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스탈린+카스트로=? 오바마! 계산은 여러분이 직접 해보시라.”
이쯤되면 ‘막가자’는 얘기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 중인 의료보험 개혁에 반대해 미 전역에서 거리로 몰려나온 ‘반정부 시위대’가 손에 든 팻말의 구호가 도를 넘어섰다. 금융위기 속에 일부 은행과 자동차업체를 정부가 떠맡은 것을 두고, 보수 진영에선 ‘거 보라’는 듯 ‘오바마=사회주의자’란 등식까지 쏟아내고 있다. 정책을 둘러싼 찬반 논란은 이미 무의미해졌다. 이념, 오로지 그것뿐이다. 워싱턴의 분열이 극으로 치닫고 있다.
대통령 야유한 윌슨에게 선거자금 몰려“더 이상 사과하지 않겠다.”
지난 9월9월 오바마 대통령의 의회 연설 도중 ‘거짓말하지 말라’고 외쳤던 공화당 조 윌슨 하원의원이 돌연 얼굴을 바꾸고 나섰다. ‘고함’을 지른 뒤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동료들에게서도 비난이 쏟아지자, 백악관에 전화를 걸어 거듭 사과했던 그였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괜한 짓으로 정치적 위기를 자초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는데…, 파문이 뜻밖의 방향으로 번져가고 있다. 뉴스 신디케이트 가 9월13일치에서 전한 상황은 이렇다.
내년 중간선거에서 5선에 도전하는 윌슨 의원은 지역구인 사우스캐롤라이나주 2번 선거구에서 이라크전에 해병장교로 참전했던 민주당 롭 밀러 후보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 의회 역사상 처음으로 연설 중인 대통령에게 야유를 퍼부은 의원으로 일약 전국적 ‘명성’을 얻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대거 밀러 후보에게 선거자금을 보내기 시작했고, 삽시간에 100만달러를 넘어섰다. 아찔했을 터다. 윌슨 의원이 지체 없이 오바마 대통령은 물론 람 이매뉴얼 백악관 비서실장에게까지 전화를 걸어 ‘사과’를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당을 중심으로 하원에서 윌슨 의원에 대한 ‘경고’ 결의안 마련에 들어갈 무렵,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윌슨 의원에게도 선거자금이 몰리기 시작했다. 역시 순식간에 100만달러를 넘어섰다. 지난 9월12일 워싱턴에서 열린 대규모 시위에선 ‘거짓말하지 말라’는 문구와 함께 윌슨 의원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이들까지 등장했다. 대통령에게도 바른말을 하는 정치인, 윌슨 의원은 일약 보수파의 ‘얼굴’로 떠올랐다.
“미국 의사와 병원이 최선” 저지 나서애초 “대통령에게 고함을 친 것은 부적절했다”고 비판했던 존 보너 공화당 원내대표도 때맞춰 태도를 바꿨다. 등과 한 인터뷰에서 “(윌슨 의원이) 이미 사과했고, 대통령도 이를 받아들였다. 더는 거론할 필요가 없다”며 윌슨 의원을 두둔하고 나선 게다. 하원은 9월16일 윌슨 의원을 ‘엄중 경고’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지만, 민주당 일각에선 “공연히 윌슨 의원을 ‘순교자’로 만들어줄 필요가 없다”며 반대하는 진풍경이 연출된 것도 이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과정에서 보여준 워싱턴 정가의 반응이다. 윌슨 의원이 주장한 ‘대통령의 거짓말’의 진위를 따지는 이들이 눈에 띄지 않았던 게다. 윌슨 의원이 ‘거짓말’이라고 소리친 점은 오바마 대통령이 “의보개혁을 하더라도 불법체류자에게 연방정부 예산으로 의료보장을 해주는 일은 없을 것”이란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시사주간지 은 9월14일 인터넷판에서 “민주당 상하 양원이 9월 초 내놓은 법안을 보면, 불법체류자에게는 공공의료보험 혜택이 갈 수 없도록 분명한 표현으로 밝혀놓고 있다”며 “공화당 쪽에선 이런 규정이 불충분하며 간접 지원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구체적인 근거는 내놓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윌슨 의원의 주장이 ‘거짓’에 가깝다는 얘기다.
