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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 해적만 아는가

에티오피아군 물러나고 새 정부 들어서…전쟁 동안 “사망자 최소 1만 명”
등록 2009-02-12 07:31 수정 2020-05-02 19:25

“이제 조지 부시 행정부가 일으킨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이라크인들이 숨졌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게 됐다. 전쟁이 남긴 실증적인 증거는 부시 대통령이 주장한 ‘승리’의 허상을 깨닫게 해준다. 침공 6년째, 이라크의 오늘은 (아랍족과 쿠르드족 사이에서)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는 (이라크 북부 유전도시) 키르쿠크의 상황만큼이나 혼란스럽기만 하다.”

‘테러와의 전쟁’ 망령의 끝

‘허망하다, 테러와의 전쟁.’ 미국의 지원을 받은 에티오피아군의 침공으로 축출됐다가 2년여 만에 소말리아 대통령에 오른 이슬람법정연대(ICU)의 지도자 샤리프 아메드가 지난 2월4일 에티오피아에서 열린 아프리카연맹 정상회의에 참석해 웃고 있다. REUTERS/ ANTONY NJUGUNA

‘허망하다, 테러와의 전쟁.’ 미국의 지원을 받은 에티오피아군의 침공으로 축출됐다가 2년여 만에 소말리아 대통령에 오른 이슬람법정연대(ICU)의 지도자 샤리프 아메드가 지난 2월4일 에티오피아에서 열린 아프리카연맹 정상회의에 참석해 웃고 있다. REUTERS/ ANTONY NJUGUNA

미 시사주간지 은 최신호에서 새삼 ‘테러와의 전쟁’이 남긴 ‘유산’을 꼼꼼히 따져봤다. 유엔의 추산으로만 이라크인 6명 가운데 1명꼴인 약 450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여전히 난민으로 떠돌고 있다. 유니세프의 자료를 보면, 깨끗한 물을 공급받고 있는 가구는 전체의 40%에 불과하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어린이가 수도 바그다드에서만 전체의 70%, 제2의 도시인 남부 바스라에서도 여전히 40%를 넘고 있다.

지난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여러 차례 인명피해 규모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가 이뤄졌지만, 최근 18개월 동안엔 그마저 주춤한 상태다. 은 “신뢰할 만한 조사 보고서만을 근거로 따져도, 최소 40만 명에서 최대 65만 명이 전쟁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며 “가장 최근 이뤄진 실태조사 이후에도 12~15개월 동안 격렬한 교전사태가 이어졌음에 비춰, 사망자는 더욱 늘어났을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이라크전 희생자 규모를 추적해온 평화단체 ‘이라크보디카운트’는 “2006년 6월 이후 최근까지 이라크에서 사망자가 2배 이상 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은 이를 근거로 “침공 6년째에 접어든 현재 미국의 침공으로 인한 사망자는 80만~13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에 이라크 정부 당국자들은 줄잡아 100만~200만 명의 남편 잃은 여성과 500만여 명의 고아가 양산됐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니 ‘테러와의 전쟁-이라크편’의 ‘중간결산’은 이런 식으로 표현이 가능하다.

‘피난민 450만 명, 남편 잃은 여성 100만~200만 명, 고아 500만 명, 사망자 100만 명 이상. 이라크인 2명 중 1명, 전쟁으로 가족·친지 잃어.’

아프가니스탄에서 시작된 ‘대테러전쟁’의 망령이 메소포타미아의 평원을 거쳐 내달린 곳은 아프리카 땅 소말리아다. 2006년 12월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에티오피아군의 침공으로 시작된 ‘테러와의 전쟁-아프리카편’이 26개월 남짓 만에 받아든 성적표는 허망하다. 에티오피아군의 지원과 국제사회의 축복 속에 모가디슈에 입성했던 압둘라히 유수프 아메드 과도정부 대통령은 “평화협상에 걸림돌이 된다”는 안팎의 비난 속에 지난해 12월 사임했다. ‘점령군’으로 행세하며 무차별 공세를 퍼붓던 에티오피아군은 지난 1월15일 소말리아 땅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그리고 에티오피아군이 기세 좋게 몰아냈던 ‘이슬람법정연대’(ICU)의 지도자 셰이크 샤리프 아메드가 지난 1월31일 과도의회 투표를 통해 새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군부독재자 모하메드 시아드 바레가 1991년 1월 군벌에 축출된 이후 15년여 이어져온 ‘무정부 상태’를 해소한 게 ICU였다. 2006년 6월 ICU가 모가디슈를 장악한 이후 혼돈의 땅 소말리아는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런 ICU를 ‘테러단체’로 몰아 무모한 전쟁놀음을 벌였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지난해 12월 펴낸 107쪽 분량의 보고서에서 “지난 2년여 동안 수도 모가디슈에서만 줄잡아 87만여 명(전체 주민의 3분의 2)이 유혈사태를 피해 피난길에 올랐다”며 “인구가 밀집한 소말리아 중남부 일대에서도 110만여 명이 고향 땅을 등졌다”고 전했다.

모가디슈 주민 3분의 2가 피난길

민간인 사망자 규모는 가늠해볼 자료조차 부실하다. 다만 수도 모가디슈가 유혈사태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무렵의 이라크 바그다드 상황과 비슷하다는 점을 감안해 “최소 1만 명은 넘어설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인도적 상황도 최악이어서, 중남부 일대에서만 약 325만여 명에게 긴급 식량원조가 필요한 지경이란다. 소말리아인들의 참혹한 삶에 눈길조차 주지 않던 국제사회가 그나마 관심을 보여온 소말리아 해적의 ‘활약상’도 기실 대테러전쟁이 만들어낸 파괴와 혼돈의 부산물이다. 다시 묻게 된다. ‘대체 왜?’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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