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 법사위원회 주최로 ‘전쟁권한’을 둘러싼 도발적인 청문회 열려…입법으로 실질적 권한 행사 가능… 법무장관에게 입장 묻는 질의서 보내기도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미국 정가가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한 달여 ‘몸 풀기’를 마친 민주당이 조지 부시 행정부를 향한 본격적인 공세에 나설 태세다. 초점은 단연 이라크 전쟁이다. 이라크 재건·복구 자금의 용처에 대한 청문회가 내년 대통령 선거를 겨냥한 ‘외곽 때리기’라면, 부시 대통령이 추진 중인 이라크 증파 계획에 대한 반대와 철군 시한을 정하는 것은 정면 승부에 해당한다. 그 뜨거운 승부의 한가운데에 미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전쟁권한’을 둘러싼 치열한 법리 논쟁이 자리잡고 있다. 반전 여론을 등에 업고 12년 만에 상하 양원을 장악한 민주당이 이라크 전쟁을 끝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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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30일 오전 10시 워싱턴의 미 상원 더크센 빌딩 226호에서 상원 법사위원회 주최로 ‘도발적인’ 청문회가 열렸다. 각계에서 활약 중인 헌법 전문가 5명을 증인으로 채택해 열린 이날 청문회의 주제는 ‘전쟁을 끝내기 위한 의회의 헌법권 권한 행사’였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주도하는 전쟁을 의회가 중단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느냐는 헌법 해석을 둘러싼 날선 토론이 이어진 이날 청문회는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전 확대 움직임에 맞서 의회가 사실상 ‘선전포고’를 하는 자리였다. 은 “방청석을 메운 반전운동가들의 야유와 함성으로 청문회가 여러 차례 중단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여론조사가 넘쳐나다 보니, 중요한 여론조사는 단 하나뿐이라는 말이 있다. 바로 선거 당일 투표소에서 진행되는 여론조사다.” 청문회 사회를 맡은 러셀 파인골드 상원의원(민주당)은 이날 모두발언을 통해 “지난해 11월7일 미국 유권자들은 투표 참여라는 가장 의미 있는 방식으로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고 있음을 분명히 밝혔다”며 “하지만 부시 대통령은 이런 유권자의 뜻을 무시하기로 결정했고, 이제 의회가 나서야 할 차례”라고 강조했다.
예산안 부결해 전쟁 중단시킬 수 있어
첫 번째 증인으로 나선 이는 데이비드 배런 하버드대 법대 교수다. 그는 먼저 “미국 건국의 기초가 된 법률 문서나 대법원의 판례, 행정부나 입법부의 과거 행적을 모두 들춰보더라도 전시에 의회의 권한이 위축된다는 근거 규정은 전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전쟁과 관련해 의회가 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참전 병력 규모 제한 △병력 증파 금지 △철군 시한 규정 등 포괄적인 측면에서 의회가 헌법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게다.
