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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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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은 아프가니스탄이 되고 마는가

알카에다 ‘거물급’이 잡힌 날 엄씨 일행 변 당해,
보복살해 가능성 점쳐지는데 살레 정권만 ‘후티 반군’을 지목
등록 2009-06-26 18:53 수정 2020-05-03 04:25

예멘에서 다시 애꿎은 목숨이 스러졌다. 지난 3월 고대 유적지 시밤에서 자살폭탄 공격으로 한국인 관광객 4명이 숨진 데 이어, 6월12일 오후 북부 사다의 계곡에서 독일인 일가족 등 8명과 함께 납치됐던 엄영선(34·여)씨가 사흘 만에 참혹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예멘은 기어이 ‘아라비아의 아프가니스탄’이 되고 마는가?

‘전쟁터가 따로 없다.’ 예멘 북부 사다에서 한국인 엄영선씨 등 납치된 외국인 3명이 무참히 살해된 채 발견된 6월15일 오후 보안군 병사들이 기관총까지 얹은 개조한 픽업트럭을 순찰차 삼아 수도 사나 한복판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사진 연합 / AP PHOTO/ MOHAMMED AL-QADHI

‘전쟁터가 따로 없다.’ 예멘 북부 사다에서 한국인 엄영선씨 등 납치된 외국인 3명이 무참히 살해된 채 발견된 6월15일 오후 보안군 병사들이 기관총까지 얹은 개조한 픽업트럭을 순찰차 삼아 수도 사나 한복판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사진 연합 / AP PHOTO/ MOHAMMED AL-QADHI

1991년과 2001년, 살레 정권의 판단착오

산유국임에도 1인당 국민소득이 공식적으로 약 1천달러, 실제론 500달러 수준에 머물러 있는 예멘은 중동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다. 수출의 8할 이상을 차지하는 원유와 천연가스는 그나마 매장량도 변변찮다. 세계은행은 “오는 2018~20년이면 예멘의 원유·천연가스가 고갈될 것”이란 암울한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경제위기 속에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 천연자원, 여기에 1990년 통일된 이후 내전까지 치르면서 이어지고 있는 북부 출신 지배 엘리트와 남부 주민들 사이의 긴장도 여전한 상태다. 허술한 국경을 뚫고 들어와 어느새 자리를 잡은 알카에다 등 극단주의 무장단체도 해를 거듭해 세력을 키우고 있다. 예멘의 불안한 정치·경제 상황은 고스란히 테러의 비옥한 토양이 되고 있다. 아프간과 닮은꼴이다.

예멘이 남북으로 갈렸던 지난 1978년 북예멘 대통령으로 권좌에 올라 통일 이후에도 흔들림 없이 철권통치를 이어가고 있는 알리 압둘라 살레 정권의 잇단 ‘판단착오’도 위기에 기름을 부어왔다. 살레 대통령은 1991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때 사담 후세인 정권의 손을 들어줬다. 주변 각국은 강력히 반발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에선 예멘 출신 이주노동자 약 100만 명이 한꺼번에 추방을 당하기도 했다. 이들의 송금에 기대온 예멘 경제는 한동안 휘청일 수밖에 없었다.

쓰라린 경험 탓일까? 그로부터 꼭 10년 뒤, 살레 정권은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9·11 동시테러가 불러온 ‘테러와의 전쟁’을 적극 지지하고 나선 게다. 또 다른 패착이었다. 짧은 기간 정권 강화에 보탬이 됐을 수는 있겠지만, 결국 예멘은 극단주의 세력의 목표물이자 은신처로 변했다. 알카에다는 지난 1월 사우디아라비아 지부와 예멘 지부를 하나로 통합하는 등 조직 재정비를 마치고 예멘에서 ‘성전’을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공교롭게도 엄씨 일행이 납치되던 날 알카에다 예멘·사우디 지부의 자금책인 하산 후세인 빈 알완이 동부 마리브주에서 예멘 보안당국에 체포됐다. 등 현지 언론은 보안 당국자의 말을 따 “지금까지 체포한 알카에다 조직원 가운데 가장 거물급”이라고 전했다. 알카에다가 알완의 체포에 대한 보복으로 엄씨 일행을 납치·살해했을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예멘 정부는 전혀 다른 주장을 내놓고 있다. 사다 현지에서 살레 정권과 맞서고 있는 ‘후티 반군’이 저지른 일이란 게다. 과연 그럴까? 사건 현장을 더듬어보자.

