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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선 D-60] 오바마 뒤의 랍비

워싱턴 ‘입장권’을 제공한 유대계 군수업체 제너럴다이내믹스의 크라운 가문
등록 2008-09-12 11:43 수정 2020-05-03 04:25

버락 오바마 미 민주당 대선 후보는 2002년 중반부터 연방 정치무대 진출을 고민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2003년 1월 연방 상원의원 출마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에 앞서 오바마 후보는 자신의 지역구인 시카고에서 ‘특별한 인물들’을 만났다. 억만장자 투자자이자 거대 군수업체 제너럴다이내믹스(GD)의 최대 주주인 제임스 크라운과 그의 부친 레스터 크라운이 주인공이다. 목적은 분명했다. 워싱턴 진출을 위한 ‘입장권’이 필요했던 게다.

‘버락 바루흐 오바마.’ 미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 막바지로 향하던 지난 6월4일 버락 오바마 후보가 미국 내 3대 압력단체로 꼽히는 ‘미국-이스라엘 홍보위원회’(AIPAC) 연례회의에 참석해 연설을 하고 있다. REUTERS/ KEVIN LAMARQUE

‘버락 바루흐 오바마.’ 미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 막바지로 향하던 지난 6월4일 버락 오바마 후보가 미국 내 3대 압력단체로 꼽히는 ‘미국-이스라엘 홍보위원회’(AIPAC) 연례회의에 참석해 연설을 하고 있다. REUTERS/ KEVIN LAMARQUE

히브리어 별명을 만들다

오바마 후보가 2년 임기의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에 처음 당선된 것은 1996년이다. 재선에 성공한 그는 2000년 연방 하원의원을 노렸지만, 4선의 바비 러시 의원과 겨룬 민주당 당내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절치부심 끝에 2002년 일리노이주 상원에 다시 진출하는 데 성공한 오바마 후보로선 ‘디딤돌’을 찾는 게 급선무였을 터다. 시카고 일대에서 ‘왕조’로까지 불리는 크라운 가문은 그가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크라운 가문의 가장인 레스터 크라운의 영향력은 1959년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머티어리얼스서비스’(MSC)사와 거대 군수업체 GD가 성공적으로 합병을 한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을 거듭했다. 당시 합병으로 크라운 가문은 오랜 세월 미 국방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대표적 군산복합체인 GD의 최대 주주로 떠올랐다. 이 업체는 지난 2006년에만 핵잠수함과 구축함, 군 지휘·통제 시스템, 에이브럼스 탱크, 수륙양용 전차, 각종 포·탄환 등을 납품해 105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경제전문지 는 크라운 가문의 순자산이 4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오바마 후보와의 첫 대면에서 레스터 크라운은 애매한 태도를 보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유는 하나다. 오바마 후보가 이스라엘 로비세력의 요구조건을 받아들이겠다는 분명한 의견을 밝히지 않았던 게다. 크라운 가문은 시카고 일대 유대인 공동체의 수장 격으로, 이스라엘 국내 개발사업에도 막대한 규모의 투자를 하고 있다. 유대 근본주의 단체인 ‘베나이 그리스’는 이스라엘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레스터 크라운에게 특별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그의 성씨가 유대계 성씨인 ‘크린스키’에서 ‘크라운’으로 바뀐 것은 그의 부친 대에서 이뤄진 일이었다. 레스터 크라운이 이스라엘을 향한 자신의 ‘헌신’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인물만 지지하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오바마 후보의 ‘노선’이 분명해지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바마 후보는 자신의 정치적 스승이자 클린턴 행정부에서 백악관 보좌관을 지낸 애브너 미카바와 제임스 크라운을 만난 자리에서 확실한 ‘커밍아웃’을 하기에 이른다. 스스로 ‘바루흐(히브리어로 ‘축복’이란 뜻) 오바마’란 유대계 별명을 만들어낸 게다. 유대식 이름을 가진 사람도 만족할 만한 중동정책을 펼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던 셈이다. ‘후세인’이란 이슬람식 중간 이름을 지닌 정치인으로선 이보다 더 고개를 숙이기도 쉽지 않았을 게다.

