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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여자들이 모여산다

등록 2007-08-17 00:00 수정 2020-05-03 04:25

독일 뮌헨 옛 공항 부지에 49가구 7월 입주… 두 살배기가 48명의 이모와 할머니 앞에서 꺄르르

▣ 뮌헨=글·사진 김재희 서울예대 교양학부 겸임교수

여자들이 산다. 이 얘길 처음 들은 건, 2000년 하노버 세계박람회에서였다. 21세기를 준비하는 다양한 상상력 중 여자들의 ‘사는 문제’를 해결할 프로젝트가 여럿 채택됐는데, 동네마다 명칭은 달라도 요지는 비슷했다. 독립은 좋지만 고립은 싫고, 옛날처럼 아이들 함께 키우고 서로 돌보는 일은 기껍지만 사생활 침해는 사절이다. 노령화와 인구 감소, 전통적인 가족제도의 해체, 외국인 증가에 따른 다문화 추세 등 사회구조의 변화를 받아들이되, 특히 여성들의 삶의 주기에 맞는 주거문화를 실현하자.

부엌 딸린 회의실과 자기만의 방

그녀들의 꿈은 간소하고 실용적이다. 집 없는 설움 없이 살기, 사생활을 존중하고 세상사에 대한 관심과 관용을 공유하기. 이를 위해 여러 연령층이 다양한 국적을 아우르며 함께 살면서, 주민들의 의사를 수렴하는 자치기구를 만들고, 환경친화적 에너지를 활용하며, 노인과 장애인이 불편 없이 사는 집을 짓고, 일터와 거주지 사이의 접근성을 쉽게 해, 한마디로 지속 가능한 생활을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논의가 결실을 맺어 독일 뮌헨시 옛 공항 부지에 둥지를 틀었다. 뮌헨 중앙역에서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동쪽으로 20분 가면 리임 종착역. 여기서 내려 2~3분 걸어가면 호수공원 못 미쳐에 있다. 상상이 현실이 되기까지 240명의 여성이 참여해 의견을 수렴하고 일인당 150만원 정도를 갹출해 조합을 꾸렸고 설계 및 시공에 여성 전문 인력을 참여시켰다. 7년 세월 끝에 49가구 공동주택을 완공했다. 지난 겨울 입주를 시작해 지난 7월 완료됐다.

한 가구의 크기는 45~60㎡. 좀더 큰 공간은 독신이 아닌 가구의 몫이다. 여성의 이름으로만 조합원 등록이 허용되지만, 남편이나 남친의 동거는 허용을 넘어 환영이다. 넓은 면적은 아니라도 짜임새 있게 공간을 설계해 침실, 거실, 욕실, 부엌, 햇빛도 종종 쏟아지는 베란다에다 1층에 사는 가구는 제법 널찍한 마당까지 지닐 수 있도록 두루 갖추었다. 공동 공간인 ‘부엌 딸린 회의실’과 중앙 마당, 공작실, 작업실, 창고 등이 확보돼 부산한 일은 거기서 한다. 친지나 방문객들은 미리 신청하면 저렴한 비용으로 별채에 묵을 수 있으니( 독자 중 뮌헨을 찾는 무리에게도 기회는 열려 있다), 거주자의 ‘자기만의 방’은 철저히 사적 공간으로 남는 셈이다.

입주 비용은 가구당 출자금 3천만~5천만원, 월세 40만~60만원 정도. 이 비용은 조합에서 안은 빚과 이자를 탕감하는 데 쓰일 뿐 누군가의 이윤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독일에서 생활비가 가장 비싸다는 뮌헨 형편에 비추면 거주 비용이 꽤 싼 편이다. 하지만 조합의 공동 재산이므로 자기 집에 평생 거주할 권리는 갖되 개인에서 개인으로 양도할 수는 없다. 이사를 나갈 때는 다시 적절한 입주자를 찾아 조합원 권리를 양도하고 출자금을 돌려받을 뿐 집값이 올랐다고 그 몫을 챙길 수는 없다.

우여곡절이 없었던 건 아니다. 황량했던 옛 공항 부지 한켠의 땅을 저렴한 가격에 매입하느라 뮌헨시와 바이에른 주정부, 연방정부와 유럽연합(EU)에서 쥐꼬리만 한 보조금을 타내기까지 산더미처럼 쌓이는 서류를 작성했으나, 담당자들이 바뀌면서 예산 확충에 차질도 있었다. 함께 시작한 조합원 중 많은 수가 빠져나갔고, 진행은 더뎠다. 공동육아라는 반가운 소식에 끼어들었던 젊은 엄마들도 그사이 아이들이 다 자라서 더 이상 기 쓰고 남아 있을 이유가 없어지기도 했다.

사실 이 프로젝트는 리임뿐 아니라 전혜린을 통해 알려진 슈바빙 인근에서도 최근까지 재건축 차원에서 추진됐으나, 지가와 건축비 상승으로 무산됐다. 리임보다 조금 더 문화적인 혹은 낭만적인 동네에서 살아보기를 꿈꾸던 여자들의 낙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49가구 입주가 완료된 지금, ‘리임의 여자들’은 올해 바이에른주가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주거단지 상’을 받았고 미래의 주거양식 모델이라는 호평 속에 여러 매체의 취재대상도 됐지만, 진짜 숙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입을 모은다. 기존 사회에서는 결핍이 장애였으나, 이들의 공동체는 그걸 메우려는 노력에서 오히려 결속력이 생기리라는 희망도 이야기한다. 10명 남짓한 두 살배기부터 사춘기까지의 아이들이 새로 생긴 48명의 이모와 할머니와 오순도순 정을 나눌 수 있는 프로그램 짜기, 민주적으로 서로의 기대와 요구에 부응하는 생활규칙을 만들고 조절하기, 실업 상태인 여자들의 취업이나 창업을 돕는 ‘경제적 연대’를 위한 온갖 계획들이 차근차근 준비되고 있으니, 3년쯤 뒤에 다시 한 번 놀러와서 그 결실을 확인하라고 주문한다.

