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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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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3개국 르포 ② 이란]미국의 이란 침략? 설마…

등록 2007-03-16 00:00 수정 2020-05-03 04:24

“이라크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마당에 설마 전선을 넓힐 수 있을까”…폭탄테러도 드문 안전국가… 대학도 공항 검색대가 옮겨온 듯이 삼엄하게 경계

▣ 테헤란(이란)=글·사진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kimsphoto@hanmail.net

시리아 다마스쿠스 공항에서 비행기로 3시간 걸려 이란 테헤란 국제공항에 닿은 때는 밤 11시께. 한국인이 테헤란 공항에서 입국비자를 받으려면 50달러의 요금을 물어야 한다. 미국인 여행객이 100달러를 내야 하는 것에 비하면 훨씬 싸지만, 이슬람권 여행객들에 비해선 비싼 편이다. 이란과 가까운 나라냐, 아니면 반이란 정책을 펴느냐가 비자 수수료의 높고 낮음을 재는 하나의 잣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규율의 원천은 시아파 종교

테헤란 공항 출입국 관리들은 그런대로 규율이 있어 보였다. 다마스쿠스 공항의 관리들이 담배를 피워물고 여권에 도장을 찍는 모습과는 크게 달랐다. 개인의 자유를 어느 정도 통제하는 사회라는 점에선 시리아가 이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다. 그런데도 다마스쿠스 공항에서 여행객들은 출입국 관리를 180도 각도의 부채꼴 모양으로 둘러싸고 새치기를 하는 무질서한 모습을 보였다. 이란의 첫인상은 나름의 규율과 질서가 있다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테헤란 시내를 걸으면 이란을 지배하는 규율의 원천이 이슬람 시아파 종교에 있음을 보여주는 여러 징표들을 볼 수 있다. 1979년 친미독재 팔레비 왕조를 몰아낸 이슬람 혁명의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대형 초상화가 지금의 최고 종교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얼굴과 함께 고층 건물의 벽을 차지하고 있다. 두 사람의 대형 입간판들도 거리를 메우고 있다. 검은 차도르를 온몸에 둘러쓰고 거리를 걷는 여성들의 모습도 흔하다. 이슬람과는 거리가 먼 외국 여성이라도 적어도 머리카락은 천으로 가리고 거리에 나서야 한다.

이런 종교적 규율을 반영하듯, 이란의 취재 환경은 극히 열악했다. 이란 혁명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와 이란-이라크 전쟁(1980~88) 때 전사한 사람들(이른바 ‘순교자들’)을 그린 대형 벽화를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보안요원임을 자칭하는 사내가 다가와 “이란 정부의 허가를 받았느냐”며 시비를 걸어오기도 했다. 만나는 사람이 대학교수이든 언론사 기자든, 이란에서 취재원에게 다가가려면 열에 아홉은 “정부(이란 공보부)의 허가를 받았느냐?”고 물었다. 이란이나 시리아 같은 통제사회에선 취재비자라고 암행어사 마패처럼 통하지도 않는다. “한 달이나 걸려 간신히 취재비자를 얻어갖고 들어갔다가 일도 못하고 돌아왔다”는 한 방송사 기자의 푸념이 엄살이 아니다.

이란 대통령이 참여한 예배의식에서…

금요일. 이란의 간판급 대학인 테헤란대학에서 오전 11시부터 열리는 대규모 예배의식을 참관하러 나섰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삼엄한 경비태세였다. 테헤란대학으로 통하는 모든 도로의 자동차 통행이 금지됐다. 참석자들은 1~2km쯤을 걸어서 대학으로 들어갔다. 대학 정문에 선 보안요원들은 출입자들에게 신분증을 보여주길 요구했고 그들이 메고 있던 가방도 뒤졌다. 대학 구내에 들어서자마자 2t 트럭을 개조한 보안검색용 차량과 마주쳤다. 들고 있던 가방을 그곳에 집어넣어 폭탄 같은 위험물질이 없음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했다. 마치 공항의 검색대를 대학으로 옮겨온 것과 같았다.

1만 명 가까이 자리잡은 청중이 술렁대기에 카메라 망원렌즈로 바라보니, 이제 막 현장에 닿은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의 얼굴이 보였다. 예배는 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까지 정확히 2시간 동안 진행됐다. 그 가운데 많은 시간을 이슬람 성직자의 설교가 차지했다. 그곳은 거대한 정치교육 현장이었다. 설교자는 이란 시아파 고위 성직자인 사예드 아마드 카타미. 설교 내용은 미국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비판하는 것들이었다. “부시의 미국은 이슬람 시아파와 수니파 사이의 싸움을 부추기고 즐긴다.”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도와줌으로써 중동 지역을 불안하게 만든다.” “이라크 침공의 속내가 석유였는데도 엉뚱하게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를 구실로 삼았다.” 카타미는 최근 이란의 핵에너지 개발을 둘러싼 미국과의 갈등에도 초점을 맞췄다.

“이란 핵에너지에 대한 미국 부시 행정부의 압박이 부당하다.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을 추구하려는 이란 정부의 정책을 사람들이 잘못 인식하도록 부추기는 것도 미국의 새로운 전술이다. 부시 행정부는 이란에 대한 심리전을 펴고 있으며, 이란 혁명의 성과물들을 깎아내려 이란인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려 한다. 이란혁명은 이슬람권 국민들에게 밝은 미래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그들로 하여금 외국 세력, 특히 미국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요구하도록 용기를 북돋았다. 전쟁광인 부시의 미국은 이란을 약화시키려는 새로운 정책을 펴고 있다. 우리 이란인들은 외부의 적대적인 세력에게 결코 위협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힘으로 윽박지르거나 위협하는 것은 이란에 대한 가장 미련한 정치적 접근방식이다.”