자세를 낮춘 건 효과가 컸다. 오바마 후보는 결국 레스터 크라운의 든든한 지원을 받게 된다. 지난 7월 오바마 후보가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크라운 가문은 그를 위해 이스라엘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까지 주선했다. 정치자금도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크라운 가문은 2003년 9월 정치자금으로 오바마 후보에게 9500달러를 기부한 것을 시작으로 몇천에서 몇만달러까지 지속적으로 오바마 후보에게 기부금을 내놓았다. 오바마 후보가 민주당 경선 출마 초기 중앙 언론에 ‘능력 있는 후보’란 인식을 심어줄 수 있었던 데도, 전국 단위의 선거광고 방송을 할 수 있도록 종자돈을 내준 크라운 가문의 공이 적지 않았다. 제임스 크라운은 시카고 지역 오바마 후보 후원회 회장을 맡고 있을 정도다.

지난 7월24일 이스라엘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 후보가 유대인의 성지로 꼽히는 ‘통곡의 벽’ 앞에서 유대교 랍비의 설명을 듣고 있다. REUTERS/ JIM YOUNG

지난 7월24일 이스라엘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 후보가 유대인의 성지로 꼽히는 ‘통곡의 벽’ 앞에서 유대교 랍비의 설명을 듣고 있다. REUTERS/ JIM YOUNG

오바마 후보가 무엇보다 크라운 가문에 ‘부채의식’을 갖게 만든 사건은 올 1월 벌어졌다. 그가 자신의 무슬림 뿌리를 애써 감추고 있다는 ‘악성’ 전자우편이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대량 살포된 게다. 히브리어로 작성된 당시 전자우편은 유대계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오바마 후보에 대한 의구심을 결정적으로 키웠다. 이때 발벗고 직접 진화에 나선 게 82살의 고령으로 시카고 유대인 공동체의 ‘대부’ 격인 레스터 크라운이었다. 는 지난 1월22일치에서 크라운의 편지 내용을 따 이렇게 전했다.

“오바마 후보가 이스라엘 관련 입법활동에서 보여온 빛나는 기록에 비춰, 저는 그가 대통령이 된 뒤에도 우리 모두가 백악관의 주인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처럼 이스라엘의 친구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런 제 확신을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어서 이 편지를 씁니다.”

레스터, ‘악성’ 전자우편에 직접 대응

출간 초기부터 논란을 부른 (2007년 8월 출간)이란 책에서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와 존 미어셰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이스라엘 로비세력의 지지를 받지 않고는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는 건 불가능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민주당 경선 초반, 이 한 통의 전자우편을 통해 오바마의 ‘랍비’ 노릇을 자임한 레스터 크라운은 결정적 위기 국면에서 그의 선거운동을 결정적으로 뒷받침해준 셈이다.

정치권에 막강한 영향을 행사하고, 천문학적인 부를 자랑하며, 군산복합체의 중심에서 친이스라엘 로비를 이끌고 있는 크라운 가문의 오늘은 레스터 크라운의 부친 헨리 크라운 시절에 시작됐다. 헨리 크라운이 출세의 사다리를 타기 시작한 것은 시카고 시의원 출신으로 부패한 정치인의 전형인 제이콥 아비와 인연을 맺으면서다. 크라운과 군복무를 함께한 아비는 전설적인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가 관리하던 시카고의 ‘패밀리’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현역 복무를 마친 뒤 군수업계에 뛰어든 아비는 크라운이 운영하던 회사에 몇백만달러 상당의 군수품 납품을 맡겼고, 크라운 가문은 순풍에 돛 단 듯 자본을 축적해나갔다.

오래지 않아 헨리 크라운은 미 육군의 캘리포니아 담당 군납업자 자리를 꿰찼다. 연간 10억달러 이상을 좌우하는 자리였다. 이 시절 크라운은 미 군당국이 보유하고 있던 캘리포니아주 파머스빌의 105㎢(3만1800여 평)에 이르는 탄광을 헐값에 사들였다. 이 탄광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계 미국인의 것을 미 당국이 압류한 자산이었다. 이로써 크라운은 억만장자로 향하는 길에 들어섰다.

