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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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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왕실의 위험한 도박

‘사법 쿠데타’ 배후 푸미폰 국왕 권위 흔들려… 1월 보선 갈림길 될듯
등록 2008-12-23 12:47 수정 2020-05-03 04:25

12월15일 타이 의회가 민주당 후보인 아피싯 웨짜찌와를 신임 총리로 선출했다. 이로써 타이 정국의 오랜 혼란은 수완나품 국제공항 청사 점거까지 불사했던 민주주의민중연합(PAD)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헌법재판소가 2명의 총리를 사퇴시키고 집권 여당까지 해산시켰던 최근의 사태는 ‘사법부의 쿠데타’로 모양새를 갖췄지만, 사실상 PAD와 군부의 배후에 있는 푸미폰 타이 국왕의 ‘정치 쿠데타’로 볼 수 있다. 영국 태생의 타이 귀족 출신 엘리트인 아피싯은 총리 선출 직후 자신은 푸미폰의 추인을 받기 전까지는 정국 운영의 틀을 말할 수 없다는 겸손한 발언으로 왕에 대한 충성을 다짐했다.

‘친위 쿠데타?’ 왕당파를 자처하는 민주주의민중연대(PAD)의 오랜 시위로 타이에서 선거로 뽑힌 정부가 결국 물러났다. 지난 12월2일 자신의 81번째 생일 기념행사에 참석한 푸미폰 타이 국왕(오른쪽)이 카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EPA/ RUNGROJ YONGRIT

‘친위 쿠데타?’ 왕당파를 자처하는 민주주의민중연대(PAD)의 오랜 시위로 타이에서 선거로 뽑힌 정부가 결국 물러났다. 지난 12월2일 자신의 81번째 생일 기념행사에 참석한 푸미폰 타이 국왕(오른쪽)이 카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EPA/ RUNGROJ YONGRIT

새 총리 아피싯, 국왕에 충성 맹세

1932년 혁명으로 불타버린 왕궁을 미국과 군부의 지원 아래 극적으로 되살려낸 이후 푸미폰 국왕의 권력과 권위는 타이 사회에서 절대적이다. 하지만 2006년 PAD의 대규모 시위 사태로 인한 의회 해산과 이어 치러진 4월 총선, 그해 9월의 군부 쿠데타, 그리고 이듬해인 2007년 12월 총선에서 탁신 친나왓 전 총리 진영이 승리하는 과정(일지 참조)을 거치면서 푸미폰 국왕의 권위는 퇴락했다. 더불어 2008년 12월 또 한 번의 ‘쿠데타’로 푸미폰 국왕은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다. 민주당이 정국의 주도권을 안정적으로 행사하지 못하고 산적한 현안들을 해결하지 못하는 가운데 보궐선거 또는 다음 총선에서 대중의 불신임이 확인된다면, 무소불위였던 푸미폰 국왕의 ‘은폐된 권력’은 공개적으로 수렁에 뛰어들어야 할 것이다. 그런 만큼 2008년 12월의 ‘쿠데타’는 푸미폰 국왕에게는 위험한 도박이었다.

세계 최강의 권력과 부를 자랑하는 푸미폰 국왕이 ‘도박판’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자신과 왕실이 직면한 위기의식에 있다. 이달 초 푸미폰 국왕의 81번째 생일 직전에 치러진 그의 누이 깐야니 공주의 성대한 장례식은 타이 왕실에 드리워진 위기의 실체다. 깐야니 공주는 푸미폰 국왕보다 고작 4살이 많다. 푸미폰 국왕도 곧 누이를 따라가리란 건 자연이 인간에게 적용하는 불변의 법칙이다. 타이 왕실은 여전히 강건한 반석 위에 놓인 것처럼 보이지만 푸미폰 국왕이 부재하다면 사상누각에 불과할 뿐이다. 푸미폰 국왕이 지금처럼 ‘신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30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했다. 미국 태생으로 스위스에서 살다 돌아와 18살에 왕위를 물려받은 그는 베트남전쟁을 치르던 미국과 친미 군부독재의 ‘육성’으로 신이 됐다. 불행하게도 푸미폰 국왕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을 다음 타이 왕은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없을 것이다. 푸미폰 국왕의 신격화된 이미지를 물려받을 수도 없을 것이다. 타이 왕실이 지난 세월 동안 누려왔던 정치적 기득권이 극적으로 쇠퇴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푸미폰 국왕과 왕실의 경제적 기득권 또한 불확실한 미래를 눈앞에 두고 있다. 푸미폰 국왕의 막대한 재산은 단 한 번도 문제가 된 적이 없다. 문제는커녕 재산의 전모도 파악할 수 없는 형편이다. 다만 공개된 자산만 보면, 상장기업의 경우 타이 3위의 기업인 시암시멘트그룹의 1대 주주가 푸미폰 국왕으로, 주식의 30%를 소유하고 있다. 타이 3위의 은행인 시암상업은행의 주식 41% 역시 푸미폰 국왕이 소유하고 있고, 데브스 인슈어런스의 주식 87%는 왕실 소유다. 이런 식으로 타이 왕실은 타이 증권 시장인 SET의 자본 7.5%를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건 빙산의 일각이다.

