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정부 견해를 반박한 윌슨의 기고와 부통령의 ‘폭로’ 공작…로브는 물론 체니도 주범이란 정황이 여기저기 드러나지만 비서실장 처벌에 그쳐
▣ 정의길 기자 한겨레 국제팀 egil@hani.co.kr
“행정부에서의 경험에 비추어보건대, 나는 이라크의 핵무기 계획과 관련된 정보의 일부가 이라크의 위협을 과장하기 위해 왜곡됐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뒤 개전 명분이던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아 그 정당성에 회의가 본격화되던 2003년 7월6일, 에 실린 미국의 전직 외교관 조지프 윌슨의 기고는 그 회의에 기름을 부었다. 아프리카와 중동 외교통인 윌슨은 이라크 침공에 앞서 2002년 2월 중앙정보국(CIA)의 요청에 따라 아프리카 니제르를 방문한다. 1990년대 후반 이라크가 니제르로부터 핵무기 원료인 정제 우라늄을 구입했다는 정보를 확인하는 게 임무였다. 이는 딕 체니 부통령실이 요청한 사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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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통령실 요청으로 파견되었는데…
그는 니제르 현지에서 프랑스 등 4개 서방국과 니제르 정부의 컨소시엄 형태인 우라늄광업회사의 엄격한 관리, 국제원자력기구의 감독, 또 니제르 정부의 통제 등으로 정제 우라늄이 이라크로 넘어갈 수 없다고 결론냈다. 니제르와 이라크 사이에 맺었던 정제 우라늄 판매 양해각서의 정부관리 사인도 위조된 것으로 밝혀졌다. 현지 미국 대사관도 같은 의견으로, 이미 본국에 보고한 상태였다.
그해 9월 니제르 건은 다시 떠올랐다. 영국 정부는 이라크가 아프리카의 한 국가로부터 우라늄을 구입하려 했다며,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이 임박했다는 백서를 발간했다. 그리고 2003년 1월 연두교서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은 영국의 정보를 인용해 이라크의 우라늄 구입 혐의를 다시 강조했다. 윌슨으로서는 황당했다. 자신이 확인한 정보는 부통령실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당연히 백악관에 보고됐을 텐데, 대통령이 연두교서에서조차 잘못된 정보를 밝혔기 때문이다. 두 달 뒤 미국은 유엔의 결의조차 없이 이라크를 침공했다. 그러나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내 정보가 이라크에 대한 어떤 선입견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무시됐다면, 우리가 잘못된 전제에 따라 전쟁에 들어갔다는 정당한 주장을 할 수 있다.” 윌슨의 기고가 큰 반향을 일으켰음은 물론이다. 약 일주일 뒤인 7월14일 보수 성향의 칼럼니스트 로버트 노박의 글이 등에 실렸다.
“윌슨을 아프리카에 보낸 중앙정보국의 결정은 조지 테닛 국장이 모른 채 실무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고… 그의 보고를 중앙정보국은 결정적으로 보지 않았으며 테닛이 봤는지도 의심스럽다. 특히 부시 대통령은 안 봤을 것이 확실하다.” 윌슨의 정보활동을 깎아내린 노박은 윌슨의 아프리카행이 부인의 영향력으로 이뤄진 것임도 밝혔다. 즉, 부인 덕택으로 관비 여행을 했다는 뜻을 넌지시 풍긴 것이다. “윌슨은 중앙정보국에서 일한 적이 없으나, 부인 발레리 플레임은 이 기관의 대량살상무기 담당 요원이다. 윌슨의 부인이 그를 니제르에 보내자고 제안했다고 2명의 고위 관리가 나에게 말했다.”
그의 부인은 중앙정보국 비밀요원이었다. 윌슨은 비밀요원의 신원을 공개한 것은 부인과 가족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위법 행위이며,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전을 비판하는 자신에게 보복하려고 의도적으로 흘렸다고 주장했다. 결국 특별검사 패트릭 피츠제럴드가 임명되고, 2004년 2월부터 수사가 본격화됐다. 그리고 3년이 흐른 지난 3월6일 워싱턴 연방 지방법원 배심은 이 사건과 관련해 유일하게 기소된 딕 체니 부통령의 전 비서실장 루이스 리비에 대해 사법절차 방해, 위증 등의 혐의로 유죄를 평결했다.
먼저 플레임의 신원을 노출한 노박의 칼럼이 나온 배경을 보자. 노박은 2001년 리처드 아미티지 당시 국무부 차관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바쁘다’는 이유로 몇 차례 거절당한 뒤 2003년 6월 아미티지 사무실로부터 뒤늦게 인터뷰를 하자는 전화를 받았다. 그가 7월8일 아미티지를 만나 인터뷰하면서 이틀 전 나온 윌슨의 기고와 관련해 그의 아프리카행에 대해 질문하자, 아미티지는 “그것은 중앙정보국 반확산부서에 근무하는 그의 부인이 제안한 것이다”고 답했다. 다음날 노박이 부시 정권의 최대 실세인 칼 로브 백악관 부비서실장에게 확인을 요청하자, 로브는 “당신도 그걸 들었군”이란 대답을 했다. 로브는 기다렸다는 듯이 노박에게 확인을 해준 것이다.
