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연합뉴스
1964년 도쿄올림픽은 아시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남미 등 당시 개발도상 대륙에서 열린 최초의 올림픽이었다. 도쿄올림픽을 개최한 일본은 개최국 자격으로 국기인 유도와 함께 당시 세계에서 가장 성행하던 배구를 정식 종목에 집어넣었다.
1960년대 초까지 세계 배구는 주로 9인제 배구를 했지만, 일본에서는 6인제 배구가 유행하고 있었다. 당시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6개 팀의 평균 신장을 보면 한국이 167.25cm로 가장 작고 일본이 168.83cm로 역시 160cm대였다.
그러나 유럽이나 미주 팀 가운데 루마니아만 170cm 안팎(169.63cm)이었을 뿐 당시 세계 정상권이던 옛 소련은 172.91cm로 한국이나 일본 선수들보다 3~4cm 컸고, 폴란드(173.08cm)나 미국(178.58cm)은 아예 ‘거인’ 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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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는 224cm(여자배구)의 네트를 사이에 두고 경기하는 스포츠이므로 키가 큰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한국과 일본이 다른 팀과 비슷한 기술로 상대하면 백전백패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일본은 다이마쓰 히로후미(1921~87) 감독을 영입해 상상을 초월하는 강한 훈련을 시켰다. 당시 일본 여자배구 국가대표 선수들은 일반 실업팀에서 선발한 선수가 아니었다. 가이즈가의 다이니폰 공장에 있는 1242명의 여공 가운데서 선발했다.
그들은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오후 3시30분까지 공장에서 일했다. 그리고 체육관으로 달려가서 밤 12시까지 하루 평균 12시간씩 강훈련을 거듭했다. 올림픽이 열리기 1년여 전부터 500일 가까이 하루도 쉬지 않고 훈련했다.
감독 다이마쓰는 ‘동양인의 한계’를 인정하고 신기술인 ‘시간차 공격’을 개발했다. 시간차 공격은 공격수 한 명이 속공할 것처럼 점프해 상대 블로커를 현혹하는 순간 다른 공격수가 시간차를 두고 점프해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공격수 혼자서 속공할 것처럼 점프했다가 떨어지면서 스파이크를 하는 ‘개인 시간차 공격’도 위력적이었다. 개인 시간차 공격은 일본의 모리타 준코 선수가 도쿄올림픽에서 처음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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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차 공격은 세터와 두 명의 공격수가 기계처럼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조직력 없이는 시도하기 힘들다. 두 선수가 마치 한 몸처럼 타이밍을 맞춰야 하기에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조직력이 필요했다.
도쿄올림픽 당시 일본을 제외한 다른 팀들은 주로 오픈 공격에 의존했다. 작은 키의 일본은 시간차 공격으로 상대의 블로킹을 피하고, 상대의 오픈 강타는 회전수비로 막아내며 승승장구했다. 일본 여자배구의 시간차 공격은 결승전에서 활짝 피었다.
1964년 10월23일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마지막 경기는 고마자와 실내체육관에서 벌어졌다. 시간차 공격을 앞세운 일본이 장신 거포군단 소련에게 승리해 금메달을 획득하며 환희에 넘치는 순간 TV 시청률은 80%에 육박했다. 거리에 자동차가 거의 다니지 않았고, 상점도 일찌감치 철시해서 일본 전역이 유령 국가를 방불케 했다.
그러나 스포츠 세계에는 ‘특허’ 제도가 없다. 이후 시간차 공격은 초등학교 팀부터 국가대표에 이르기까지 전세계 모든 배구팀이 구사하는 일반적인 기술이 되고 말았다.
기영노 스포츠평론가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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