빡빡한 일정 탓일까? 설교가 이어지는 사이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피곤한 듯 한참 동안 눈을 감았다 뜨곤 했다. 예배가 끝난 뒤 사람들이 악수를 청하려 몰려들자, 그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키가 작아 덩치 큰 경호원들에 파묻혀 있는 듯한 모습이다. 경호원들의 얼굴이 더 굳어졌다. 아마도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이라크 수니파 저항세력이 벌이는 것과 같은 유형의 폭탄테러일 것이다. 이웃나라 이라크와 달리 이란에서는 지금껏 자살폭탄 공격이 발생하지 않았다. 이란에서는 일반적인 폭탄테러조차 드물다. 2005년 6월 이란 대선 무렵 수도 테헤란 중심가인 이맘 후세인 광장과 이란 남서부 석유도시 아바즈에서 5차례 폭탄이 잇달아 터져, 9명이 숨지고 70여 명이 다친 사건은 1979년 호메이니의 이슬람혁명 뒤로 처음 벌어진 사건이었다.

석유를 둘러싸고 뿌리 깊은 반미

이란에서 만난 언론사 간부들은 “그래도 지구상에서 이란만큼 안전한 나라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란의 보수적인 영자신문 의 편집국장 하미드 나자피는 “미국 뉴욕이나 시카고에는 강도들이 설치지만, 이란에선 한밤중에 아무 걱정 없이 거리를 걷는다”고 말했다. 그런 나자피의 말 속에는 강한 반미 감정이 배어 있었다. “이란의 반미 감정은 뿌리가 깊다. 지난 1953년 이란 팔레비왕을 복권시키기 위한 친위 쿠데타에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개입, 석유 국유화를 밀어붙였던 민족주의자 모하마드 모사데그 총리를 몰아낸 것이 한 보기다. 친위 쿠데타가 성공하면서 이란의 석유 이권은 미국 40%, 영국 40%, 이란 왕조 20%의 비율로 나뉘었다. 1979년 샤 왕조가 호메이니 혁명으로 무너질 때까지 미국의 석유 메이저들은 이란의 석유 이권을 챙겨갔다. 이란의 반미 감정이 달리 나온 게 아니다.”

1979년 이래 미국은 이란을 적성국가로 꼽아왔다. 조지 부시 행정부는 이란을 ‘악의 축’ 국가로 규정했다. 미국은 이란에 대해 30년 가까이 여러 형태의 경제제재를 펴왔다. 21세기 들어 미국-이란 두 나라 사이의 긴장은 이란이 핵에너지 개발 움직임을 펴면서 더욱 강화된 모습이다. 게다가 미국이 이라크에서 많은 미군 사상자를 내온 ‘폭발물 형태의 발사체’(EFPs)를 이란이 이라크 시아파 저항세력에게 제공해왔다고 주장함으로써 두 나라 사이의 갈등은 더욱 커졌다. 미국은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이란에 대해 여행 금지, 자산 동결, 무기 금수, 무역 제재 등의 제재를 늘리길 원한다.

테헤란 현지의 목소리들은 “이란의 핵에너지 개발 논리는 어디까지나 평화적인 목적”이라는 데로 모인다. “알다시피 이란은 석유 매장량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2위로, 석유가 풍부한 나라다. 그러나 석유는 유한한 자원이다. 언제까지 석유에 기댈 수는 없다. 석유는 이제 40~50년만 지나면 바닥이 난다. 우리가 핵에너지를 개발하려는 것도 바로 그런 장래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핵무기를 만들려면 순도 95% 이상의 고농축 우라늄이 필요하지만, 이란이 만들려는 것은 5% 이하의 저농축 우라늄이다. 그걸 갖고 미국이 시비를 거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모하마드 레자 에르파니안 편집국장)

“중동 비핵화의 적은 미국과 이스라엘”

“이란은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국이다. NPT 4조는 ‘가입국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 아래서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를 포함, 평화적으로 핵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고 못박고 있다. 이란은 바로 그 조항에 바탕해 평화적 핵 이용권을 갖는다. 그것은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권리다. 우리 이란은 오래전부터 ‘중동 핵 자유지대’를 주창해왔다. 중동의 비핵화를 지지한다는 얘기다. 중동 비핵화를 방해하는 존재는, 다름 아닌 미국과 이스라엘이다.”(테헤란 전략연구센터 나세르 사그하피 아메리 선임연구원)

미국이 이란에 군사적 위협을 가할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2007년 들어 이란의 핵에너지 개발을 둘러싼 미국과의 갈등이 전쟁으로 번져, 미국이 이란을 공격해올 가능성을 물으면 “설마 미국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의 나자피 편집국장은 “미국이 이라크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마당에 감히 이란으로 전선을 넓히려 할 것으로 보느냐”고 되물었다.

이란 지식인들은 “이란은 이라크와 다르다. 미국도 그걸 알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호세인 사이프자데 테헤란대학 교수(정치학)는 그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이란은 이라크에 비교가 안 될 만큼 큰 나라다. 국토 면적에서 4배, 인구에서 2.5배나 차이가 난다(이라크 2600만 명, 이란 6800만 명). 더욱 결정적인 차이는 이라크가 수니, 시아, 쿠르드로 분열된 데 비해 이란은 시아파가 90%를 차지하는 만큼 정신적으로 하나로 뭉쳐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이란을 침공한다면, 지난 4년 가까이 이라크에서 보이는 저항보다 훨씬 큰 저항이 일어날 게 틀림없다.” 이란의 통신사 의 편집국장 파르비즈 에스마엘리도 사이프자데 교수와 같은 논리에서 “만약 미군이 이란 땅을 밟는다면, 이곳은 미국 침략자들의 무덤이 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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