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한 해 비용만으로도 3900만 미국인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어린이들이 치르고 있는 대가가 너무 가혹하다.” 전쟁터다. 삶은 고단하기 마련이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고단함의 정도는 더해만 간다.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이 출간을 앞두고 2007년 12월 말 미리 공개한 이라크 어린이 현황을 담은 연차보고서 내용을 보면, 4년9개월여 전 전쟁이 시작된 이라크 땅에서 어린이들이 견뎌내고 있는 ‘충격’과 ‘공포’의 일단을 조금은 가늠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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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싸운다, 테러와의 전쟁.’ 한 미군 병사가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북부 바이지에서 벌어진 폭탄공격 현장에서 중무장한 채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이라크·아프간 전쟁으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사진/연합/ REUTERS/ SABA AL-BAZEE)
더 비용이 많은 든 건 제2차 세계대전뿐
이라크에선 매년 가을 새 학년이 시작된다. 2007년 여름 학년 말 시험을 치른 17살 이하 이라크 어린이와 청소년은 전체의 28%에 불과했다고 유니세프는 전한다. 그나마 시험을 치른 아이들 가운데 진급에 필요한 성적을 넘긴 건 전체의 40% 안팎에 그쳤단다. 유니세프는 보고서에서 “지난 2006년 말 현재 전체 초등학교 취학 연령대 어린이의 17%인 76만 명이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며 “2007년 들어 추가로 22만 명의 어린이가 치안 불안 등의 이유로 학교를 떠나야 했다”고 지적했다.
수도 바그다드만 벗어나도 4년이 넘도록 외쳐온 ‘재건·복구’의 구호는 무색해진다. 바그다드를 제외한 이라크 전역에서 전체 어린이의 80%가 하수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주거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안전한 마실 물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란 얘기다.
한 달 평균 2만5천 명의 어린이가 각종 폭력사태와 유혈보복 협박 때문에 살던 곳을 떠나 난민 아닌 난민 신세가 되고 있다. 2007년 말 현재 난민캠프 등 임시 거처에 머물고 있는 어린이만도 7만5천여 명을 헤아린다. 유니세프는 “영양실조와 각종 질병, 학교 교육 중단 등의 위기에 내몰린 이라크 어린이만도 20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라크군 또는 경찰당국에 ‘치안 위협’을 이유로 구금된 어린이가 무려 1350명에 이른다는 건, 전쟁터라는 점을 십분 감안해도 납득하기 어렵다.
이라크의 기이함은 미국의 그것과 맞닿아 있다. 지난 12월26일 ‘테러와의 전쟁’은 ‘큰 산’을 넘어섰다. 미 의회가 12월19일 통과시킨 2008년도 예산안에 이날 조지 부시 대통령이 서명하면서, 공식적으로 베트남전을 ‘발 아래’ 두게 됐다.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벌이고 있는 대테러 전쟁 비용이 베트남전 전쟁 비용을 넘어선 게다.
미 의회가 승인한 2008년도 이라크·아프간 전쟁 비용은 모두 700억달러에 이른다. 민간 싱크탱크 ‘군비통제·비확산센터’는 최근 자료를 내어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베트남전의 전쟁 비용은 6700억달러에 이른다”며 “내년도 예산안 700억달러를 추가한 대테러 전쟁 비용이 마침내 베트남전 전쟁 비용을 초과하기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1991년 걸프전 당시 전쟁 비용은 940억달러에 그쳤으며,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전쟁 비용도 2950억달러에 머물렀다. 트래비스 샤프 ‘군비통제·비확산센터’ 연구원은 인터넷 대안매체 과 한 인터뷰에서 “이제 미국 역사상 대테러 전쟁보다 비용이 많은 든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뿐”이라고 말했다. 2차 대전 당시엔 연인원 1200만 명의 미군이 참전했지만, 대테러 전쟁엔 지금까지 현역 142만 명과 주방위군 100만 명이 동원됐다.
2001~2007년 대테러 전쟁에 쏟아부은 비용은 미국민 1인당 약 4100달러에 이른다. 2007년 한 해 이라크 전비로만 모두 1370억달러의 예산이 투여됐다. 은 “이 정도 금액이라면 3900만 명의 미국인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100만 가구에게 주거를 마련해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천문학적 돈 쏟아진 땅엔 굶주린 어린이
미 시민단체 ‘국가우선순위프로젝트’가 내놓은 더 흥미로운 통계도 있다. 이를테면 중부 대도시 시카고 시민들의 세금으로 부담한 이라크 전비는 지금까지 48억달러다. 이 돈이면 시카고 일대에 초등학교 587개를 지을 수 있단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고향인 남부 텍사스주 소도시 크로퍼드에선 지금까지 이라크 전비로 130만달러를 부담했다. 이 정도면 지역 출신 대학생 180명에게 장학금을 주거나, 경찰 30명을 충원할 수 있는 금액이란다.
한편에선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부어 전쟁을 벌이고, 정작 그 땅에선 어린이들이 굶주리고 있다. 21세기도 지난 세기만큼이나 극단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