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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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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민심은 갈대처럼

등록 2007-02-16 00:00 수정 2020-05-03 04:24

2년 새 반시리아 운동의 성지에서 친시리아계의 보루로 변한 ‘순교자 광장’…유혈사태 이어지면서 헤즈볼라를 열렬히 지지한 남부 지역에서도 비판 목소리가…

▣ 베이루트=김동문 전문위원 yahiya@hanmail.net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진면목을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무엇을 봐야 ‘중동의 파리’로 불리는 베이루트의 참맛을 느낄 수 있을까? 베이루트 시민들의 언어 습관을 들여다보면 그곳의 과거를 이해할 수 있고,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사하트 앗슈하다’(순교자 광장)에 가보면 그곳의 오늘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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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청거리던 거리에는 장갑차가

베이루트를 방문하는 외국인이 제일 먼저 당황하는 것은 아랍어와 프랑스어로 장식된 수많은 간판과 거리 표지판들이다.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은 탓에 레바논에선 프랑스어와 아랍어가 공용어다. ‘잘 지내느냐’는 뜻의 ‘키이팍’(아랍어)과 ‘사바’(프랑스어), 거기에 ‘하이’(영어)가 베이루트의 거리에선 모두 통용된다. 고급 호텔이나 스타벅스 같은 커피 전문점을 가면 프랑스어 반 아랍어 반 섞어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주고받는 현지인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순교자 광장은 베이루트의 상징이다. 지난해 이스라엘의 침공 이전만 해도 종종 광장 주변에선 길거리 공연이 열리기도 했고, 수많은 인파로 흥청거렸다. 하지만 지금 광장 주변 거리에선 스산한 바람만 불고 있다. 주변 상점들이 불을 밝히고는 있지만,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다. 이방인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장갑차를 앞세운 채 광장 외곽을 둘러싸고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정부군과 무장경찰이다. 광장 주변 거리와 골목마다 무장병력이 눈에 띈다. 온통 철조망과 바리케이드로 둘러싸여 있다. 순교자 광장은 어느새 레바논이 겪고 있는 내홍의 현장이 돼버린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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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정부 시위대가 이곳 광장에 진을 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2월1일부터다. 시위대가 자리를 잡고 있는 사방으로 의회와 총리 관저, 정부 중앙청사를 비롯한 각종 정부 건물이 가득하다. 그 사이에 차단 장치와 철조망이 자리하고 있다. 반정부 시위대와 정부군 경계 지역 사이에선 적막감마저 느껴진다. 레바논 정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시리아에 대해 찬성 쪽과 반대 쪽으로 갈려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는 현장이다.

순교자 광장이 레바논 정정 갈등의 핵심으로 떠오른 것은 최근 광장 주변에서 대형 사건이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라피크 하리리 전 총리가 이곳 순교자 광장에서 2005년 2월14일 암살당했다. 그의 죽음은 반시리아 운동의 도화선이 됐고, ‘친시리아계’였던 카라미 당시 총리 정권의 퇴진을 이끌어낸 이른바 ‘백향목 혁명’도 이 광장에서 이뤄졌다. 같은 해 4월에는 레바논 주둔 시리아군이 30년 만에 철군했고, 5월29일부터 6월19일 사이에 치러진 총선에서 30년 만에 ‘반시리아계’가 정권을 잡는 드라마가 연출됐다. 당시 총선의 최대 이슈는 ‘친시리아 대 반시리아’ 구도였다. 순교자 광장은 당시 ‘반시리아 운동’의 성지로 여겨졌다.

