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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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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과 유대인의 동거?

백악관 비서실장 내정자, 친이스라엘 성향 노골적…
“헤지펀드·금융업체로부터 정치자금 가장 많이 받아” 폭로도
등록 2008-11-21 16:48 수정 2020-05-03 04:25

“국민 절대다수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신 걸 축하드린다. …미국민을 위한 봉사의 기회로 삼아,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기시기 바란다.”
지난 11월6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에게 ‘뜻밖의 인물’이 보낸 축전이 전달됐다. 발신자는 ‘악의 축’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 〈AP통신〉은 “이란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 당선자에게 축하 서한을 보낸 것은 지난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처음”이라고 전했다. 아랍권이 오바마 행정부에 거는 ‘기대’의 무게를 가늠할 만하다.

‘대통령의 남자….’ 램 이스라엘 이매뉴얼 백악관 비서실장 내정자가 버락 후세인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에게 귀엣말을 하고 있다. AP PHOTO/ CHARLES REX ARBOGAST.FILE

‘대통령의 남자….’ 램 이스라엘 이매뉴얼 백악관 비서실장 내정자가 버락 후세인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에게 귀엣말을 하고 있다. AP PHOTO/ CHARLES REX ARBOGAST.FILE

중간 이름 ‘후세인’과 ‘이스라엘’

때맞춰 미국의 대표적 무슬림 단체 ‘미국-이슬람 관계위원회’(CAIR)도 지난 11월7일 인상적인 보도자료를 내놨다. 미 무슬림 유권자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89%가 오바마 당선자에게 표를 던졌다고 답했다는 게다. 조사 대상자 가운데 투표에 참여했다고 밝힌 응답자는 전체의 95%에 이르렀고, 이들 가운데 처음 대선 투표에 참가했다고 답한 이들도 14%나 됐다. ‘변화’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을 터다.

케냐 출신 생부와 인도네시아 출신 양부 모두 무슬림인 오바마 당선자는 ‘후세인’이란 독특한 중간 이름을 지녔다. 이 때문에 선거운동 기간에 그가 ‘무슬림’이란 ‘음해’가 판을 쳤다. 그는 진보파 개신교도다.

램 이매뉴얼 백악관 비서실장 내정자도 독특한 중간 이름을 지녔다. ‘이스라엘’. 그는 독실한 유대교도다. 그의 이력을 훑어보면, ‘이스라엘’이란 중간 이름이 과히 어색하지 않음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램 이스라엘 이매뉴얼 내정자는 1959년 11월 미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램’은 히브리어로 ‘지위가 높다’거나 ‘고상하다’는 뜻이고, ‘이매뉴얼’은 ‘신이 우리와 함께한다’는 뜻이다. 소아과 의사 출신인 그의 부친 벤자민 이매뉴얼은 예루살렘 태생이다. 일찍이 1931~48년 영국 위임통치를 받던 팔레스타인 땅에서 아랍인을 겨냥한 테러활동을 지속한 무장단체 ‘이르군’에서 활동할 정도로 강경한 시오니스트로 알려져 있다. 아들의 이름을 ‘램’이라 지은 것도 시오니스트 무장단체에서 활동하다 사살된 무장대원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에서 따온 거란다. 아들이 백악관 비서실장에 내정된 뒤, 그는 이스라엘 일간 와 한 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들이 백악관에서 일하게 된 것은 분명 이스라엘에 좋은 일이 될 게다. 이스라엘과 관련해 대통령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긴 아랍인도 아니고, 우리 아들이 마룻바닥이나 닦으려고 백악관에 가는 건 아니지 않나?”

벨벳 장갑 속 강철 주먹

미국 안팎에서 무슬림들이 ‘인종차별적 발언’이라고 반발한 것은 당연했다. 오바마 당선자가 램 이매뉴얼 하원의원을 차기 백악관 비서실장에 내정한 뒤 아랍권이 격한 감정을 쏟아낸 것도 이 때문이다. 그의 내정 사실이 전해진 날 사우디아라비아의 영자지 는 사설에서 이렇게 썼다. “오바마 행정부에 큰 기대를 걸지 말 일이다. 이매뉴얼 의원이 비서실장에 내정된 것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스라엘에 도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 게다. 새로 들어설 미 행정부는 자신들이 대체하는 행정부와 마찬가지로 친이스라엘 행보를 보일 게 뻔하다.”

