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베트남이 옛 소련엔 아프가니스탄이다. 초강대국의 자존심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고,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앞뒤 살필 새 없이 서둘러 군대를 물려야 했다. 그나마 미국은 흔들리는 ‘제국’의 위상을 지켜냈지만, 아프간에서 지나치게 많은 피를 흘린 소비에트는 결국 공중분해됐다. 제국의 무덤, 아프간이 주는 교훈이다. ‘테러와의 전쟁’ 시대에도 새겨볼 일이다.
옛 소련군이 인민민주당(PDPA) 정권을 지원하기 위해 아프간 땅에 발을 디딘 건 1978년 8월7일이 처음이다. 이후 미·소의 ‘냉전’은 아프간이란 무대에서 ‘열전’으로 변해갔다. 소련의 ‘침공’에 맞서 일어선 이슬람 전사(무자헤딘)의 배후에는 미국이 있었고, 사우디아라비아·파키스탄 등 친미 무슬림 국가들이 버티고 있었다.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벌어지고, 이란-이라크 전쟁이 불을 뿜는 내내 소련은 아프간에 발목이 잡혀 있었다. 소련군이 1988년 5월15일에야 아프간에서 물러나기 시작했고, 이듬해 2월15일 마침내 철군을 마무리했다. 꼭 20년 전의 일이다. 9년6개월여, 줄잡아 1만5천 명의 소련 병사가 아프간에서 목숨을 잃었다.
미 조지워싱턴대에 딸린 국가안보자료센터(NSACHIV)가 ‘철군 20주년’을 맞아 공개한 비밀 해제된 당시 자료를 보면,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1985년 집권 직후부터 아프간 철군을 염두에 뒀다. 하지만 구체적인 철군 계획이 마련되기까지는 그로부터 2년여가 걸렸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무모한 대결의 시대에 섣부른 철군은 모욕적인 패배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다. 둘째, 어쩌면 아프간 안정화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미망이다. 한번 잡힌 발목은 쉽게 빠지지 않았다.
소련 쪽은 이미 1987년 9월 미국 쪽에 아프간 철군 계획을 구체적으로 전달했다는 점도 이번에 공개된 자료를 통해 확인됐다. 하지만 당시 미 중앙정보국(CIA) 부국장이던 로버트 게이츠 현 국방장관은 이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당시 그는 “곰은 한번 입에 넣은 건 절대 뱉어내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게이츠 장관은 1996년 펴낸 회고록에서 “당시 정보 판단은 점쟁이의 말을 믿은 수준”이었다며, 자신의 오류를 시인한 바 있다.
소련군 철수 이후 아프간은 철저히 잊혀졌다. 소련의 몰락은 인민민주당 정권의 붕괴로 이어졌다. 이내 아프간에 군웅할거의 시대가 도래했다. 지역에 기반한 군벌들이 서로 ‘맹주’를 자처하며 황량한 땅에 피를 뿌렸다. 1996년 9월 무자헤딘의 후예인 ‘탈레반’이 카불에 입성하면서 잠시 주춤하긴 했지만, 내전의 불길은 이내 되살아났다. 9·11 동시테러와 뒤이은 미국의 아프간 침공 때까지 아프간의 메마른 땅은 성할 날이 없었다. 2001년 10월7일 시작된 미국의 아프간 침공은 8년4개월을 넘어서고 있다. 그새 아프간 참전 미군 전사자 수는 580명에 이른다.
