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차례에 걸친 텔레비전 토론도 막을 내렸다. 선거일까지 남은 기간은 이제 2주 남짓,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기장으로 들어선 2명의 ‘마라토너’가 바야흐로 막판 스퍼트를 펼칠 기세다. 2006년 11월 중간선거 직후부터 시작된 미 대선전이 마침내 대단원을 향하고 있는 게다. 판세부터 훑어보자.
9월 중순 금융위기의 강풍이 몰아치기 시작한 이후 뒤집힌 선거 판도는 좀처럼 바뀔 줄 모르고 있다. 10월 들어 매일이다시피 발표되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도 요지부동이다.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의 ‘굳히기’가 계속되고 있다. 10월1~3일 인터넷 매체 가 내놓은 여론조사에서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는 51%의 지지를 얻었다.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는 40%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쳤다. 11%포인트 차다. 3~5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갤럽이 실시한 조사에선 50%의 지지를 얻은 오바마 후보가 42%의 지지율을 기록한 매케인 후보를 8%포인트 차로 따돌린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CNN방송〉이 실시한 조사 결과도 오바마 후보(53%)가 매케인 후보(45%)를 8%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진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적게는 5%포인트(, 10일치)에서 많게는 10%포인트(갤럽, 13일치)까지 오바마 후보의 우세가 잇따라 점쳐졌다. 14일 〈CBS방송〉과 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내놨다. 마지막 텔레비전 토론을 하루 앞두고 나온 조사여서 관심이 집중됐다. 결과는? 오바마 후보가 53%의 지지를 얻으며 매케인 후보(39%)를 무려 14%포인트까지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공화당으로선 ‘충격적인 수치’였을 게다. 하긴, 10월 들어 선거판이 불리하게 굳어지기 시작하면서 공화당 안팎에선 불협화음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세라 페일린 부통령 후보는 공화당의 치명적 암덩어리다.” 지난 10월6일 보수 성향의 언론인 데이비드 브룩스는 인터넷판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역시 보수 성향의 공화당 지지자인 칼럼니스트 윌리엄 크리스톨은 10월13일치 에 기고한 글에서 매케인 후보에게 대놓고 “선거운동본부 책임자부터 잘라버려라.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크리스톨은 “선거운동 전략은 오락가락하는데다, 캠프 운영의 미숙함은 가히 독극물 수준”이라며 “앞으로 남은 3주간 이런 식으로 선거운동이 계속되면 매케인 후보는 패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공화당의 ‘절망’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인기는 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추락한 지 이미 오래다. 대다수 미 언론은 매케인 후보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물론 ‘언론과의 전쟁’을 선포한 듯 좌충우돌한 매케인 후보의 탓이 크다. 여기에 청천벽력 같은 금융위기까지 덮쳐왔다. 작심하고 총력을 기울인 ‘네거티브 공세’는 부메랑이 돼 매케인 후보의 갈 길 바쁜 발목을 붙잡고 있다. 는 10월17일치 사설에서 오바마 후보 지지를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오바마 후보 지지를 선택하는 걸 쉽게 만든 데는 매케인 후보의 선거운동에 대한 실망감도 일정하게 작용했다”며 “특히 전혀 준비가 안 된 부통령 후보를 지명한 무책임이 큰 역할을 했다”고 꼬집기도 했다.
‘승자독식’, 압승 가능성도이런 분위기 때문일까? 영국 는 10월13일치에서 “대선전에서 패색이 짙어지면서 공화당 지도부가 매케인 후보에게 서서히 등을 돌리는 분위기”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상당수 공화당 유력 인사들은 매케인 후보의 선거운동 실패로 인해 대통령 선거뿐 아니라, (같은 날 치러지는) 상하 양원 선거와 주지사 선거에서도 공화당 후보가 어려움에 처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비관적인 전망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했던 토미 톰슨 전 위스콘신 주지사는 와 한 인터뷰에서 “현 상태로 선거를 치른다면 매케인 후보는 위스콘신주에서 패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고 말했다. 일부 연방의원 출마자들은 ‘거리두기’를 넘어 아예 매케인 후보와의 ‘결별’을 선택하기도 했다.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의 제2선거구에서 연방 하원의원 6선에 도전하는 공화당 리 레이먼드 테리 의원이 대표적이다. 그는 최근 선보인 텔레비전 선거광고에서 한 여성 유권자를 등장시켜 “나는 오바마 후보와 테리 후보를 지지한다”는 구호를 외치도록 했다.
상황이 이쯤 되자 민주당 주변에선 조심스레 ‘압승’ 가능성을 점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물론 전국 지지율에선 선거 막판 격차가 줄어들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일종의 간접선거 방식으로 치러지는 미 대선에선 각 주별로 지지율이 높은 후보가 그 주에 배당된 선거인단을 모두 차지하게 된다. 이른바 ‘승자독식’이다. ‘격전지’에서 근소한 표차로 승리를 이끌어낸다면, 선거인단 수에선 오바마 후보가 압승을 거둘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의 근거다. 실제로 지난 2004년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과 존 케리 민주당 후보의 지지율 차이는 2.4%에 불과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은 31개 주를 석권하면서 모두 286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해 여유 있게 재선에 성공했다. 월터 델링거 듀크대 교수(법학)는 10월16일 정치 전문 인터넷 매체 와 한 인터뷰에서 판세를 이렇게 전망했다.
“오바마 후보가 2004년 대선 당시 케리 후보가 승리를 거둔 19개 주와 워싱턴DC에서 모두 이긴다면 252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게 된다. 여기에 오바마 후보가 현재 여론조사에서 13%포인트 차로 앞서는 아이오와주(선거인단 7명)와 10%포인트 차로 앞서는 뉴멕시코주(선거인단 5명)에서 승리를 거둔다면, 모두 264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2개 주는 2004년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이 승리를 거둔 지역이다. 일단 여기까지는 사실상 판세를 굳힌 것으로 보인다. 대선 승리를 위해선 전체 538명의 선거인단 가운데 270명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남은 지역에서 1개 주만 확보할 수 있으면, 오바마 후보의 대선 승리는 기정사실이 된다.”
부시 승리한 8개 주에서 한 곳만 이기면‘격전지’는 어디일까? 지난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이 승리한 지역 중 8개 주 정도를 눈여겨볼 만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조그비인터내셔널’이 집계한 이들 지역의 여론을 살펴보자. 오바마 후보는 버지니아주와 미주리주에서 6~7%포인트 앞서고 있으며, 노스캐롤라이나·네바다·콜로라도·플로리다주 등에선 1~2%포인트 앞서는 접전을 펼치고 있다. 반면 인디애나주와 오하이오주에선 각각 4~5%포인트 매케인 후보에 뒤지고 있다. 이 8개 주 가운데 최소한 한 곳에서만 승리한다면 오바마 후보는 미 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다. 바꿔 말해, 매케인 후보로선 이 8개 주에서 모두 승리해야 공화당 12년 정권을 열어갈 수 있다는 얘기다. 쉽지 않은 게임일 터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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