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대통령.’
미국인 10명 가운데 7명은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갤럽은 10월28일 “투표 의사가 있는 유권자를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1%가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가 당선될 것이란 응답은 23%에 그쳤다”고 밝혔다. 지난 6월 실시된 같은 조사에서 오바마 후보의 당선을 점친 유권자는 10명 가운데 5명꼴에 그쳤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 오바마 후보가 승리할 것으로 내다본 응답자의 절반가량은 매케인 후보 지지자였다. 11월4일 미 대선은 해보나 마나 한 싸움이 돼버린 듯싶다. 미국은 ‘흑인 대통령’을 맞을 준비가 돼 있는 걸까?
막판 판세는 분명해 보인다. 오바마 후보는 지난 2000년과 2004년 두 차례 대선에서 공화당 출신인 조지 부시 대통령이 강세를 보인 ‘격전지’에서도 선전을 하고 있다. 이미 플로리다·노스캐롤라이나·미주리·인디애나 등 4개 주에선 매케인 후보를 간발의 차이로 따돌리기 시작했다. 매케인 후보에게 크게 뒤지던 몬태나와 조지아 등 2개 주에선 지지율 격차를 3~4%포인트로 줄이며 바짝 따라붙고 있다. 역시 지난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을 지지했던 오하이오·콜로라도·네바다·버지니아·아이오와·뉴멕시코 등 6개 주에선 오바마 후보가 매케인 후보를 월등히 앞서나가고 있다. 인터넷 매체 는 10월30일 현재까지 매케인 후보가 확실한 우위를 점한 지역은 “자신의 지역구인 애리조나주와 부시 대통령의 출신지인 텍사스주, 그리고 세라 페일린 부통령 후보 출신지인 알래스카주를 비롯해 웨스트버지니아·미시시피·켄터키·캔자스·루이지애나·테네시·앨라배마 등 11개 주뿐”이라고 전했다.
‘간접선거’ 방식으로 치러지는 미 대선에서 당선을 확정지으려면 각 주별로 할당된 총 538명의 선거인단 가운데 270명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는 10월30일 현재 여론조사를 분석할 때 “오바마 후보가 311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매케인 후보가 확실히 차지할 수 있는 선거인단 수는 142명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오바마 후보가 접전지로 분류된 지역에 걸린 85명의 선거인단을 막판에 모두 잃는다 해도 손쉽게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얘기다. 이쯤 되면 ‘압승’이라 부를 만하다.
이미 적지 않은 유권자들이 ‘조기투표’와 ‘부재자투표’를 통해 투표를 마쳤다. 갤럽이 지난 10월17일부터 27일까지 열흘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투표 의사를 밝힌 유권자의 18%가량이 이미 투표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53%가 오바마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고 답했다. 매케인 후보는 10%포인트 뒤진 43%의 지지를 받았다. 아직 투표를 하지는 않았지만, 선거일인 11월4일 전에 조기투표를 할 것이라고 답한 유권자도 전체의 15%나 됐다. 이들 중 54%가 오바마 후보에게, 40%가 매케인 후보에게 표를 줄 것이라고 답했다.
는 10월29일치에서 아예 “지금까지 약 1200만 명의 유권자가 투표를 마친 것으로 추산된다”고 구체적인 수치까지 내놨다. 이날 〈ABC방송〉이 내놓은 조기투표자 대상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오바마 후보가 매케인 후보를 20%포인트 차로 앞서고 있다. 같은 날 〈CNN방송〉은 “올해 선거에 앞선 조기투표는 이전 선거 때와는 한 가지 확연히 다른 점이 있다”며 “전통적으로 공화당원들이 민주당원들보다 조기투표에 적극적이었지만, 이번 선거에선 조기투표 참여자 가운데 민주당원이 공화당원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고 전했다. 〈CNN방송〉은 이어 “조지아·루이지애나·노스캐롤라이나 등 3개 주에선 이미 지난 2004년 대선 때의 조기투표율을 넘어선 상태”라며 “이들 3개 주가 흑인 유권자 밀집지역이라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앞선 두 차례 대선에서 조기투표자들의 투표 행태와 표심은 실제 선거 결과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대선과 같은 날 치러지는 연방의회 선거에서도 민주당의 약진 분위기가 뚜렷해 보인다. 이번 선거에선 임기 2년의 하원의원 435명 전원과 임기 6년의 상원의원 가운데 3분의 1(궐석 지역구를 포함해 총 35명)을 뽑게 된다. 현재 미 상원은 민주당 50석 대 공화당 50석으로 갈려 있다. 민주당에서 탈당해 무소속으로 당선된 뒤에도 ‘민주당 성향’으로 분류됐던 조 리버먼 상원의원이 공화당 매케인 후보 선거운동을 하면서 ‘공화당 성향’으로 넘어간 탓이다. ‘사회주의자’인 무소속 버나드 샌더스 의원을 합쳐도 민주당은 상원을 ‘장악했다’고 볼 수 없다. 하원은 사뭇 다른 상황이다. 지난 8월 숨진 스테파니 터브스 존스 의원을 빼고도 민주당이 235석을 차지하고 있어, 199석을 차지한 공화당에 월등히 앞서고 있다. 다가오는 선거에선 판도가 어떻게 달라질까?