뉴욕주 세라로렌스대학 시절부터 일찌감치 정치권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이매뉴얼 내정자는 1985년 시카고 노스웨스턴대에서 정치연설과 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정계에 입문했다. 특히 1993년부터 5년 가까이 빌 클린턴 대통령의 정책보좌관으로 백악관에서 근무하는 동안 의료개혁 등 각종 개혁정책에 깊숙이 간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미 정가에서 그의 ‘명성’이 널리 알려진 것도 이 시절이다. 한때 동료였다가 경쟁자가 된 인물에게 ‘죽은 물고기’를 보내는 악취미에다, 육두문자를 즐겨쓰는 거친 언변은 그에게 ‘램보’(램+람보)란 별명을 안겼다.

1998년 백악관에서 물러난 그는 투자은행가로 변신해, 2002년 정치권으로 복귀할 때까지 금융계를 누볐다. 이 기간에 그는 무려 1600만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2002년 중간선거에서 연방 하원의원에 출마해 압도적 지지율로 당선된 그는 민주당 내부에서 권력의 사다리를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한다. 특히 2006년 민주당의회선거대책위원회(DCCC) 의장에 오른 이매뉴얼 내정자는 그해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하는 데 견인차 노릇을 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당시 선거에서 하워드 딘 민주당전국위원회(DNC) 의장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 개혁 진영은 전국적인 고른 득표에 무게중심을 둔 ‘50개 주 전략’에 집중했다. 반면 이매뉴얼 내정자는 전략지에 집중해 당선자를 많이 배출해야 한다며 이에 반기를 들었다.

물불을 안 가리는 강력한 추진력을 갖춘 그를 오바마 당선자가 첫 비서실장에 내정한 것을 두고 는 데이비드 거겐 하버드대 케네디행정대학원 교수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이매뉴얼 의원을 비서실장에 앉힌 것은 오바마 당선자가 차기 행정부를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지를 보여주는 매우 흥미로운 신호다. 오바마 당선자가 자신이 결정한 정책 사항을 의회에서 관철하기 위해 적극적이고 분명한 노력을 기울일 것임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오바마 당선자가 끼고 있는 부드러운 벨벳 장갑 안에는 강철 주먹이 들어 있다는 얘기다.”

지난 2002년 하원의원 출마 당시 이매뉴얼 내정자는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 움직임에 찬동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중도파’로 분류되는 민주당지도위 소속으로 낙태 찬성론자이자 대부분의 사회정책에서 진보 성향을 보여온 그였지만, 진보적 시사주간지 은 지난 11월6일치에서 그에 대해 “친이스라엘 성향이 노골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이스라엘은 언제든 평화를 향해 나아갈 준비가 돼 있지만, 팔레스타인이 테러의 길에서 벗어나는 게 먼저”라는 게 ‘신념’이란다. 이스라엘 보수 정치권과 정확히 일치하는 견해다.

금융위기 ‘진원지’에서 온 돈

이매뉴얼 내정자는 클린턴 대통령 선거캠프 시절부터 선거자금 모금의 귀재로 꼽혀왔다. 투자은행가 출신답게 월스트리트는 그가 가장 손쉽게 선거자금을 모으는 공간이었다. 정치자금과 이익집단의 로비를 추적하는 시민단체 ‘오픈 시크릿’는 그의 비서실장 내정 소식이 전해진 직후 내놓은 보도자료에서 “이매뉴얼 내정자는 그간 헤지펀드와 증권·금융업체로부터 정치자금을 가장 많이 지원받은 정치인 중 한 명”이라고 폭로했다.

이 단체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이매뉴얼 내정자는 2002년 정계에 복귀한 이후 투자은행권에서만 150만달러의 정치자금을 모았다. 그에게 정치자금을 준 업체 목록에는 UBS와 골드만삭스, JP모건체이스, 시티그룹, 모건스탠리 등 대형 투자은행들이 모두 포진해 있다. 현 금융위기의 진원지들이다. ‘오픈 시크릿’은 “이 밖에도 이매뉴얼 내정자는 대형 법률회사와 연예오락 업체에서도 각각 68만여달러와 37만여달러를, 로비 업계에서도 13만여달러를 지원받았다”고 전했다. 〈AP통신〉은 11월12일 “오바마 당선자가 정권인수위에서 로비 관련자들을 철저히 배제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허, 참….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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