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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PI에 ‘네오콘’ 집합!

새 보수 씽크탱크에 부시 외교정책 뼈대를 설계한 인물들 포함, ‘호의적 패권’ 강조한 PNAC의 후계
등록 2009-04-02 16:33 수정 2020-05-03 04:25

벌써 ‘미래’를 준비하는가? 조지 부시 행정부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난 ‘네오콘’의 망령이 은밀히 부활의 날개짓을 하고 있다. 인터넷 대안매체 〈IPS뉴스〉는 3월26일치에서 “부시 행정부 시절 힘의 논리를 바탕으로 공세적이고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을 주도해온 네오콘 세력이 ‘외교정책구상’(FPI)이란 단체를 만들고 세를 모으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벌써?’ 네오콘의 수장 격인 윌리엄 크리스톨(왼쪽) <위클리스탠더드> 편집장과 로버트 카간(오른쪽)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이 네오콘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차기’에 대한 준비를 시작한 것인가? 사진 왼쪽부터 WEEKLY STANDARD· WIKIPEDIA

‘벌써?’ 네오콘의 수장 격인 윌리엄 크리스톨(왼쪽) <위클리스탠더드> 편집장과 로버트 카간(오른쪽)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이 네오콘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차기’에 대한 준비를 시작한 것인가? 사진 왼쪽부터 WEEKLY STANDARD· WIKIPEDIA

올 초 창립 뒤 세 모으기 분주

올 초 창립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아직까지 이 단체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다만 주요 참여인사들의 면면은 낯이 익다. 보수파의 기관지 격인 편집장 윌리엄 크리스톨과 부시 행정부 시절 네오콘 외교정책의 뼈대를 설계한 로버트 카간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 부시 행정부 시절 이라크 정책에 깊숙이 관여했던 댄 세노어 로즈먼트캐피털 대표 등이 이사진을 이루고 있다. 크리스톨과 카간은 ‘네오콘의 새 시대’를 열어젖힌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NAC)의 주축이었다. FPI를 PNAC의 후계로 눈여겨보는 이유다.

1997년 창설돼 지난 2006년 공식 활동을 접은 PNAC는 부시 행정부 출범 이전부터 ‘네오콘의 심장부’ 구실을 했다. 창립 회원 중에는 딕 체니 전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 세계은행 총재까지 지낸 폴 울포위츠 전 국방부 부장관 등이 포함돼 있다. 이 밖에도 부시 대통령의 동생인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국가안보국(NSA) 중동 담당 보좌관을 지낸 엘리엇 에이브럼스, 유엔 대사를 지낸 존 볼턴 등 부시 행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핵심 인물들이 대부분 이 단체 출신이다. 이들의 ‘활약상’은 익히 알려진 대로다.

크리스톨과 카간은 PNAC 창립에 앞서 외교·안보 전문지 에 보낸 기고문에서 “미국이 국제사회의 안정을 위해 ‘호의적 패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군사적 위력과 도덕적 투명성’을 내세워 국방예산 증액을 부르짖었고, 미국의 이해와 가치에 적대적인 정권의 교체를 역설하기도 했다. 단체 창설 뒤에는 더욱 노골적인 정책 개입에 나섰다. 이 단체는 1998년 1월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필요하면 군사력을 동원해서라도 사담 후세인 정권을 권좌에서 축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테러와의 전쟁’도 이들의 ‘작품’이다. 2001년 9·11 동시테러 직후 PNAC는 부시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9·11 테러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세력을 넘어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과 레바논의 헤즈볼라까지 ‘테러와의 전쟁’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니 이들에겐 “테러에 맞선 이스라엘의 싸움은 곧 우리의 싸움”이 됐고, “후세인 정권을 축출하려는 계획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지적도 자연스러웠다. 이들의 ‘오랜 꿈’은 꼭 6년 전인 2003년 3월 실현됐다.

‘중국과 러시아의 급부상’ 경고

FPI는 어떨까? 이 단체가 홈페이지(foreignpolicyi.org)에 올린 창립 선언문에 그 실마리가 있다. 이들은 “미국은 지금도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에 없어서는 안 될 나라”라며 “전략적으로 뻗어나가는 건 전혀 문제가 아니며, 후퇴는 절대 해법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또 “국제무대에서 외교·경제·군사적 개입을 지속하지 않으면 미국은 고립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며 “경제위기가 고립을 선택하는 이유가 될 순 없다”고 역설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중국과 러시아의 급부상’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다. 이는 카간이 최근 몇 년 새 줄기차게 강조해온 것과 맥이 통한다. 그는 “21세기는 민주세력과 압제세력 사이의 투쟁으로 점철될 것”이라며 “싸움에 대비하기 위해 ‘민주국가동맹’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세력의 수장은 당연히 미국이고, 그 반대편 압제세력은 중국과 러시아가 이끌 것이란 게다. FPI의 향후 활동이 중국·러시아와의 대결을 부추기는 쪽에 모아질 것이란 점은 분명해 보인다. 길조는 아닌 듯싶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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