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프로야구 NC 다이노스 선수단의 등번호에는 4번과 16번이 없다. 1번부터 100번이 넘어가는 등번호까지 빠짐없이 빽빽하게 들어찬 선수단 이름 가운데 두 번호는 주인 없이 비어 있다. 4, 그리고 16. 이 숫자들을 조합하면, 직관적으로 우리의 심장을 때리는 날짜가 떠오른다. 2014년 4월16일. 현대사 최악의 비극이 된, 세월호가 가라앉은 날이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1년이 되던 올해 4월16일, NC 다이노스의 홍보팀은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선수단의 등번호가 나열된 사진과 함께 “주인 없는 숫자 둘. 우리는 4와 16을 마음에 담겠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아직 주검으로도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 4월16일 이후 삶이 멈춰버린 유족, 그들을 위해 한 프로야구단이 남겨둔 자리의 울림은 컸다.
2010년대,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명문 구단은 (성적에 관한 한) 누가 뭐라 해도 삼성 라이온즈였다. 올 시즌, 2011년부터 시작된 5년 연속 통합우승의 꿈이 무산된 것은, 어이없게도 주축 선수들의 해외 원정 도박 의혹 때문이었다. 삼성은 구단 자체가 강력한 신상필벌을 동력으로 운영되는 팀이다. 음주운전이 적발된 유망주를 즉시 퇴출시키는가 하면, 성적을 낸 선수에게는 아낌없는 보상으로 응답했다. 그러나 이 명문 구단이, 믿는 도끼 3개에 발등이 찍혀 사상 초유의 대기록 앞에서 주저앉으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삼성 라이온즈가 오랜 기간 공들여 쌓아올린 명문 구단의 이미지도 주력 선수들의 일탈 행위로 위기를 맞았다.
출범한 지 34년째인, 이제 어른이 된 2015년의 한국 프로야구는 유례없는 사건·사고들로 홍역을 치러야 했다. 시즌 초반부터 한 선수의 금지 약물 복용 사건이 터지더니, 시즌 종료 뒤에는 한 선수의 인격을 의심케 하는 사생활 문제가 불거졌다. 급기야 한국시리즈 직전 핵심 투수 3명의 해외 원정 도박설이 터지면서 삼성의 한국시리즈는 참사로 끝났다. 금지 약물, 사생활, 도박. 선수들의 실력이 진화하면서, 일탈의 수준도 진화하고 있다. 자칫 리그 자체를 공멸로 몰아갈 수 있는 사건들이다.
수많은 사건·사고가 야구사에 기록되는 와중에, 새삼 구단의 가치를 재평가받는 것이 NC 다이노스다. 국내 재벌들의 놀이터였던 프로야구 리그에 게임회사가 참가한 것을 두고 “야구단 운영은 대표 개인의 개인적 취미 생활 아닌가”라는 주주들의 비판에 김택진 구단주의 답변은 이러하다. “회사는 사회적 가치가 매우 중요하다. 재무적 가치만으로 회사에 대한 가치가 형성되지는 않는다. 회사가 사회에 기여하는 가치도 평가받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야구단이 엔씨소프트의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NC는 약 4년 뒤면 지금의 야구장 옆에 신축 구장을 짓는다. 그러니까 지금의 홈구장은 4년만 사용하면 되는데도, 관중석을 2천 석 이상 줄여가면서(즉, 입장 수익의 감소를 감수하면서) 10억원을 들여 관람석을 보수했다. 그 전에는 부산을 주 연고지로 한 롯데 자이언츠의 ‘순회 공연장’ 정도로만 인식되던 경남 마산(현 창원)에서, NC 다이노스가 지역 팬들을 존중하며 가치를 창출하는 방법이다.
현장의 프런트를 존중하고, 게임회사답게 선수 개개인에게 태블릿PC와 함께 자체 개발한 전력 분석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마산과 떨어진 경기도 고양에 ‘우리동네 야구단’이라는 콘셉트로 독립적인 2군팀을 운영하면서 지역사회와 호흡하는가 하면, 수평적 문화를 위해 단장은 직원들과 같은 점퍼를 입고 뛰어다닌다. 감독이 성적에 부담을 느껴 조급한 운영을 하지 않도록 계약 기간 중에 3년 연장 계약을 체결하는 파격적인 문화를 보여주기도 했다.
기존 연고지 시장에 NC가 창단된다고 했을 때 롯데 구단은 “프로야구의 수준 저하”를 운운하며 견제했다. 그 롯데가 선수들의 사생활을 관리하겠답시고 폐회로텔레비전(CCTV)으로 사찰을 할 때, NC는 선수들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최초로 원정 숙소에 전원 1인 1실을 도입하며 선수들을 지원했다. 그리고 창단 3년 만에 NC는 2번이나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지금 위기의 한국 프로야구에서 리그의 수준과 가치를 지켜내는 것은 NC 다이노스다. 야구를 사랑하고 선수단을 아끼며 팬을 존중하고 세상과 호흡하는 야구단. NC 다이노스는 점점 한국 프로야구팬 ‘모두의 팀’이 되어가고 있다.
김준 스포츠 칼럼니스트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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