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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앞서가는 시민, SMS의 축복

등록 2004-08-19 00:00 수정 2020-05-03 04:23

[2004 여름, 숨겨진 아시아 | 인도네시아]

성과 정치에 관한 엄청난 농담을 쏟아내는 휴대폰 문자서비스… 대통령 선거에서 배꼽을 잡다

▣ 자카르타= 아흐마드 타우픽(Ahmad Taufik) / 시사주간지 (Tempo>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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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인디라 간디 전 인디아 총리와 며느리 소냐 간디의 공통점은?”

“두 여인 모두 라지브 간디 전 총리에게 젖을 물렸다는 것.” 좀 야하긴 한데, 이게 요즘 인도네시아판 문자서비스(SMS·Short Message Service)를 통해 유행하는 국제적인 농담이다.

아내가 많은 함자 하즈가 깨끗한 이유

요즘 인도네시아에서 최고 인기종목으로 SMS를 꼽을 만한데, 그러다 보니 엄청난 농담들이 SMS를 통해 쏟아져나오고 있다. 비록 모든 것에 쪼들려도 농담만은 해마다 풍년이 드는 나라로 소문난 게 바로 인도네시아다. 특히 시시껄렁한 친구들이 많은 나는 SMS를 통해 하루에도 대여섯 가지가 넘는 희한한 농담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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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SMS 농담의 주류는 단연 성과 정치를 묶은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대통령 선거를 전후해서 함자 하즈 현 부통령에 대한 것들이 시민들 배꼽을 쥐게 했다.

“함자 하즈가 어디로 갈지 어떻게 알 수 있나?” “그의 경호원은 잘 알고 있다. 만약 함자 하즈의 모자가 똑바르면 자카르타 중부 마트라만(첫 번째 아내)으로, 그의 모자가 오른쪽으로 비스듬하면 보골(둘째 아내)로, 왼쪽으로 기울면 자카르타 남부 치네레(셋째 아내)다.” “그런데 함자 하즈가 모자를 쓰지 않은 경우는 어떻게 알 수 있나?” “그건 간단하다. 바아그라가 떨어졌다는 뜻이다.”

지난번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 동안, 아내가 많은 함자 하즈는 누구보다 많은 표를 얻을 것이라 스스로 예상했다. 아내 하나인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아내가 셋으로 또 넷으로 소문난 함자 하즈는 분명 수치상 우세했지만, 결과는 그의 정당이 800만표를 얻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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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5일 대통령 선거일이 가까워오자, SMS에는 일제히 퀴즈가 떴다. “모든 후보자들이 서로 깨끗하다고 난리들인데, 그 중 누가 가장 깨끗한가?” 정답은 역시 ‘함자 하즈’였다. 그건 함자 하즈가 다른 후보들보다 목욕을 자주 할 것이라는 예상에서였다. 이슬람법에 한 여자와 성교를 한 뒤에 반드시 목욕을 하고 다른 여자와 다시 성교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이번에는 또 “후보자들이 배우라면 어떤 영화가 어울릴 것인가?”라는 퀴즈가 SMS에 올라 전국을 강타했다. “정답: 위란토 전 최고사령관은 공포영화, 메가와티 현 대통령은 순정영화, 수실로 밤방 전 장관은 액션영화, 아민 라이스 국민협의회 의장은 종교영화, 그리고 함자 하즈는 포르노 영화.” 이처럼 함자 하즈는 SMS에서만큼은 가히 독보적인 존재였다. 비록 부정적인 전망이 대부분이었다 하더라도.

어쨌든 SMS는 진정 새로운 ‘현상’으로 떠올랐다. 시민들은 가수든 대통령이든 가리지 않고 휴대전화에서 손가락 놀림만으로 골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예컨대, 아카데미 판타지 오브 인도네시아(AFI)는 몇달 전 북수마트라 메단에서 온 소년 베리를 뜨는 가수로 뽑았고, 그의 노래는 지금 SMS를 통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또 하나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이건 SMS를 통해 낭패를 본 경우다. 지난 총선 무렵, 한 방송사가 SMS를 통해 차기 대통령 가상선거를 했다. 그때, 번영정의당 당수였던 히다얏 누르와히드는 모든 후보를 물리치고 SMS에서 압도적인 표를 얻어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총선에서 그의 당이 톱10에 들었지만 그이는 정작 대통령 선거에 출마도 하지 못했다. 그건 SMS의 장난이고 기만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 대사관 앞 항의시위도 SMS 덕

SMS는 밝고 어두운 양면을 모두 지닌 게 사실이다. 분명한 건 시민들을 더 ‘창조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비교하자면, 더 많은 시민들이 미국대사관 앞으로 몰려나와 대이라크 침공 항의시위를 할 수 있게 만든 힘이 바로 SMS였다. ‘간편하고’ ‘싸고’ ‘빠르고’라는 성질을 지닌 한판에 0.25달러짜리 SMS는 정녕 시민의 전령사 노릇을 톡톡히 했다!

보고듣지 못했던 대다수 시민들에게 SMS는 다른 이들과 교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바로 그 소녀들이 지금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앞서가는 이들이 되었다. SMS의 축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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