그런데 불과 2년여 만에 정반대의 상황이 순교자 광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반시리아계’인 시니오라 현 총리 정부의 퇴진을 촉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순교자 광장에서 한창이기 때문이다. 그 시위의 중심에는 시리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헤즈볼라가 자리를 잡고 있다. ‘반시리아 운동’의 성지가 ‘친시리아계’의 보루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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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문제, 실리와 명분 사이 저울질

“도대체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광장 주변에서 경계 근무 중인 레바논 병사들에게 다가섰다. 호사인, 아마드, 무함마드, 하산, 이네스, 피라스, 모흐신 등이 근무에 한창이었다. 분대장급인 이네스를 제외하면 모두가 20대 초반이다. 6개월 의무 복무 중인 이 병사들의 눈에 비친 반정부 시위대는 거북스럽기만 한 정치 집단이었다. 반정부 시위대의 중심에 서 있는 헤즈볼라를 지지하는 이들이 많은 레바논 남부 출신인 호사인은 본의 아니게 동료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당신 어디서 왔소? 신분증 좀 봅시다.”

“우리 시리아 사람들이오.”

“그래요. 그럼 가시오.”

분대장 이네스가 지나가는 이들을 세워놓고 검문을 하려다 쓴 입맛을 다셨다. ‘시리아 사람’이라는 말에 신분증 확인도 하지 않았다. 저만치 사라질 때까지 병사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시리아인들’의 뒤통수에 꽂혀 있다. 반시리아 감정은 보통의 레바논인들에게 지독히 깊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레바논에 상주하고 있는 시리아 노동자는 약 30만 명에 이른다. 연간 100만 명에 이르는 시리아인들이 공사 현장이나 농촌의 일자리를 찾아 레바논을 오가고 있다. 시리아인들이 레바논에서 벌어가는 외화만도 10억달러 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시리아는 레바논 무역의 주요 상대국이다. 2005년 한 해 7억달러 이상의 물건이 시리아 국경을 넘어갔다. 이는 레바논 수출액의 35%에 해당한다. 다른 한편으로 시리아의 재력가들은 레바논계 은행에 자신의 부를 축적하곤 한다. 이처럼 경제에서 레바논과 시리아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고, 그래서 ‘시리아’ 문제는 레바논인들에게 실리와 명분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 1월20일 저녁, 레바논과 시리아 접경 지역인 알카아 국경 사무실. 당직 장교 1명과 보안요원 2명이 출입국 업무를 보고 있었다. 국경으로 가는 길 곳곳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다리와 푹 파인 도로가 위태롭게 버티고 있었다. 눈발이 날리는 을씨년스런 날씨 때문인지 국경사무소에는 오가는 이들이 거의 없었다. 사무소 귀퉁이에 놓인 텔레비전에선 헤즈볼라가 운영하는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부 보안요원들조차 반정부 시위의 중심에 선 헤즈볼라의 방송을 즐겨 보고 있는 것이다. 헤즈볼라에 대한 광범위한 지지도를 실감할 수 있었다.

“나스랄라는 불나방인가”

그러나 세상은 변한다. 순교자 광장의 주인이 ‘반시리아’에서 ‘친시리아’로 바뀌었듯, 헤즈볼라와 그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에 대한 뜨거웠던 민심도 점차 수그러들고 있었다.

“(나스랄라는) 투명한 투사인 줄 알았더니, 권력을 지향하는 불나방에 불과했던 걸까?”

“반이스라엘 전선이라는 하나의 깃발 아래선 헤즈볼라를 지지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시아파 중심의 세상을 꿈꾸는 것 같다.”

헤즈볼라와 함께 지난해 여름을 뜨겁게 헤쳐나왔던 레바논 남부에서도 조금씩 헤즈볼라에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지역 언론들도 헤즈볼라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헤즈볼라 주도의 총파업과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면서 크고 작은 유혈사태가 꼬리를 무는 것도 헤즈볼라에 대한 비판의 이유가 되고 있다. 게다가 1975년부터 15년여 동안 악귀처럼 레바논을 유린했던 내전의 악몽이 되살아날 기미마저 보이고 있다. 흔들리는 민심의 불안감을 서둘러 다독이지 않는다면, 두 얼굴을 가진 순교자 광장을 헤즈볼라가 그리 오래 장악하지는 못할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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