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27일부터 올 1월18일까지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를 유린했다. 하지만 총성이 멈춘 지 반년이 넘도록 희생자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정확한 통계조차 나오지 못했다. ‘이스라엘 점령지 인권정보센터’(베첼렘)가 오랜 진상조사를 마치고 9월9일 내놓은 보고서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베첼렘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침공 23일 동안 이스라엘군에 목숨을 잃은 팔레스타인인은 모두 1382명에 이른다. 사망자 가운데 ‘적대행위’에 가담했다가 목숨을 잃은 것으로 파악된 이는 모두 330명, 773명은 이스라엘군의 일방적인 공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베첼렘은 “희생자 가운데 여성이 109명, 6살 이하 어린이 60명을 포함한 18살 이하 미성년 희생자가 320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같은 기간 이스라엘 쪽 희생자는 모두 17명으로 확인됐다. 이스라엘군 병사 9명이 교전 도중 목숨을 잃었고, 4명은 오발사고로 숨졌다. 가자 침공의 명분이던 팔레스타인 쪽의 로켓 공격으로 희생된 이스라엘인은 경찰관 1명을 포함해 모두 4명이다. 목숨값의 무게를 잴 순 없다. 스러진 목숨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다만 ‘1382명과 17명, 아니 13명’이란 격차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오늘을 가늠하게 해준다.
“유대인은 성서의 땅 어디서나 정착할 권리가 있다.” 이스라엘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모셰 아얄론 전략담당 장관 겸 부총리가 9월9일 이렇게 말했다고 현지 일간 가 전했다. 앞서 이스라엘 정부는 9월7일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그동안 잠정 중단했던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재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1967년 이른바 ‘6일 전쟁’(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어기고 점령한 땅에 이주한 유대 ‘정착민’은 요르단강 서안과 동예루살렘 지역에 각각 28만여 명과 19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사법재판소(ICJ)가 ‘불법’으로 규정한 분리장벽도 이들 정착촌 보호를 구실로 세워졌다. 팔레스타인 쪽에서 ‘평화협상’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정착촌 확대 중단을 내건 것도 이 때문이다.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이던 지난해 12월 이후 중단된 평화협상을 재개하기 위해 막바지 조율에 한창인 버락 오바마 행정부도 정착촌 건설 중단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정부의 일방적인 ‘공사 재개’ 발표에 대한 백악관 쪽의 반응은 예상보다 담담했다. “협상 분위기 조성에 부담이 될 수 있으니 자제하라”는 정도의 성명을 내는 게 고작이었다. 이유가 뭘까?
“미국과의 협상이 거의 마무리됐다. 조만간 ‘좋은 쪽’으로 놀라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일간 는 9월10일치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최근 집권 리쿠드당 인사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고 전했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얘기다. 이집트 주간 은 최신호에서 이를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눠 살폈다. 첫째, 정착촌 건설을 재개하겠다는 발표가 ‘국내용’이란 게다. 새로 공사를 시작하려면 몇 주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일단 ‘공사 재개’ 발표로 불만에 찬 보수적 민심을 달래는 새, 미국과의 협상은 마침표를 찍고 평화협상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얘기다.
둘째, 서안에서 정착촌을 확대하지 않더라도, 이미 공사를 진행 중인 주택 2400여 채는 ‘예외’다. 서안과 쌍벽을 이루는 동예루살렘 지역의 정착촌 역시 논쟁에서 비껴나 있다. 실제 는 최근 “조지 미첼 미 중동 특사가 동예루살렘 지역의 정착촌 건설 중단은 불가능하다는 네타냐후 총리의 의견을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여기에 기존 정착촌의 인구 증가에 따른 ‘주택 자연 증가분’도 공사 중단 대상에서 빠진 채다. 이스라엘로선 잃을 게 없는 상황인 게다.
정착촌 공사 재개에 미국은 담담오바마 행정부는 9월23~30일 미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 때 네타냐후 총리와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대통령 간 정상회담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은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미국이 이스라엘의 의견을 상당 부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정착촌 건설을 잠정 중단하는 대가로 이란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대한 안보리 차원의 강력한 제재안을 내달라는 이스라엘 쪽의 요구를 미국이 받아들였다”는 얘기도 떠돌고 있단다. 오바마 행정부 출범과 함께 요란했던 ‘변화’의 외침이 부쩍 잦아들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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