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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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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둥지로 날아간 매

오바마 당선 ‘일등 공신’ 진보파는 행정부 인선에서 안 보이고, 이라크 침공 찬성자·월스트리트 출신이 줄줄이 요직으로
등록 2008-12-05 17:29 수정 2020-05-03 04:25

“민주당 출신 로비스트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조 바이든 부통령 당선자 밑에서 인턴 생활을 한 신참까지 거대 금융기업의 로비스트로 고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진보적 월간지 는 11월25일 인터넷판에서 이렇게 전했다.

최근 차기 행정부에서도 연임하기로 확정된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오른쪽)이 지난 9월16일 이라크 주둔 다국적군(MNF-I) 사령관 이취임식장에서 레이먼드 오디에르노 신임 사령관에게 부대 깃발을 넘겨주고 있다. REUTERS/ DUSAN VRANIC

최근 차기 행정부에서도 연임하기로 확정된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오른쪽)이 지난 9월16일 이라크 주둔 다국적군(MNF-I) 사령관 이취임식장에서 레이먼드 오디에르노 신임 사령관에게 부대 깃발을 넘겨주고 있다. REUTERS/ DUSAN VRANIC

‘자유주의 매파’ 클린턴 국무장관

같은 날 도 비슷한 보도를 내놨다. “기업체와 이익집단들이 앞다퉈 민주당 출신 인사 잡기에 혈안이 돼 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리면서 민주당 출신들의 몸값이 급등하고 있다. … 3년여 전 공화당이 상하 양원과 백악관을 장악하고 있을 때, 과거 민주당 행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인사들의 연봉은 최대 25만달러가 고작이었다. 오바마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같은 인물의 연봉이 50만~80만 달러 수준으로 치솟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담대한 변화’를 내건 버락 오바마 당선자의 집권을 앞둔 워싱턴 정가의 ‘비즈니스’는 전과 다름이 없어 보인다는 게다.

이와는 사뭇 대조되는 지적도 나온다. 오바마 행정부 출범의 ‘일등 공신’인 민주당 진보파가 차기 행정부 인선에서 밀리고 있다는 게다. 특히 외교안보 분야에선, 이런 주장이 제법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사만사 파워 하버드대 케네디행정대학원 교수를 들 수 있다.

올해 38살인 파워 교수는 예일대를 졸업한 뒤, 1993년부터 1996년까지 옛 유고 내전을 취재한 언론인 출신이다. 뒤늦게 오바마 당선자의 모교인 하버드대 법대에 진학해 1999년 졸업했고, 2003년 옛 유고 내전 취재 경험과 법대 재학 시절의 논문을 바탕으로 쓴 란 책으로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다. 인권·학살·에이즈 문제 등에 천착해 국제 문제를 바라보던 그는 하버드대 카 인권정책센터 사무총장을 지내다, 오바마 당선자가 상원에 진출하면서 의회를 거쳐 대선 캠프에 합류했다. 캠프에서 외교·안보정책 보좌관으로 일하던 2007년 8월3일 그는 ‘워싱턴의 상식과 우리가 원하는 변화’란 제목의 메모를 언론에 공개했다.

“워싱턴 정가의 상식이 미 외교정책 사상 최악의 전략적 실수를 낳았다. 성급한 이라크 침공 결정은 조지 부시 행정부뿐 아니라 주류 언론의 사설에서도, 민주·공화 양당의 외교정책 라인은 물론 상하 양원의 양당 지도부에서도 지지를 받았다. 전쟁에 반대했던 이들은 나약하고, 경험이 일천하며, 순진하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버락 오바마는 이런 상식을 거부하고, 처음부터 이라크 전쟁을 반대했다. 전쟁에 반대하는 게 정치적 미래를 위태롭게 할 수 있던 때였다. 그럼에도 그는 위험을 감수했다. 이유는 분명하다.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와 벌이는 싸움을 끝내는 데 미국의 사활적 국익이 걸려 있다고 본 게다. 그는 이라크 침공을 ‘어리석은 전쟁, 성급한 전쟁’이라고 경고했다. 오바마가 옳았다. 워싱턴의 상식은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그 결과를 목도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지난 3월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인신공격성 비난’을 했다는 이유로 캠프에서 전격 물러나야 했다. 12월 초로 점쳐지는 오바마 행정부 외교안보팀 인선 결과 발표장에 그가 모습을 나타낼 수 있을까? 현재로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그가 ‘괴물’이라 불렀던 ‘자유주의 매파’ 클린턴 후보가 이미 국무장관으로 내정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긴 파워 교수뿐 아니다. 당장 로버트 게이츠 현 국방장관은 연임이 결정됐다. 클린턴 내정자는 자신의 측근을 국무부 요직으로 끌어올 테고, 게이츠 장관 역시 현 인맥을 당분간 내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11월26일 미 시카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오른쪽)가 차기 백악관 경제자문위원 내정자를 소개하고 있다. REUTERS/ JOHN GRESS