예멘 수도 사나에서 북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곳에 자리한 사다는 평균 해발이 1800m에 이르는 험준한 산악지대다. 북쪽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국경을 맞댄 사다는 예언자 무하마드가 생존해 있던 7세기 말 예멘 땅에 이슬람이 전파된 이래 시아파의 한 분파인 자이디파의 구심 노릇을 해왔다. 9세기에는 사다를 수도로 자이디파 왕조가 창건돼 1천 년 가까운 역사를 이어갔다. 사다의 자이디 주민들은 스스로를 ‘하세마이트’, 즉 예언자 무하마드의 적통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2004년 알후티 사살 뒤 ‘후티 반군’ 태동

사다와 중앙정부 사이의 갈등은 뿌리가 깊다. 지난 1980년대 예멘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받아 사다를 포함한 북부 지역에 수니파 이슬람 종교학교(마드라사)를 대거 세웠다. 자이디의 시아파 전통에 대한 도전이었다. 1990년대 들어 자이디 쪽에서도 반격에 나섰다. ‘알샤바브 알무민’(신심 깊은 청년·이하 알샤바브)이란 단체가 만들어졌고, 이들을 중심으로 각지에 자이디의 역사와 전통을 가르치는 마드라사가 들어섰다. 알샤바브의 영향력이 사다에서 갈수록 커지는 것을 우려한 살레 정권은 결국 자이디 계열 마드라사를 폐쇄하기 시작했다. 갈등은 임계점을 향해 치달아갔다.

지난 2004년 1월 살레 대통령이 사다를 방문했을 때, 알샤바브 활동가들은 반미·반정부 구호를 외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살레 대통령은 이를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시위의 배후로 지목된 인물은 사다 출신으로 국회의원까지 지낸 부족 지도자 후세인 알후티였다. 예멘 당국은 여러 차례 후티 체포를 시도했으나 번번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그해 9월 후티는 보안군의 손에 사살됐고, 그의 이름을 딴 ‘후티 반군’의 태동으로 이어졌다.

이후 후티 반군은 정부군에 맞서 최근까지 모두 다섯 차례 ‘전쟁에 준하는’ 격렬한 교전을 벌였다. 양쪽은 지난 2007년 5월 카타르의 중재로 평화협상을 시작해 7개월여 만인 2008년 2월 도하에서 휴전합의서에 서명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휴전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내 폭력 사태가 재발하면서 사다 시내 중심가에서까지 격렬한 교전사태가 벌어졌다. 살레 대통령은 자신의 집권 30주년을 맞은 지난해 7월 일방적으로 휴전을 선포하는 등 유화 조처를 내놨지만 후티 반군과 정부군 사이의 크고 작은 충돌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2주 전 “예멘 정부가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위협

외교안보 전문 싱크탱크인 ‘국제위기감시그룹’이 지난 5월 말 내놓은 자료를 보면, 현재 사다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무장세력은 크게 네 부류다. 첫째, 정부군의 오랜 폭력으로부터 마을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든 일반 주민들이다. 사다의 ‘무장세력’ 절대다수가 이 부류에 속한단다. 둘째, 자이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그룹이 있다. 셋째,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로 무기를 든 축들도 있다. 마지막으로 극히 소수이긴 하지만 알카에다 등 이슬람 극단주의에 휩쓸려 반미·반서방 투쟁에 나선 세력도 있단다. 후티 반군은 첫 번째 부류와 두 번째 부류로 채워져 있을 게다.

예멘에서 외국인 납치사건이 심심찮게 벌어지지만, 인질이 목숨을 잃은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1998년 예멘 보안군의 구출작전 도중 영국인 3명과 오스트레일리아인 1명 등 인질 4명이 숨진 정도가 예외다. 엄씨 일행이 납치되기 불과 이틀 전에도 사다 하르프바니 지역의 알살람 병원에서 활동하는 이집트·수단 등 외국 의료진 24명이 무장괴한에게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납치범은 애초 당국이 붙잡은 자기 동료를 풀어줄 것을 요구했지만, 부족 지도자의 중재로 납치 하룻만에 인질을 전원 석방했다. 는 6월14일치에서 “납치범들은 인질을 풀어주는 대가로 차량 2대와 총기 16정, 염소 2마리를 챙겼다”고 전했다.

엄씨 일행을 납치한 세력은 아무런 요구조건도 내놓지 않은 채, 불과 사흘 만에 인질 9명 중 3명을 무참히 살해했다. 돈을 노린 범죄는 아니란 얘기다. 후티 반군 쪽도 “정부가 우리를 음해하기 위해 없는 사실을 날조했다”며 엄씨 사건 연루설을 부인했다. 한 부류만 남은 셈이다. 는 6월15일치에서 그레고리 존슨 프린스턴대 교수의 말을 따 “이번 사건이 벌어지기 2주 전에 알카에다 예멘·사우디 지부가 예멘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에게 ‘예멘 정부가 당신들을 보호해주지 못할 것’이라고 위협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알카에다는 이미 예멘에 확고히 똬리를 틀었다. 사다의 고산준령은 고스란히 아프간을 닮아 있다. 애먼 후티 반군에게 손가락질하는 살레 정권만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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