“당신도 들었군” 기다렸다는 듯이 확인
아미티지는 플레임이 비밀요원임을 알지 못했고, 그냥 지나가는 말로 무심결에 대답했을 뿐이라고 주장하나, 노박은 그가 플레임의 부서를 특정해 말하며 윌슨의 아프리카행이 그녀에 의해 이뤄진 것임을 단호하게 말했다고 반박했다. 또 노박은 아미티지가 이 사안이 자신의 칼럼 주제와 부합될 것임을 명백히 했다고 주장했다. 아미티지가 리크게이트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는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그가 이미 한 달 전인 6월13일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친 밥 우드워드 부국장에게도 플레임의 신분을 발설한 것으로 보아,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그때는 딕 체니 부통령실이 윌슨을 흠집내기 위해 조직적으로 나서기 시작할 때였다.
윌슨이 에 문제의 기고를 하기 두 달 전부터 언론에는 이라크의 우라늄 구입에 대한 한 전직 외교관의 반박 정보를 부시 행정부가 무시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리비와 체니는 이미 은밀한 공작을 진행 중이었다고 지난 2월20일 는 보도했다. 이 보도를 보면 체니는 이미 그때쯤 리비에게 주디스 밀러 등의 기자들에게 접근해 언론 플레이에 나서라고 지시했다. 윌슨의 보고에도 백악관이 잘못된 정보를 믿을 만한 수많은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고, 윌슨의 신뢰성을 깎아내리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리비는 중앙정보국의 2002년 10월 국가정보평가 등 비밀문서를 흘리려 했다. 그러자면 기밀 해제가 필요했으나 중앙정보국이 반대하자, 중앙정보국이 알지 못하게 대통령에게서 직접 인가를 받았다. 체니가 직접 부시를 찾아가, 기밀 해제를 얻어냈다.
리비는 윌슨의 기고 2주 전에 이미 밀러 기자에게 정보를 흘렸다. 그녀가 이를 기사화하지 않자, 7월8일 다시 그녀를 호텔에서 만나 정보를 전했다. 그럼에도 밀러가 기사화하지 않자, 그날 리비는 〈NBC〉의 안드레 미첼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기밀문서를 그대로 읽어줬다고 그의 비서가 증언했다. 그는 그 뒤 이틀 간격으로 〈MSNBC〉의 팀 러서트, 의 매튜 쿠퍼 기자에게도 정보를 전했다. 효과는 엉뚱하게 나타났다. 언론들은 ‘백악관은 윌슨의 정보를 무시하게 된 것은 중앙정보국의 10월 보고서 때문이라고 본다’고 보도했다. 부시에게 책임의 소재가 분담된 것이다. 또〈MSNBC〉 등은 체니가 윌슨의 정보를 무시했다고 계속 보도했다. 백악관 쪽은 결국 7월22일 스티브 헤들리 안보보좌관이 나서 자신의 실수 때문에 잘못된 정보가 대통령의 연두교서에 들어갔다고 사과했다.
특별검사가 수사 중이던 2005년 5월1일 영국의 는 미국의 이라크전 정보조작을 확인하는 ‘다우닝가 메모’라는 비밀정보 문서를 보도했다. 2002년 7월23일 미국과 영국의 국방장관과 정보기관장들이 워싱턴에서 이라크전 개전과 관련한 비밀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 대해 영국 해외 정보기관인 MI6의 책임자 리처드 디어러브는 “군사 조처는 지금 불가피해 보인다. 부시는 테러와 대량살상무기를 이유로 군사 조처를 통해 사담을 제거하길 원했다. 그런데 정보와 사실들이 이런 정책에 맞게 맞춰지고 있다”고 말했다고 이 문서에는 적혀 있다. 리크게이트를 촉발한 이라크전 개전 정보가 조작됐음을 영국 정보기관장이 인정한 것이다.
워터게이트는 이에 비하면 별거 아냐
리크게이트에서 남는 문제가 부시 정권의 최대 실세인 칼 로브와 체니이다. 특히 로브는 당초 자신은 플레임의 신원을 흘리지 않았다고 언론에 단호히 부인했다. 그러나 수사가 심상치 않자 그는 특별검사 앞에서는 노박 등에게 신원을 확인해줬다고 인정했다. 리비가 위증으로 기소된 것과 달리 그는 기소를 면했다. 리비는 재판 과정에서 자신은 로브를 위한 희생양이라고 주장했다. 로브 때문에 리비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체니의 메모도 재판 중에 드러났다.
로브는 말할 것도 없고, 체니도 리크게이트의 ‘주범’이란 정황은 여기저기서 드러나나, 그들은 모두 빠져나갔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사임을 부른 워터게이트는 사실 리크게이트에 비하면 그 내용이 보잘것없다. 그럼에도 리크게이트에서 부통령 비서실장만이 위증으로 처벌된 데 그친 것은 행정부와 의회를 모두 장악한 공화당 정권에서 타락한 미국의 도덕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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