타이 정국 일지

타이 정국 일지

왕실 신격화 젊은 층 중심 반감 확산

타이 제1의 지주인 왕실의 재산은 너무 방대해 푸미폰 국왕 자신도 그 전체를 알지 못할 것이란 농담만 떠돌고 있다. 1932년 반봉건 혁명 이후 대부분의 왕실 재산이 몰수되다시피 한 상태에서 현재 타이 제일의 부자가 된 푸미폰 국왕의 축재 과정이 깨끗할 수는 없다. 이런 막대한 규모의 부는 타이 왕실이 막후에서 재계와 군부, 언론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초석이기도 하다.

하지만 푸미폰 국왕의 신격화를 지난 30년 동안 제도적으로 보호하고 언론에 재갈을 물린 시대착오적 ‘왕실모독죄’는 안팎으로 도전을 받고 있다. 영국 시사·경제지 는 최근호 표지이야기로 푸미폰 국왕에 대한 장문의 폭로 기사를 실어, 그동안 그에 대해 입을 다물어온 외신의 ‘음험한 카르텔’이 마침내 파열음을 내고 있음을 증명했다. 왕실모독죄의 전근대성은 타이 내부에서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반감을 사고 있다. 그렇게 30년 동안 타이에서 폭력적으로 멈추어 있던 시침은 초침보다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강철처럼 완고한 권력과 권위는 언제나 찰나의 순간에 굉음을 내며 무너지는 법이다.

2008년 12월 또 한 번의 ‘쿠데타’에서 푸미폰 국왕은 위태롭기 짝이 없는 일시적 승리를 거두었다. 탁신 전 총리의 집권으로 가시화한 기층민중, 특히 농민과 빈민의 정치적 욕구는 방콕의 중산층 엘리트가 주도하는 PAD의 힘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근원적인 힘이다. ‘포퓰리즘’이건 뭐건 탁신 전 총리의 복지정책은 푸미폰 국왕에게 심각한 상처를 입혔다. 푸미폰 국왕이 재해지역이나 농촌을 돌아다니며 푼돈을 던져줌으로써 유지해왔던 가부장적 권위는 이미 해체됐으며, 왕을 내세운 우민정치는 지난 10년 동안 급격한 쇠퇴를 거듭해왔다. 방콕의 왕정주의 엘리트들이 혐오하는 무지한 대중은 이미 자신들의 손에 쥐어진 정치적 잠재력을 확인했다. 엘리트주의자들은 비웃고 있지만, 대중의 정치적 각성은 이미 낡은 둑에 구멍을 뚫었다.

반탁신 연합 PAD 분열 눈앞에

반탁신 연합인 PAD는 목적을 달성한 지금 분열을 목전에 두고 있다. PAD의 주력 중 하나였던 방콕의 왕정주의자 유한마담 계층들은 여전히 푸미폰 국왕과 젊은 미남 귀족 총리가 이끄는 민주당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겠지만, 예컨대 노동운동 세력들은 왕정주의자들과 결별해 자신들의 요구를 앞세울 것이다. 탁신 전 총리를 배반하고 민주당의 연정에 참여했던 기회주의 정치 세력들은 권력의 분점을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요구할 것이다. 영국 일간지 은 이번 총리 선출에서 소수정당들이 1표에 100만파운드(약 20억원)를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경제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PAD의 수완나품 공항 점거는 관광대국인 타이의 내년 경제성장률의 1%를 깎아먹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금융위기로 휘청거리는 타이 경제는 푸미폰 국왕의 정치놀음으로 전례 없는 타격을 입었다. 노란 옷을 입은 PAD가 손을 뗀 시위 정국은 이제 붉은 옷을 입은 탁신 전 총리 지지 시위대의 손으로 넘어갔다. PAD에 비한다면 자금과 조직력에서 한 수 아래지만, 10만 명 이상을 동원한 전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분명 정국의 변수가 될 것이다. 민주당이 불안한 권력을 손에 쥔 타이 정국의 시금석은 타이 사법부가 의원직을 날려버린 29개 선거구에 대한 내년 1월의 보궐선거가 될 전망이다.

국왕과 우민정치의 존속·유지를 갈망하는 세력들의 간절한 소망에도 타이는 여하튼 앞으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역사란 묘한 것이다. 더딜지라도 다중의 힘에 의해 꾸역꾸역 앞으로 간다. 그걸 막을 재간이란 도통 보이지 않는다. 노란 옷을 입지 않은 엘리트들이 이게 진정한 민주주의의 힘이란 걸 깨달을 때, 타이 역사는 좀더 빠르게 전진할 것이다.

유재현 소설가 hyoo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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