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민주화의 열기로 타오르던 부산. 시위대와 전경들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던 시내를 야구점퍼를 입은 청년이 택시를 타고 지나가고 있었다. 순간, 전경들은 최루탄을 발사했고, 시위대는 물론 길 가던 시민들까지 얼굴을 감싸쥐고 쓰러지며 고통스러워했다. 택시 안에서 이 광경을 목격한 청년은 분노했다. “아니, 경찰이 맨몸으로 서 있는 시민들한테 저래도 되는 깁니꺼.” 즉시 택시에서 내린 청년은 시위대열에 합류하여 전경들에 맞서 돌을 던졌다. 그 돌은 너무나 빠르게 너무나 정확하게 너무나 멀리 날아갔다. 시위대 중 누군가가 야구점퍼를 입고 돌을 던지는 이 청년을 보고 말했다. “어? 최동원 선수 아입니꺼!”
몇몇 목격담과 함께 부산 지역에서 구전되어 내려오는 이 전설의 진위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그러고도 남을 인물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최동원이었기 때문이다.
출범 30년을 훌쩍 넘긴 한국 프로야구에 훌륭하고 강력한 투수는 많았다. 그러나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가 가능한 인물은 오직 최동원뿐이다. 전대미문의 한국시리즈 4승, 역동적인 투구폼과 강력한 직구와 커브 때문이 아니다. 최고 대우를 받는 슈퍼스타였지만 그는 늘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세상과 함께 호흡하고 때론 맨 앞에서 세상과 싸워왔던 투사였기 때문이다.
저연봉 선수들의 복지와 처우 개선을 위해 선수협의회 창설을 주도한 인물이 최동원이었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이때 최동원에게 선수협의회 활동을 위한 법률 자문을 무상으로 해준 이가 문재인이었다.) 최고 스타였지만 1987년 민주화항쟁의 거리에서 ‘군부독재 정권 타도’ 구호를 시민들과 외치기도 했다.
은퇴 뒤 경남고 선배인 당시 민자당 대표 김영삼의 영입 제의를 뿌리치고 ‘3당 합당’을 비판하며 부산 서구에 (꼬마)민주당으로 출마해 낙선의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부산에서 민자당 간판에 최동원의 이름이면 집에서 잠만 자도 당선이라는 사람들의 얘기에도 불구하고 그는 “생각이 다르다”라며 민주당을 택해 대선배(YS)의 정치적 야합에 항의했다.
야구도시 이전에 야당도시였던, 민주화의 성지 부산에서, 세상과 함께 싸우고 호흡하려 한 부산 야구팀의 에이스 투수. 그것이 최동원을 ‘대투수’라 부르는 이유다. 이후의 누구도 최동원일 수 없는 이유다.
최근 검찰은 삼성 프로야구단 출신 투수 2명에게 해외 원정 도박 혐의로 벌금 700만원의 약식명령을 법원에 청구했다. 도박 혐의가 있는 또 다른 2명도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들은 당대 최정상급 투수로 수십억원의 계약을 체결한 젊은 부자들이다. 기록에 관한 한 한국 프로야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당대 에이스들이었다.
물론 한국의 30대 남자들이 해외여행을 가서 크고 작은 도박을 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이들이 유명 야구선수가 아니었다면 흔해빠진 한국 남자들의 일탈과 무용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이 웬만한 직장인의 연봉에 해당하는 돈을 하룻밤의 도박판에 쏟아부었다는 것, 그 돈이 수많은 팬의 사랑으로 만들어온 시장이 있기에 가능했다는 것, 우리가 그렇게 애정을 쏟아가며 성장시킨 한국 야구가 하룻밤에 수천만원을 도박판에 쓰는 어린 졸부들을 양산해냈을 뿐이라는 사실이 팬들을 분노케 했다.
좋은 시대에 야구를 하며, 너무 많은 돈을 벌게 되니, 점점 연예인이 되어가는, 시즌이 끝나면 해외로 나가 도박하는 선수들에게 응원가를 만들어 불러주고 함성을 질러준 팬들이 애처로울 뿐이다. 지금 이들이 이렇게 큰돈을 쥘 수 있었던 것은, 저 멀리 최동원이라는 당대 영웅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프로야구단의 전횡에 항의하며 선수들의 복지를 쟁취하려 했던 싸움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이 우리를 서글프게 한다.
당신들의 대선배 최동원은, 야구장 밖에서는 광장으로 나가 세상과 함께 살아가려 노력했다. 야구가 끝나면 비행기를 타고 나가 카드를 쥐고 돈놀이를 한 당신들은, 당신들의 판돈이 최동원의 눈물과 팬들의 사랑으로 만들어져온 것임을 잊었다. 그것이 분노의 이유다.
김준 스포츠 칼럼니스트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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