배런 교수는 또 “진행 중인 군사작전에 제동을 거는 데 활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는 헌법이 부여한 의회의 예산안 심의·의결권”이라며 “헌법은 전쟁 경비 마련을 위해 국고에서 예산을 타낼 수 있는 권한을 의회에만 부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쟁 경비를 요청하는 행정부의 예산안을 부결시킴으로써 의회가 효과적으로 전쟁을 중단시킬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얘기다. 딕 체니 부통령도 1월27일 <ap>과 한 회견에서 “의회가 예산 심의·의결권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원하기만 한다면 분명 전쟁 예산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포괄적 권리 행사 vs 군 통수권자는 대통령
미 헌법이 의회에 부여한 ‘전쟁권한’이 예산안 심의·의결권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배런 교수는 “헌법은 대통령을 군 최고통수권자로 규정하고 있지만, 의회가 전쟁과 관련해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다양한 권한을 명시적으로 부여하고 있다”며 “예산안 부결을 통해 전쟁을 제한하는 ‘사실상’의 권한 외에도 전쟁 경비 제한법 입법이나, 전쟁 수행과 관련한 행정부의 특정 정책에 대한 금지법안 마련 등을 통해 ‘실질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평시와 마찬가지로 전시에도 입법부가 행정부와 견제와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전쟁권한’을 양분한 것이 미 헌법의 취지라는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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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행정부 1기 시절 알베르토 곤살레스 현 법무장관이 이끌던 백악관 법률자문단의 일원으로 활동한 바 있는 브래드포드 베런슨 변호사가 이어 증언에 나섰다. 미 헌법이 규정한 ‘전쟁권한’을 △입법부 독점권 △행정부 독점권 △입법-행정부 공유권 등 크게 3가지 범주로 요약한 베런슨 변호사는 “의회가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광범위한 헌법적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는 △적대행위 전면 중단 △참전 병력 상한선 제시 △교전 지역 제한 등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선 “헌법이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은 입법부와 행정부가 공유하는 권한”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의회가 전쟁의 범위와 강도, 기간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입법 활동을 통해 행정부의 정책을 제한할 수 있긴 하지만, 공유하고 있는 권한이 많다는 점에 비춰 지나치게 행정부의 움직임을 제한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로버트 터너 버지니아대 법대 교수는 “미 헌법은 정보 분야와 외교, 그리고 전쟁 수행과 관련해 대통령에게 상당한 재량권을 부여했으며, 이는 입법부나 사법부의 견제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전쟁과 관련해 최종 결정권자는 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터너 교수는 이날 청문회에 출석한 5명의 헌법 전문가 가운데 의회의 ‘전쟁권한’이 제한적이라는 의견을 내놓은 유일한 증인이다.
그는 “의회가 전쟁 경비 관련 예산을 거부함으로써 전쟁을 끝낼 수 있는 헌법적 권한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며 “하지만 병력 증파과 보급품 공급을 거부하는 것은 사실상 미국과 그 동맹국이 전쟁에서 패하도록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터너 교수는 이어 “의회가 전장에 나가 있는 미군에게 식량과 탄환 공급을 중단할 권한이 있긴 하지만, 그 결과가 이라크에서 살육을 자행하는 자들의 승리로 귀결될 수 있다는 점을 미리 고려해주길 간청한다”며 “건국 초기 헌법 입안자들이 전쟁과 관련해 대통령에게 폭넓은 재량권을 준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강조했다.
부시의 임무, 3분의 1을 확보하라
이날 청문회로 헌법상 ‘전쟁권한’에 대한 논쟁이 일단락된 것은 아니다. 이미 패트릭 리히 신임 상원 법사위원장(민주당)과 앨런 스펙터 전임 법사위원장(공화당)이 공동 명의로 곤살레스 법무장관에게 의회의 전쟁권한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입장을 묻는 질의서를 보내놓은 상태다. 논쟁은 이제 겨우 시작인 셈이다. 더구나 파인골드 상원의원은 청문회 다음날인 1월31일 이라크 주둔 미군에 대한 예산 지원을 금지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6개월의 유예기간을 둔 뒤 발효되는 이 법안이 통과되면, 미 의회는 부시 대통령에게 이라크 철군을 강제할 법적 ‘무기’를 가지게 된다.
이미 ‘레임덕’ 상태인 부시 대통령이 꺼내들 수 있는 마지막 카드는 ‘거부권 행사’가 될 테지만, 그의 임기가 끝난 뒤에나 선거를 치르게 될 공화당 의원들이 이에 얼마나 호응해줄지는 미지수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을 의회가 재적 인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 재의결하면, 대통령의 서명 절차 없이 곧바로 법률로서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선 의회 재적 인원의 3분의 1을 확보해야 한다. 지독히 인기 없는 임기 말 대통령으로선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이라크 전쟁을 둘러싼 워싱턴 정가의 힘겨루기가 바야흐로 불을 뿜기 시작한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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