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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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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로 굶주림 악화됐다

달러 결제 탓에 가난한 나라 곡물값 급등…
부실 금융지원엔 수조달러 지원, 기아 해결엔 60억달러면 충분
등록 2009-05-01 17:46 수정 2020-05-03 04:25

지난해 12월 말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올 한 해 지구촌에서 1억 명가량이 굶주림에 시달릴 것이란 암울한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그 전망이 조금씩 현실이 돼가고 있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케냐의 나이로비와 인도의 뭄바이에서 굶주림이란 ‘악의 꽃’을 피우고 있다.

‘인류의 다음 세대가 굶주린다.’ 각국 정부가 경제위기 극복 방안에 골몰하는 사이 굶주림이 독버섯처럼 지구촌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사진 REUTERS/ RADU SIGHETI

‘인류의 다음 세대가 굶주린다.’ 각국 정부가 경제위기 극복 방안에 골몰하는 사이 굶주림이 독버섯처럼 지구촌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사진 REUTERS/ RADU SIGHETI

바이오 연료 자원 옥수수의 딜레마

경제위기는 원자재 가격 폭락을 불렀다. 이는 광물 수출에 의존하는 저개발국 경제에 치명타가 되고 있다. 국내총생산의 절반가량을 구리 수출에 의존하는 잠비아가 대표적 사례다. 경제위기 이후 국제시장에서 구리 가격이 반토막나면서 잠비아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구리광산에서 일하던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잃자리를 잃었다. 실업은 빈곤으로, 빈곤은 다시 굶주림으로 이어진다.

굶주림은 영양실조를 낳는다. 영양실조에 시달린 아이들은 제대로 발육하지 못한다. 인류의 미래 세대가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굶주림의 소용돌이가 걷잡을 수 없이 휘몰아치고 있다.” WFP가 4월 들어 다시 경고음을 발했다. 주요 8개국(G8) 농무장관들이 4월18~20일 이탈리아 트레비소에서 긴급회의를 연 것도 이 때문이다. 영국 일간 는 4월19일치에서 “G8이 굶주림을 주제로 회의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위기의 조짐은 기실 지난해 금융위기가 본격화하기 이전부터 감지됐다. 2007년부터 본격화한 곡물 가격 폭등세는 2년여 동안 지속됐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미국을 중심으로 바이오 연료 생산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그 원료가 되는 옥수수 수요가 급증했다. 다른 한편에선 중국·인도 등 인구 대국에서 지속적인 경제성장으로 중산층이 늘면서, 육류 소비가 급증했다. 이에 발맞춰 사료용 곡물 수요도 폭증했다. 1년여 동안 밀과 옥수수 가격은 2배가량 뛰었고, 쌀값도 3배 가까이 뛰었다. 굶주림이 조금씩 번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세계 곡물 수확량이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WFP는 최근 내놓은 자료에서 “부유한 나라에선 곡물 가격이 떨어졌지만, 가난한 나라에선 상황이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며 “국제 곡물시장에선 달러화로 결제를 해야 하는데, 경제위기로 가난한 나라들의 통화 가치가 크게 하락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유럽과 미국의 농민들이 경작 면적을 대폭 줄이기 시작했다. 는 미 농무부의 자료 내용을 따 “전세계 100여 국가에 밀을 수출하는 미 농민들이 올해 밀 재배 면적을 지난해보다 7%가량이나 줄였다”고 전했다. 경제위기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투자 대비 수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 탓이다.

올해 곡물 생산량 크게 줄 듯

세계 7위의 곡물 수출국인 중국이 올해 경작 면적을 늘리긴 했지만, 70년 만에 겪는 최악의 가뭄에 허덕이고 있다. 이로 인해 올해 곡물 생산량이 전년 대비 40%가량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는 게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추정이다. 아르헨티나·파라과이·브라질 등 주요 곡물 수출국 역시 가뭄으로 인해 생산량이 급락할 것으로 보인다. 생산량이 줄어들면 곡물값은 다시 춤을 출 게다. 1억 명의 인류가 굶주릴 것이란 우려는 여지없이 현실화하고 있다.

‘오병이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 명을 배불리 먹였던 성서의 기적까진 필요 없다. WFP는 이미 “올 한 해 다음 세대 인류가 굶주리지 않도록 하는 데 60억달러면 족하다”고 밝힌 바 있다. 4월24일 오후 환율을 기준으로 약 8조400억원이다. 싸다. 탐욕에 눈멀어 위기를 자초한 금융기관을 살리는 데도 몇조달러를 들이고 있지 않은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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