공화 의원들 “새정부 견제할 힘 달라”영국 일간지 는 10월27일치에서 “공화당이 백악관은 물론 상하 양원까지 빼앗길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하원에서 기존 의석에 추가로 15~25석가량을 확보하며 압도적 우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는 게다. 관심의 초점은 상원이다. 이번에 선거가 치러지는 35석 가운데 공화당 의원이 현역인 의석이 23석에 이른다. 민주당으로선 기존 의석을 지키며 공화당 의석 9석을 뺏어오면 ‘매직넘버’로 불리는 ‘60석’ 확보도 가능해진다. 1975년 개정된 법률에 따라 전체 의석의 5분의 3 이상을 차지하면, 의사 진행을 지연시켜 쟁점 법안 표결을 방해하는 ‘필리버스터’를 차단할 수 있다. 현재 판세대로 선거가 치러진다면, 야당으로 전락한 공화당은 쟁점 법안 통과를 저지할 수 있는 마지막 남은 ‘무기’마저 잃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공화당 내부에서 분열의 파열음이 그치지 않는 것도 이런 상황 때문이다. 코네티컷주 지역언론 는 10월28일치에서 “투표함이 열리기도 전에 공화당 중진들이 벌써부터 매케인·페일린 후보의 관에 못질을 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코네티컷주 제4선거구에서 민주당 후보와 접전을 벌이고 있는 공화당 크리스 셰이스 공화당 하원의원의 말을 따 “매케인 후보는 ‘이단아’란 이미지를 스스로 저버렸고, 깨끗한 선거전을 치르겠다는 공약도 어겼다”며 “매케인 후보가 승리할 수 있는 길은 없어 보인다”고 전했다. 1987년 이후 내리 11선을 한 셰이스 의원은 코네티컷주 매케인 후보 선거대책본부장을 맡고 있다.
매케인 진영, 막판 대역전 가능 주장“오바마 행정부와 싸울 수 있도록 힘을 모아달라.” 인터넷 매체 는 10월29일치에서 “켄터키주 출신인 미치 매코넬 공화당 상원 원내총무는 드러내놓고 오바마 후보의 승리를 기정사실화했다”고 전했다. 매코넬 의원은 최근 선거자금 기부를 호소하며 지지자들에게 보낸 전자우편에서 “오바마 후보 당선에 이어 민주당이 상하 양원마저 장악한다면, 세금 인상과 함께 사회정책에서 좌편향이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이 매체는 덧붙였다.
“여론조사가 틀렸다. 지지율 격차는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세라 페일린 부통령 후보와 매케인 후보가 불화설에 휘말린데다, 당 원로인 테드 스티븐스 상원의원이 10월27일 부패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터져나오는 잇단 ‘악재’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공화당으로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을 터다. 여론조사 결과를 반박하는 빈도가 최근 부쩍 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보인다. 는 10월29일치에서 매케인 후보 선거캠프 세라 시몬스 전략국장의 말을 따 “(언론에 보도되는 것과 달리) 현재 박빙의 접전을 벌이고 있으며, 충분히 승산이 있는 싸움”이라고 전했다.
하긴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1948년 대선을 앞두고 갤럽 등 여론조사 전문기관들은 일제히 해리 트루먼 민주당 후보가 토머스 듀이 공화당 후보에게 패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등 일부 언론은 아예 선거 다음날치 1면 머리기사로 “듀이, 트루먼 꺾다”란 제목을 뽑아 인쇄까지 마쳐놨다. 하지만 결과는 4.5%포인트 차이로 트루먼 후보가 승리했다. 매케인 후보 진영에선 “꼭 60년 만에 같은 상황이 재연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가능성은 있는 걸까? 몇 가지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두 후보 간 지지율 격차가 여론조사 기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갤럽이 실시한 조사에선 지지율 격차가 10월29일 현재 2%포인트에 불과한 반면, 퓨리서치센터가 같은 날 내놓은 조사에선 15%포인트까지 격차가 난다. 신뢰도에 ‘의문’을 품을 법도 하다. 최종 투표율을 지나치게 높게 예상하는 데도 ‘함정’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오바마 후보 지지세가 강한 젊은 층과 흑인 유권자의 투표율을 지나치게 높게 예측해, 이들 계층의 표심이 여론조사 결과에 과도하게 반영되고 있다는 얘기다. 선거 당일 공화당 지지층이 대거 투표에 참여하면, 선거결과를 충분히 뒤집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높은 투표율 속 무응답층 관심
여론조사에서 무응답층으로 분류되는 유권자 절반 이상이 공화당 지지 성향이라는 점도 매케인 후보 진영이 꼽는 또 다른 ‘희망’의 근거다. 오바마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를 접한 매케인 후보 지지자들이 여론조사 참여를 거부하거나 지지 후보를 밝히지 않으면서, 매케인 후보의 지지율이 ‘저평가’되고 있다는 게다. 는 공화당 쪽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말을 따 “젊은 층과 흑인 유권자의 투표율이 높아지는 것만큼 공화당 지지자들의 투표율이 높아지면, 오바마 후보의 상승세를 상쇄시키면서 초박빙 승부로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투표는 이미 시작됐다. 오바마 후보는 지금 백악관의 문턱을 밟고 있다. ‘문턱’을 넘어설 수 있을까? 입을 떼는 것조차 섣부르다. 미국 유권자들에게 ‘흑인 대통령을 맞을 준비가 돼 있느냐’고 묻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11월4일 미 대선의 최종 투표율이 근래 보기 드물 정도로 높을 것이란 점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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