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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최대 피해자는 아시아

등록 2007-11-30 00:00 수정 2020-05-03 04:25

1℃ 상승하면 식량생산이 10% 줄어드는 방글라데시 등 전세계 소농의 87%가 몰려 있어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기후변화의 심각성은 잊고 살기 쉽다. 그러다 흉포해진 자연의 위력을 만날 때에야, 새삼 그 위험성을 떠올리게 된다. 지난 11월15일 저녁 8시께 사이클론 ‘시드르’가 방글라데시 남부 지방을 강타했다. 시속 250km에 이르는 강풍과 5m가 넘는 파도를 앞세워 해안을 덮친 시드르의 기세는 가공할 수준이었다. 시드르가 남기고 간 상처는 참혹하기만 하다. 방글라데시 정부가 공식 집계한 사망자만도 11월23일 현재까지 3500여 명에 이른다. 일부에선 “비슷한 수의 주민들이 실종됐으며, 최종 사망자는 1만 명을 넘어설 것”이란 암울한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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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팸과 새경제재단의 보고서

구호단체 등의 비공식 집계를 보면, 시드르의 횡포로 27만3천여 채의 가옥이 완파됐고, 90만여 채가 침수되거나 반파됐다. 이로 인해 줄잡아 3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34만6천여ha의 농경지가 침수됐다. ‘액션에이드’ 등 구호기관들은 “이번 사이클론 피해로 방글라데시 농업 기반 자체가 붕괴 지경에 이르렀다”고 지적한다. 이 단체 운니크리슈나 피비 자문위원은 11월21일 과 한 인터뷰에서 “사이클론 시드르가 할퀴고 간 상처로 방글라데시 경제발전이 한 세대 이상 늦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지역 공동체의 기반을 재건·복구하는 것은 장기적인 과제이며, 구호작업을 지원하는 국제사회도 이런 현실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후변화가 만들어낼 파괴의 주요 무대는 어디가 될까? 세계적인 구호기관 ‘옥스팸’과 영국의 진보적 연구단체인 ‘새경제재단’(NEF)은 최근 펴낸 96쪽 분량의 공동 보고서 ‘연기처럼 사라지다?-기후변화가 인간개발과 환경에 가져올 위협’에서 단연 ‘아시아·태평양 지역’이라고 꼽았다. 근거는 명확하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는 지구촌 인구 3분의 2에 해당하는 40억여 명이 살고 있다. 특히 이 중 절반가량은 해안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기후변화가 몰고 올 해수면 상승은 이들에게 가히 ‘재난’이라 부를 만하다. 기후변화로 인해 강수량이 들쭉날쭉해지면서, 식량 생산량도 급격히 줄어들 것이란 전망도 여전히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아시아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더구나 아시아엔 전세계 4억 명에 이르는 소농 가운데 87%가 몰려 있다. 비에 의지해 농사를 짓는 이들에게 기후변화가 몰고 올 불가측성은 생존권이 걸린 문제다. 보고서 내용을 좀더 살펴보자.

보고서는 기후변화가 몰고 올 현실의 단면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선 지구촌의 기온이 1℃만 올라가도, 방글라데시 전 국토의 11%가 물에 잠기게 된다. 이는 수백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고 떠돌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사이클론 시드르가 값비싼 대가를 요구하며 경고한 것도 바로 이런 점일 게다.

건조기후대는 물 부족, 열대 지역은 홍수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 사정 악화도 방글라데시 사례가 잘 보여준다. 전체 인구의 70%가량이 농업에 기대 사는 방글라데시에선 기온과 강수량 변화로 경작 가능 지역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국제쌀연구소(IRRI)는 최근 내놓은 자료에서 “농사철에 밤 기온이 1℃ 높아질 경우 세계 쌀 생산량은 10%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엔 정부간패널(IPCC)도 올 들어 잇따라 내놓고 있는 평가보고서에서 “오는 2050년까지 전세계 쌀 생산량이 8%, 밀 생산량이 32%까지 각각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광활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그 면적만큼이나 기후 조건이 다양하다. 북아시아의 한대 지역에서 건조한 사막기후가 있는 유라시아 일대까지, 그리고 동북아의 온대 지역에서 각종 동식물이 넘쳐나는 열대우림 지역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기후대가 아시아 전역에 펼쳐져 있다. 보고서는 “기후변화가 아시아 각 지역에 끼칠 영향 또한 지역의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라며 “건조 기후대 지역에선 기왕에 부족한 수자원이 더욱 메마르면서 물 부족으로 인한 어려움이 갈수록 커지는 반면, 열대·온대·한대 지역에선 홍수 피해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계 인구의 3분의 1가량이 몰려 살고 있는 중국과 인도 두 나라 사례를 들여다보자. 보고서는 먼저 “지난 1990~2001년 중국과 인도에서 약 2억5천만 명이 하루 수입 1달러 이하의 빈곤선상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럼에도 “두 나라엔 여전히 빈곤선 아래서 허덕이는 인구가 넘쳐나고, 영유아 사망률도 지역에 따라 6명 가운데 1명꼴로 높은 경우도 흔한 상황”이라며 “특히 인도 남부 지역에선 5살 이하 어린이 절반가량이 영양실조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이런 상황에서 “기후변화로 인해 농업 환경이 극도로 취약해질 경우, 만성적인 빈곤과 식량 부족 사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란 점은 자명하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새 가뭄이 극심한 인도의 마하라슈트라주 등지에선 빚더미를 견디다 못한 농민들의 자살이 급증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중국에선 상반된 두 상황이 공존하고 있다. 보고서는 “양쯔강 하류 저지대에선 장마철 강수량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지난 몇 년 새 홍수 피해가 잇따른 반면, 북부의 건조한 지역에선 1970년대 이후 꾸준히 기온이 상승하면서 강수량도 해마다 줄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내놓은 ‘기후변화에 관한 국가평가보고서’(NAR)에서 “현 상황에서 기후변화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없다면, 중국의 농업 생산량이 오는 2050년까지 5~10%가량 줄어들 것”이라며 “2050년 이후에는 중국의 3대 농산물인 밀과 쌀 그리고 옥수수 생산량이 각각 최대 37%까지 줄어들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장기적인 발전이 발목을 잡네

“기후변화가 몰고 올 재난을 막는 유일한 대안은 부유한 국가들이 ‘사치스런’ 온실가스 배출량을 극적으로 줄임으로써 가난한 국가의 ‘생존을 위한’ 온실가스가 재난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아시아가 화석연료에 의존한 서구식 경제개발의 발자취를 따른다면, 오히려 장기적인 발전의 발목을 잡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보고서 공동 집필자로 참여한 앤드루 심스 새경제재단 정책국장은 “아시아 지역은 최근 빈곤 해소에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량도 급격히 늘면서) 결과적으로 기후변화의 재난에 직면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인터넷 대안매체 은 11월21일 심스 국장의 말을 따 “결국 지구 온난화로 인해 아시아 각국이 이룩한 사회·경제적 진보가 퇴색되고, 되레 역행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지구촌 차원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력의 상징인 ‘교토의정서’가 아시아에서 체결된 것도 우연은 아니었던 게다. 유엔은 오는 12월3~14일로 예정된 제13차 기후변화회의를 또 다른 아시아 국가인 인도네시아의 발리에서 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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