이른바 ‘사회주의 논란’도 ‘근거 박약’이기는 마찬가지다. 따져보자. 오바마 대통령이 9월13일 의 간판 시사프로 과 한 독점 인터뷰에서 지적한 것처럼 “은행 국유화 문제는 공화당이 건재했던 지난 의회 회기 때 이뤄진 일”이다. GM 등 자동차업체의 경영권을 정부가 떠맡은 것도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 아무런 조건 없이 내준 막대한 연방정부 자금의 회수력을 높이기 위해, 그에 상응하는 만큼의 지분을 ‘안전장치’로 확보한 것에 불과하다.
하기야, 노년에 접어든 환자들이 5년마다 의사와 의료 지원 방안에 대해 상의하도록 한 ‘사전의료상담제’는 ‘데스패널’(죽음심사위원회)로 둔갑했다. 저소득층 의료 지원 확대와 의료보험 시장 개혁을 위해 꺼내든 ‘공공의료보험’(퍼블릭옵션) 도입안은 ‘거대 정부의 시장 장악 음모’로 변질됐다. (NEJM)이 9월14일 인터넷판에서 보도한 현직 의사 대상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73%가 퍼블릭옵션 도입에 찬성한다고 답했음에도, 미국의사협회(AMA)가 협회 차원에서 반대하고 있다는 주장만 난무한다. 미 극우파의 기관지 격인 가 최신호에서 정리한 보수 진영의 의보개혁 반대 논리는 이렇다.
“미국의 의료 수준은 세계 최고다. 언제 어디서든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미국에는 인구 100만 명당 27대의 자기공명영상(MRI) 촬영기가 있다. 캐나다와 영국에는 100만 명당 6대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에는 100만 명당 34대의 컴퓨터단층촬영(CT)기가 있다. 캐나다엔 12대, 영국에는 8대뿐이다. …물론 시스템에 문제가 있고, 단점도 있을 수 있다. 비효율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 …비용이 다소 비싼 측면은 있다. 하지만 오래 살고 싶다면, 미국의 의사와 병원이 최선의 선택이다. 매년 40만 명의 외국인 환자가 미국으로 치료를 위해 찾아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의보개혁 시도 자체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러니 ‘협상을 통한 타협’이란 애당초 불가능했는지 모른다. 모든 문제를 연방정부의 구조와 규모, 역할 문제로 치환한 뒤, 그에 대한 찬반으로 이념의 편을 가르면 그뿐인 게다. 정치전문 인터넷 매체 가 9월14일 “사상 유례없이 당파적으로 갈린 현 워싱턴 정가에서 초당적 합의란 거대한 신화에 불과하다”고 꼬집은 것도 이 때문이다.
클린턴 정부의 94년 선거 완패 떠올려불과 8년 전 9·11 동시테러의 충격 속에 미국은 하나로 뭉쳤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의 일방통행식 행보는 당파 간 간극의 틈을 벌렸다. 여기에 지난 세 차례 의회 선거를 통해 공화당 내부 온건·협상파가 대거 물갈이됐다. 는 공화당의 대표적 온건파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스티브 라토레트 의원(오하이오주)의 말을 따 “(공화당 내 온건파는) 일종의 이중의 소수파”라며 “소수파 정당의 의원이자, 그 정당 안에서 다시 소수파”라고 전했다.
그리고 의회선거가 다가온다. 2010년의 중간선거는 점점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지난 1994년 중간선거를 닮아가고 있다. 젊은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해 의보개혁안을 내놨다. 공화당은 총력을 다해 이를 좌절시키려 한다. 1994년 중간선거 결과는 공화당의 압승이었다. 2010년 중간선거 결과도 의보개혁과 명운을 같이할 공산이 크다. 공화당 지도부는 이미 1993~94년 사용했던 ‘선거 매뉴얼’을 들춰보고 있을지 모른다. 이념의 과잉은 권력 노름의 오브제다. 워싱턴의 현실이다. 우리와 닮아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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