“많은 병력이 투입될수록 저항도 강하다”“우리도 좋은 목적으로 아프간에 들어갔다. 학교도 세우고, 도로도 놔주고, 전기도 연결해주고, 원시적인 사회에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다고 믿었다. 아프간 사람들을 도와 더 나은 삶을 살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인들은 아프간에 민주주의를 가져다주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아프간 사람들은 이를 원치 않는다. 그들은 자기 방식대로 살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15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선 ‘아프간 철군 20주년’을 기리는 조촐한 기념행사가 열렸다. 은 이날 현지발 기사에서 헬리콥터 조종교관으로 참전했다는 구르겐 카라페탼(73)의 말을 따 “마치 모래와 싸우는 느낌이었다. 그들과 맞서 싸울 만한 군대는 지구상에 없다”고 전했다. 샤밀 듀크테예프(59)는 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아프간의 모든 집에 병사를 배치하고, 모든 산마다 군대를 주둔시킬 수는 없는 일”이라며 “투입되는 병력이 많아질수록 저항도 그만큼 강해진다는 점을 경험을 통해 배웠다”고 말했다. 유리 샤이두로프(47)도 “우리는 더 늦기 전에 도망쳐야 했다”며 “미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거들었다. 그는 “소련의 경험이 미국에 주는 가장 큰 교훈은 패배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직은, 때가 아닌 모양이다.
“오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에 미군을 추가 파병하겠다고 발표했다. 소련군이 재난에 가까운 아프간 점령을 마감하고 철군을 한 지 20년하고 이틀이 지난 날, 대영제국과 옛 소련의 전철을 미국이 답습하는 듯해 슬프기만 하다.” 미국의 진보적 시사주간지 은 2월17일 인터넷판에서 이렇게 썼다. “경제 회복에 필요한 자원을 낭비해야 한다. 파키스탄 상황은 더욱 혼란 속으로 빠져들 게다. 유럽연합 동맹국과의 관계도 나빠질 수 있다. 이라크 철군 결정으로 그나마 나아질 이슬람권 국가의 반응도 악화할 게다. 병력 증파로 아프간 상황이 안정된다는 보장도 없다. 미국의 안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바마 대통령의 말처럼 추가 파병으로 ‘아프간과 주변 지역에서 분명하고 성취 가능한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이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아직 듣지 못했다. 오바마 대통령, 부디 이 전쟁을 당신 것으로 만들지 마시길.”
이날 오바마 대통령은 “악화하기만 하는 아프간 상황을 안정화하는 데 필요한 조처”라며, 상반기 중에 아프간에 1만7천여 병력을 증파하겠다고 밝혔다. 대테러 전쟁의 중심부를 이라크에서 아프간으로 옮길 것이라던 공약을 실행에 옮긴 게다. 상황은 어떨까? 는 지난 2월8일치에서 아프간 특사로 임명된 리처드 홀브룩의 말을 따 “이보다 지독한 난맥상을 본 적이 없다”며 “아프간 사태가 이라크보다 훨씬 풀기 어려운 과제”라고 전했다. 해병사령관 출신의 제임스 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길고도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라며 “병력을 지금보다 2배 늘리는 것만으로 문제가 풀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토의 반응은 싸늘현재 아프간에 주둔하고 있는 외국군은 미군 3만6천여 명을 포함해 모두 5만5천여 명에 이른다.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의 추가 파병을 원하고 있다. 반응은 냉랭하다. 나토군 증파를 촉구하기 위해 폴란드로 날아갔던 게이츠 국방장관은 2월19일 “추가 파병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며 “비군사적 기여라도 늘려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같은 날 키르기스스탄 의회는 미군에 내줬던 자국 내 마나스 공군기지 폐쇄를 위한 결의안을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켰다. 아프간 주둔군의 보급 기지이자, 중앙아시아의 유일한 미군기지가 사라진 게다. 고약한 상황이다.
“누군가 자신이 구덩이 속에 빠져 있다는 점을 알아챘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땅 파는 걸 일단 멈추는 게다.” 미 평화단체 ‘전쟁 없는 승리’(WWW)의 톰 앤드루스 사무총장은 오바마 대통령의 아프간 추가 파병 결정이 나온 직후 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앤드루스 총장은 이어 “미국의 아프간 정책에 ‘구덩이’가 만들어진 것은 오마바 대통령의 책임이 아니었다”라며 “아프간 정책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통해 새로운 정책을 내놓기 전에 섣불리 병력을 증강 배치한다면, 기존의 구덩이를 더욱 키우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늦은 건가? ‘부시의 전쟁’은 ‘오바마의 전쟁’이 되고 만 건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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