔들거나 손뼉을 친다. 바람을 맞으며 고속도로를 달릴 때는 피켓을 내리고 잠시 쉰다. 물은 되도록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정해진 장소 외에 시내 중간에서 타거나 내릴 수 없다.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쉬는 경우도 에스코트(?)하는 경찰과 합의를 보아야 한다. 규정 하나라도 어기면 이벤트 열차의 전 일정이 취소되기 때문이다.

공장 앞에서 노동자들 연설 이어져

찾아가는 공장 앞에서는 일하는 사람들과 노조원들의 연설이 이어진다. 다임러 브레멘 공장 경영협의회의 노동자대표 게르하르트 쿠퍼는 현재의 비상시국 타개를 위해 노동자가 단결해 투쟁해나가자고 독려했다. 스위스 거대기업 ABB 공장 경영협의회 노동자대표 수잔나 나겔은 개별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뭉쳐 조직화된 힘만이 살길이라는 확신으로 이벤트 열차에 합류했다고 강조했다.

왜 독일이 비상시국일까? 주최 쪽이 열거하는 이유는 이렇다.

다른 민족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전쟁에 독일연방군대를 투입하는 것, 군대의 국내 투입이 가능해진 것, 경찰과 비밀정보국의 정보 교류를 가능케 해 히틀러 파시즘 패망 이후 금지된 비밀경찰을 사실상 되살린 것, 젊은 장교들을 학교와 대학교에 보내 모병 선전을 하는 것, 입대선서식 같은 군대행사를 일반 시민이 다니는 공공장소에서 집행해 군사문화를 일상에 노출시켜 습관화하는 것, 이른바 ‘향보단’(Heimatschutz)에 예비군을 증설하는 것, 통일 이후 연방국경수비대를 연방경찰로 재편해 히틀러 파시즘 패망 뒤 독일에 ‘중앙집권화된 경찰’을 금지한 규정을 어긴 것 등등이다. 지난 몇 년 사이 진행된 독일의 변화다.

세계 평화와 테러 방지와 자연재해 복구를 위한 것이란 당국의 멋진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평화활동가 크리스토프 슈토트는 국가 구조조정 관련 인터넷 논쟁에서 당국 입장을 변호하는 누리꾼에게 반문한다.

“그럼, G8(주요 8개국) 정상회담 때도 홍수가 나고 눈보라가 치고 들불이 났던가?”

2007년 하일리겐담 G8 정상회담 때 비판적 시위대를 향한 경찰의 과잉 진압과 다목적 전투기 토르나도 투입 사건이 논란이 됐기 때문이다. 프랑크푸르트 공공노조 ‘예술과 문화’ 분과위원장 볼프강 펠텐스는 “막판에 다다른 자본주의가 국가폭력을 동원해 우리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고 강조한다. 좌파당 연방국회의원이자 국방위원회소속 잉게 호에거도 독일에 “민간과 군대의 합작을 위한 구조”가 전반적으로 진행되는 사실을 지적하고 이벤트 열차 지지를 천명한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이벤트 열차는 ‘향보단’이라든가 ‘기술지원단’(THW)의 역사를 소개한다.

열차의 선전판에 따르면, 향보단은 1919년 혁명 진압에 사용됐다. 당시 “고향을 지켜라”라는 슬로건을 내건 향보단은 같은 해 로자 룩셈부르크와 카를 리프크네히트를 살해했다. 1920년 3월 ‘카프 쿠데타’에서는 1천 명 넘는 노동자들을 학살했다. 1928년에는 기동훈련을 들불로 위장했다. 1956년에는 독일연방군의 향보단으로 확장하고, 2007년에는 독일연방군의 퇴역군인을 수용해 확장했다. 기술지원단의 경우는 그 전신을 기술비상지원단(TN·Technische Nothilfe)으로 본다. 1919년 1월 총파업 저지용으로 설립돼, 1932년에는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 제국 군대와 경찰을 파업 저지에 투입했다. 1945년 해체됐다가 1951년 현재의 이름으로 재건·확장됐다. 2008년에는 독일연방군·연방경찰과 협약을 맺었다.

7월22일치 기사는 프랑크푸르트 금속노조 운영위원인 하인츠 클레가 현재진행형인 국가의 구조조정을 나치 독재에 비교한 주장을 두고 “카산드라의 목소리”가 떠오른다며 마르틴 니묄러의 명언을 기사 말미에 실었다.

“그들이 공산주의자를 잡아갈 때/ 가만히 있었다. 난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들이 사민주의자를 잡아갈 때/ 가만히 있었다. 난 사민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들이 유대인을 잡아갈 때/ 가만히 있었다. 난 유대인이 아니었다./ 그들이 날 잡아갈 때, 뭔가를 말해줄 사람이 그땐 아무도 없었다.”

2천km 장정은 ‘브레히트 청소년극단 브레멘’과 선전패 ‘붉은 후추’가 함께 공연하는 거리극 으로 마무리된다. 1929년 세계경제 위기를 다룬 브레히트 원작 을 재구성한 것이다. 연출자 앙겔라 캄라트에게 “예술이 세상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하고 물었다. 앙겔라 캄라트가 대답했다. “예술은 세상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걸 도울 수 있다. 브레히트의 극은 매번 세상을 바꾸는 노력을 보여준다. 그렇게 하면 실패한다고 보여준다. 하나씩 하나씩.”

당국의 훼방에도 꿋꿋하게 베를린으로

베를린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9월12일 라인란트팔츠주 뵈르트 다임러벤츠 회사 앞 집회 이후 13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서의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집회·공연 허가와 관련해 까다로운 조건이 많이 붙었다. 주최 쪽은 예술작품의 효력을 파괴하려는 시도라고 규탄했다. ‘예술의 자유’를 들어 법정 투쟁을 했다. 주 행정재판소 최고단위의 결정을 기다리며 카를스루에 시내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곳에서 ‘나치 정권 피해자 연합’의 바덴뷔르템베르크주 대변인 디트리히 슐츠,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안티파시스트연맹, 노동자 개인 혹은 사업장 노동자 대표들이 이벤트 열차에 연대했다. ‘집회의 자유를 위한 연맹’의 토마스 트뤼텐은 당국의 까다로운 주문에 대해 “독일연방군대의 국내 투입을 반대하는 민주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라며 “당국은 반파시즘 전통에 바탕한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고 열차가 아무런 어려움 없이 통과하게 하라”고 촉구했다. 민주시민의 권리가 “당국의 은총 여부”에 좌우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법이 보장한 권리를 끈기를 통해서 받아냈다. 이벤트 열차는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이어 바이에른주와 헤센주를 통과했다. 9월18일 프랑크푸르트 일정은 사흘 늦어져 21일에 집행됐다. 27일 베를린 도착도 지연되고 70여 명의 숙박을 예약한 유스호스텔도 조정이 불가피해졌다. 하지만 그들이 스쳐온 공장에서 불붙는 토론 소식이 들려오면 모두들 가슴이 벅차다. 지금도 열차는 베를린을 향해 끈기 있게 달리고 있다.

뵈르트·카를스루에(독일)=글·사진 이은희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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