“GD는 국방비 낭비와 부패의 상징”

1959년 크라운 가문은 또 다른 전기를 맞는다. 대표적 군산복합체의 하나인 GD를 인수·합병한 게다. GD의 모회사인 조선업체 일렉트릭보트(EBC)는 업계에서 일찌감치 악명을 떨쳐왔다. 이를테면 이 업체는 1904~5년 러일전쟁 때 러시아와 일본 양쪽에 잠수함을 팔기도 했다. 1940년대 초반에도 이 업체는 ‘비윤리적 사업 관행’으로 미 의회의 특별감사를 받았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당시 감사는 유야무야됐다.

7월24일 예루살렘의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찾은 오바마 후보가 2차 대전 당시 나치에 희생된 이들의 사진을 둘러보고 있다. REUTERS/ DANIEL BEREHULAK

7월24일 예루살렘의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찾은 오바마 후보가 2차 대전 당시 나치에 희생된 이들의 사진을 둘러보고 있다. REUTERS/ DANIEL BEREHULAK

크라운 가문이 합류한 이후에도 GD의 조선 부문은 ‘악명’을 이어갔다. 1970년대 초반부터 품질 이상과 비용 과다청구 등으로 잦은 구설에 올랐고, M-1 탱크와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 등 여타 무기사업도 욕을 먹긴 마찬가지였다. 미 법무부는 지난 1990년 M-1 탱크를 미 육군에 납품하는 과정에서 비용을 부풀렸다며 GD를 상대로 소송을 내기도 했다. 또 다른 거대 군수업체인 맥도널드더글러스(MD)와 공동으로 제작에 뛰어들었던 A-12 해군 공격기 제작사업 역시 1991년 비용 초과와 납기 지연 등으로 계약이 취소되면서 570억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그럼에도 바로 그해 GD는 미 국방부로부터 ‘시울프 공격용 잠수함’ 건조사업을 따내는 수완을 발휘했다. GD의 ‘탈선’ 사례는 일일이 거론하기조차 버거울 정도다. 경제전문지 은 지난 1986년 “많은 미국의 신문 구독자들에게 GD는 국방비 낭비와 부패의 상징”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 시절 미 국방부는 군수업계의 인수·합병을 독려했다. GD는 당시 지지부진하던 미사일 부문을 마틴마리에타(MM) 쪽에 팔아넘기는 대신, 조선 부문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배스아이언워크스(BIW)와 내셔널스틸 등 조선업체를 인수했다. 역시 거대 군수업체로 꼽히는 록히드의 자회사 2곳과 제너럴모터스(GM)의 군용차 부문을 이때 합병했다. 하지만 1997년 장갑차·대포·함포·정밀유도무기 등을 전문 생산하는 유나이티드디펜스(UD)를 손에 넣으려는 계획은 정부의 반대로 실패에 그쳤다. 재밌는 것은 결국 UD를 인수한 업체가 칼라일 그룹이란 점이다. 세계적 사모펀드 업체인 칼라일 그룹은 뉴욕의 칼라일 호텔에서 이름을 땄는데, 크라운 가문의 자문변호사이자 시카고 마피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시드니 코샥이 이곳에 사무실을 두고 있었다. 물론 칼라일과 크라운 가문 쪽이 UD 매각과 관련해 만난 적이 있는지는 지금껏 밝혀진 게 없다.

일상이 된 추문, 새삼 갑갑하여라

크라운 가문은 여전히 GD의 최대 주주로 꼽힌다. 이 업체의 역대 이사진에는 미군에서 최고위직을 지낸 ‘별’들이 즐비하다. 현직 이사진에도 미 해군 제26대 참모총장 출신의 제이 존슨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 사령관을 지낸 조지 줄완, 공군 참모차장 출신의 레스터 라일스, 해병 사령관을 지낸 칼 엡틴 먼디, 영국 해군 중장 출신으로 군수담당관을 지낸 로버트 월슬리 등이 버티고 있다.

물론 GD가 예외는 아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이들의 입김, 조직 범죄와 연계된 이들의 영향력, 관가와 군을 아우르는 ‘회전문’ 인사, 미국의 주요 군수기업을 둘러싼 부패와 추문은 차라리 일상이다. 그럼에도 새삼 갑갑하다. 미국의 첫 번째 흑인 대통령 후보, 그가 말하는 ‘희망’과 ‘변화’의 메시지에 수많은 이들이 환호하는 지금.

뉴욕(미국)=매튜 라이스 자유기고가 nyreport@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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