3년쯤 뒤에 들러 결실을 확인하라

물론 새로운 고민들도 계속 생겨날 것이다. 마지막에 입주한 여성은, 입주가 마무리되기 한 달 전 가방 6개와 개 한 마리를 끌고 40여 년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체류와 20여 년의 오스트레일리아 생활을 접고 고향에 돌아온 95살의 사고무친한 노파다. 뮌헨역을 순찰하던 경찰들의 소개로 일주일만 쉬어가겠다고 들어왔다가, 그냥 주저앉아 살겠다고 버티고 있다. 노파의 통장엔 출자금과 월세를 충당할 비용은 충분히 있지만, 눈곱만큼의 사회의식은커녕 평생을 자기밖에 모르고 살아온 버릇을 고집하니, 그녀의 치다꺼리도 예상에 없던 새로운 골칫거리다.

이곳에 제일 먼저 입주한 10명의 왕언니들은 대개 넉넉한 연금을 받고 있어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느긋한 삶을 누리는 편이다. 이들은 새로운 손주들을 돌봐줄 체력과 용의가 있을뿐더러, 이 일이 자신들의 삶에도 활력을 준다고 자랑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대부분은 그녀들의 청춘을 흔히 말하는 68세대의 감동으로 적셨던 주인공들이다. 사회적 관심이 남다른 이유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귀하고 귀한 새끼들의 터무니없는 사교육비를 지출하느라, 어제도 오늘도 심지어 내일까지 저당 잡힌 채 하루하루를 곤욕스러워하는 이 시대 한국의 부모들에게는 한 번쯤 마음을 가다듬고 다른 세상을 둘러보라고, 우리의 노후를 위해 챙겨야 할 건 밑 빠진 독에다 물 붓는 식의 애들 사교육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다채로운 상상력을 엿보고 행복을 찾아내는 궁리를 하는 거, 뭐 이런 게 아니겠냐고, 빚을 내서라도 한 번쯤 길을 떠나 이런 사람들이 사는 법을 슬쩍 보고 오라고 덧붙이고 싶다.



“젊은이들 틈에 살고 싶어 꾀를 낸 거야”

프로젝트를 끌고 온 왕언니 리카 자이예드



조합원 중 리카 자이예드(72)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대저택을 처분한 돈을 이 프로젝트에 쏟아부었다. 그러고 나서 3년 반 동안 캠핑카를 타고 유럽을 떠돌다 아마 그녀 삶의 마지막 거처가 될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가 이 새로운 삶의 양식에 노후를 걸게 된 사연은 20세기의 복잡다단했던 세계사와 두루 얽혀 있다.
“나치 독일이 혐오스러워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거든. 영국에 갔다 첫눈에 반한 파키스탄 남자랑 사랑에 빠져 결혼했고, 그를 따라 10년 남짓을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사람들 사이에서 행복하게 살았어. 그랬는데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친정이 있는 뮌헨에 청상과부의 몸으로 돌아왔어. 1970년대였지만 여자 혼자 혼혈 아이 둘을 키우는 일은 녹록지 않았지.”
이런 체험이 그녀 삶의 장기적 목표와 비전 하나를 마련해준 셈이지만, 이를 추진한 내공은 30여 년 평화운동에 참여하며 쌓은 것이다. 처음엔 미국이 소련을 견제하는 어마어마한 미사일을 독일에 설치한다 해서, 그런 멍청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동네 사람들 따라 집회에 참석했다. 모인 사람들이 밤새워 나누는 얘기를 듣다 보니 궁금한 점이 늘었고, 그래서 틈틈이 책을 보며 정치의식을 키웠던 것 같다고 한다.
“외모가 다른 탓에 설움을 겪어야 했던 내 딸들 입장에서 세상을 보는 버릇이 생겼는지도 몰라. 우리 애들이 겪는 설움이 그녀들 안에서 더 밝고 큰 힘으로 바뀔 수 있기를 바라며, 나름대로 다양한 실험을 했지.” 40대에 접어든 두 딸은 일찌감치 독일을 떠나, 큰딸은 영국, 작은딸은 스페인에서 살고 있다.
“나 혼자서, 커다란 저택에서 파출부나 들볶는 외로운 노인네로 살고 싶지 않았거든. 젊은 사람들 틈에 끼어 살고 싶어서 꾀를 낸 거야. 특히 독일에 와서 사는 외국 여자들, 여기서 아기 낳아 힘들게 사는 여자들의 이웃으로, 그 아이들 함께 키우고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세상이 얼마든지 더 살 만한 곳이 될 수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더라고.”
‘여자들이 산다’ 프로젝트의 실질적 대모지만, 그녀의 공식 직함은 없다. 새로 생긴 손주들이 심심하거나 배고플 때 쪼르르 찾아가는 할머니로 사는 여생은 충분한 축복이라는 리카에게 남은 꿈이 있다면, 파키스탄이 예전의 전통과 평화를 되찾아 두려움 없이 딸들의 고향에 함께 가는 일이다. 아름답고 기품이 넘치던 파키스탄의 시누이와 동서들을 죽기 전에 꼭 한 번 다시 만나고 싶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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