11월26일 미 시카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오른쪽)가 차기 백악관 경제자문위원 내정자를 소개하고 있다. REUTERS/ JOHN GRESS

국가대테러센터 초대국장에 대한 ‘배려’

따지고 보면,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내정자도 애초 이라크 침공을 찬성했다. 그는 또 선거운동 당시 오바마 당선자가 이른바 ‘깡패국가’ 지도자와도 전제 조건 없이 대화할 수 있다고 했을 때 ‘순진한 발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게이츠 장관은 이라크 주둔 미군의 조기 철군에 반대했고, 철군 시점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도 ‘무책임한 짓’이라고 자른 바 있다. 오바마 당선자가 후보 시절 내세운 이라크 공약과 배치되는 얘기다. 후보 시절 오바마 당선자를 지근거리에서 지원했던 ‘나약하고, 경험 없고, 순진한’ 민주당 진보파 상당수가 차기 행정부에 참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이유다.

또 오바마 당선자는 조 리버먼 상원의원(무소속·코네티컷주)이 상원 국토안보 및 정무위원회 위원장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2002년 대선에서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됐던 리버먼 의원은 이라크 침공에 앞장섰고, 2006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을 탈당해 지난 대선에서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를 지원했다. 영국 일간 가 11월23일치에서 지적한 것처럼, 매케인 후보를 지지했던 제임스 존스 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령관을 국가안보보좌관에, 이라크 전쟁을 지지했던 애리조나주 주지사 출신의 재닛 나폴리타노를 국토안보장관에 내정한 것도 지지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긴 마찬가지다. 이뿐이 아니다.

존 브레넌,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25년여 잔뼈가 굵었고, 지난 2004년 창설된 국가대테러센터 초대 국장을 지낸 인물이다. 정권 인수위에서 정보 분야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브레넌이 차기 행정부 중앙정보국장 후보 1순위로 거론된 것은 당연했다. 문제는 그가 부시 행정부 당시 정보요원들이 심문을 할 때 고문 등 강압적인 방법으로 조사를 하는 것에 대해 ‘암묵적으로’ 동의한 ‘전력’이 있다는 점이다. 인권단체들의 반발은 당연했고, 브레넌은 결국 오바마 당선자에게 편지를 보내 스스로 후보군에서 물러났다. 그럼에도 오바마 행정부 외교안보팀 인선을 둘러싼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오바마 당선자가 중도보수파에 둘러싸이고 있다’는 지적은 차기 행정부 경제팀 인선 과정에서도 불거졌다. 인터넷 매체 는 11월25일치에서 “차기 행정부 경제팀 인선 과정에서 노동계 인사가 철저히 배제된 것은 물론, (11월24일) 경제팀 인선 결과 발표 자리에선 노동부 장관 내정자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며 “이는 차기 행정부가 경제 위기 속에 노동 문제를 부차적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오바마 당선자의 선거운동에 적극 결합했던 노동계 인사들은 인수위 구성 과정에서도 소외된 반면, 월스트리트 출신 인사들은 줄줄이 백악관과 내각에 입성하고 있다.

옛 적도 품고, 진보진영에도 화답해야

취임을 앞둔 오바마 당선자에겐 상충하는 두 가지 과제가 있다. 부시 행정부 8년 동안 극단의 분열상을 보여온 정치권을 통합하려면 옛 적을 품어야 한다. 동시에 자신을 지지한 풀뿌리 진보 진영의 염원에도 화답을 해줘야 한다. 경제는 무너졌고, 외교는 나락이다. 당선자 신분으로 50여 일을 더 보내야 하는데, 상황은 시시각각 나빠짐에도 ‘레임덕’ 대통령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미 44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는 내년 1월20일엔 유례없는 400만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신생 오바마 행정부가 ‘전과 다름이 없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면, 이들이 고스란히 ‘적’으로 돌아서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차기 행정부 인선 과정에서 불거진 ‘진보-보수 논란’은 오바마 당선자가 직면한 정치적 딜레마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정치란, 원래 이런 게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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