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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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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스트와 대처 영국 축구의 공적들

파시스트 감독 영입에 항의하며 사퇴한 선덜랜드 부구단주
프로축구연맹은 경기 전 예정된 대처 추모 묵념 백지화
등록 2013-04-19 16:16 수정 2020-05-03 04:27

최근 영국 정치인 데이비드 밀리밴드가 두 개의 중요한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하나는 동생 에드 때문이다. 동생은 “형을 위한 자리가 준비돼 있다”고 했으나 형은 오히려 원래의 자리도 털고 일어났다. 의원직 사퇴를 한 것이다. 2010년 9월 영국 노동당 당수 경선 때 예고됐던 일이다. 당시 밀리밴드는 1.3%포인트 차로 동생 에드에게 패했다. 이후 동생이 진두지휘하는 노동당에서 데이비드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로부터 2년여가 흐른 뒤인 지난 3월27일, 데이비드는 의원직 사퇴를 발표했다.
선덜랜드 팬들은 홈경기 보이콧
그런데 얼마 뒤 데이비드는 또 다른 자리에서도 물러났다. 1879년 창단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명문 클럽 선덜랜드의 부회장직을 던진 것이다. 데이비드가 부회장직을 사퇴한 것은 4월1일 선임된 이탈리아 출신의 신임 파올로 디카니오 감독 때문이다. 디카니오 감독은 현역 시절 수없는 인종차별 행위와 파시즘 지지 발언으로 ‘악명’ 높았던 자다. 2005년 라치오에서는 나치식 경례로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베니토 무솔리니를 ‘고결한 목표와 굳은 신조’를 가진 사람이라고 찬양하는 디카니오다. 그런 자를 새 감독으로 임명한 것에 항의하면서 데이비드는 부회장직을 내던진 것이다.
1980년대에 사회과학 서적을 꽤 읽었던 독자라면 데이비드라는 정치인의 성, 즉 ‘밀리밴드’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1960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 정치학에서 자본주의 국가의 구조적 성격과 그 기능의 변화에 대해 논쟁이 벌어졌을 때(풀란차스 대 밀리밴드), 그 한 축을 담당한 랠프 밀리밴드라는 학자가 있었다. 벨기에에서 영국으로 망명한 유대인 학자다. 그는 두 아들과 함께 런던 북부의 노동자 거주 지역에서 살았다.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대표적인 학자를 아버지로 둔 두 아들은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한 뒤 ‘가업’을 이어 급진 정치운동에 뛰어들었고 노동당에 참여했으며, 각각 외무부 장관과 기후에너지부 장관까지 지냈다.
이런 전력으로 볼 때, 데이비드 밀리밴드 같은 사람이 ‘뼛속까지’ 파시스트인 디카니오 신임 감독을 환영할 리 없는 것이다. 선덜랜드 팬도 홈경기 보이콧을 선언했다. 선덜랜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수많은 인명 피해를 당한 지역이자 1980년대 영국 노동운동을 이끌었던 지역이다. 그 때문에 시련도 많이 겪었다. 당시 선덜랜드 선수들은 팬들이 직장에서 대량 해고에 따른 고통을 겪자 시위에 동참하기도 했다. 이에 감명받아 스페인 탄광 지역의 아틀레틱 빌바오가 팀 유니폼을 선덜랜드의 붉은 줄무늬 유니폼으로 바꾼 것은 유명한 일이다. 파시즘을 신봉하는 디카니오 감독에 맞서 지금 선덜랜드 팬들과 데이비드 전 부회장은 그들의 자존심을 지키려 한다.
또 하나, 영국 축구인들이 자존심을 지키려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 4월8일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사망했다. 사망 소식을 접한 영국 사회의 반응은 극단적으로 엇갈렸다. ‘영국병’을 고쳤다는 추모가 있는가 하면, ‘철의 여인, 드디어 녹슬다’ 하는 분위기도 강하다. 대처는 우리나라 전두환 정권의 폭압 통치와 겹쳐진다. 둘 다 강력한 통치 수단을 거침없이 구사했다. 그런 까닭에 전두환 정권 시절, 대처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 지구를 구하는 역전의 용사처럼 비쳤다. 사망 소식을 다루는 국내 방송사도 마치 영국 보수당 기관방송사인 듯 ‘철의 여인’을 추모했다. 어떤 오버랩을 노린 것인지, 연신 ‘강력한 여인’이라고 강조하면서 말이다.
“마녀의 죽음 앞에 고개를 숙이라고?”
국내에서 활하는 영국 북부 산업지대 블랙번 출신의 축구 칼럼니스트 존 듀어든은 대처가 영국을 지배할 때 “축구팬들은 벌레처럼 취급받았다. 축구에 대해 좋은 말을 하기는커녕 축구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며 축구팬들을 핍박했다”고 말한다. 표면적으로는 ‘악명’ 높은 훌리건 때문이었다. 대처는 훌리건을 ‘문명사회의 적’이라고 불렀다. 대처가 훌리건을 제압하려 했던 것은 결코 ‘축구장의 안전’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대대적인 민영화와 노동시장 유연화로 대표되는 ‘대처리즘’을 밀어붙이기 위해 고도의 미디어 전략 중 하나로 훌리건이라는 ‘적’을 필요 이상으로 부풀려 공격했다. 전두환의 ‘삼청교육대’나 노태우의 ‘범죄와의 전쟁’과 같은 맥락이다. 사회를 공안통치로 몰아가려면 ‘문명사회의 적’이 필요했던 것이다.
같은 영화들이 그 시절을 우울하게 기억하고 있다. 영국 남부 철도 노동자의 시련을 영화 에 담았던 켄 로치 감독은 대처에 대해 ‘가장 분열적이고 파괴적인 사람’이라고 혹평하면서 오직 ‘대량해고, 공장폐쇄, 공동체 파괴’라는 유산을 남겼을 뿐이라고 말한다.
영국 총리실은 4월17일(현지시각) 런던 세인트폴 성당에서 거행될 대처의 장례식 운구를 포클랜드전쟁 참전 군인들이 맡는다고 발표했다. 폴 비릴리오가 에서 끔찍하게 묘사했던 바로 그 포클랜드전쟁 말이다. 반면 영국 프로축구리그연맹은 당초 리그 경기 전에 추모 묵념을 하기로 한 것을 취소했다고 발표했다. 대처에 의해 ‘문명사회의 적’으로까지 내몰렸던 축구팬의 자존심을 배려한 조치가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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