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결혼증명서’가 베트남 신부들을 울리고 있다. 한국에서 정상적으로 혼인신고를 하고 2년 이상 살아 ‘귀화 자격’을 갖춘 베트남 신부들이 결혼 당시 현지 브로커에게 속아 위조된 결혼증명서를 받았다는 이유로 한국 국적을 얻지 못하고 있다. 충남 금산군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최근 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 이런 피해 사례가 금산군에만 15쌍에 달했다.
복사한 문서에 이름만 바꾼 브로커지원센터가 ‘가짜 결혼증명서’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지난해 10월 베트남 방문 행사 중이었다. 한 부부가 결혼증명서가 위조된 사실을 뒤늦게 알고 현지에 찾아가 이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지원센터가 한국에 돌아와 피해조사를 해보니, 금산지역의 피해자들은 모두 2005~2006년에 결혼한 한국-베트남 부부들로, 이제 막 베트남 신부의 귀화 신청을 하려던 참이었다. 한국 남성이 베트남 여성과 결혼하려면 우선 베트남 법원에서 결혼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당시 결혼을 알선한 한국 결혼정보업체가 위조된 결혼증명서를 이들 부부에게 준 것이었다.
금산지역 피해 부부 15쌍 중 14쌍이 국제결혼 당시 이용했던 ㅎ결혼정보회사의 현지 브로커 ㅇ아무개씨는 이미 2007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법은 결혼증명서는 물론 여권까지 위조한 혐의로 ㅇ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ㅇ씨는 다른 사람의 결혼증명서를 복사한 뒤 이름만 바꾸는 방식으로 위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에서 밝혀진 ㅇ씨의 범죄 사실은 ‘52장의 결혼증명서를 위조한 것’이었지만, 피해자들의 증언을 취합하면 실제 피해 규모는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2006년 7월 베트남 여성 응엔티킴느곡(27)과 결혼한 양동진(38)씨는 “ㅎ결혼정보회사 한 군데서만 매주 6~10명씩 그룹을 지어 베트남으로 향했으니 2005~2006년에 걸쳐 1천여 쌍이 같은 피해를 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그와 같이 베트남에 가서 결혼에 성공한 이들도 충남 서천, 충북 보은, 전북 군산 등 전국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그는 “다른 업체가 베트남에 두 번 방문하는 걸 기본으로 한 것과 달리 당시 ㅎ결혼정보회사는 한 번 방문에 결혼을 시켜준다고 해 인기가 많았다”고 말했다.
당사자들은 결혼증명서가 가짜라는 의심은 하지 못했다. 베트남의 주호치민한국총영사관도 이 증명서를 토대로 한국 방문·동거 비자를 발급했다. 한국에서의 혼인신고도 순탄하게 이뤄졌다. 베트남 법원이 발급하는 결혼증명서 원본은 컬러로 돼 있는 반면 이들이 받은 증명서는 흑백이었다. 관련 기관이 원본 여부를 확인하려 했다면 식별이 가능했을 텐데, 주호치민한국총영사관 등은 이를 구분하지 못했다.
양씨의 아내 응엔티킴느곡은 “브로커 ㅇ씨는 베트남에서 내 신분증과 금목걸이, 반지까지 다 뺏어가고 출국할 때는 비자가 찍힌 여권만 줬다”고 회고했다. 결혼을 결정하고 한국에 입국하기까지 두 달 동안 ㅇ씨는 응엔티킴느곡을 데리고 다니면서 청소 등 일을 시켰다. 브로커에게 잘못 보이면 한국행이 좌절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베트남 신부들은 숨을 죽이며 지냈다. 이제야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양씨는 ㅎ결혼정보회사 사장에게 연락해 대책을 요구했다. 하지만 사장은 “돈을 더 주면 베트남에 가서 확실히 해오겠다”고 태연하게 답했다.
‘알아서’ 해결하는 데 1천만원 이상 들어결국 15쌍 가운데 2쌍은 ‘알아서’ 해결했다. 2006년 7월 베트남 신부와 결혼한 김아무개(42)씨는 형제들이 모아준 돈 1천만원을 들고 지난 1월 아이와 함께 베트남을 다시 찾아갔다. 혼인 허가를 받고 돌아오는 데만 40일이 걸렸다. 서류 작업을 위해서는 현지에서 또 다른 브로커에게 돈을 건네야 했다. 2006년 1월 베트남 여성과 결혼한 권아무개(34)씨도 지난 2월 베트남에 다시 가 결혼 허가를 받느라 1천만원 이상이 들었다.
결혼을 다시 허가받는 과정에서 막대한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다른 피해자들의 한숨은 더 깊어지고 있다. 피해자 양동진씨는 “버스기사인 내게 베트남을 한 달 이상 다녀오라는 건 생업을 포기하라는 말”이라고 했다.
2006년 7월 쯩티민 투이(23)와 결혼한 이병기(34)씨는 “지금 상태라면 부인의 귀화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처갓집에 베트남 공안이 두 번이나 찾아와 “이 집 딸이 위조 서류로 불법 출국을 했다”고 겁을 주는 상황에서 이대로 지낼 수만은 없다. “장인·장모께 ‘걱정 마시라’고 해뒀다. 일단 돈을 모아야 한다. 땅을 빌려 농사짓는 일에 벌이도 많지 않은데….” 남편의 말을 듣던 아내 쯩티민 투이씨는 “속상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우리 결혼했어요. 애기도 낳았고 같이 살고 있는데 서류에 이름이 왜 없나요?”
베트남 정부는 이들을 구제하는 데 소극적이다. 한국 주재 베트남대사관은 “결혼증명서 위조 피해가 많은 것을 알지만 대사관에서 결혼증명서 발급을 해줄 계획은 없다”며 “피해 부부가 원하면 우리 대사관에서 400만~500만원대의 저렴한 비용으로 베트남 현지의 서류 작업을 도와줄 결혼중개업체를 소개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도 “어쩔 수 없다”는 태도다. 국적법은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날부터 6개월 내에 그 외국 국적을 포기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베트남 신부들에게 한국 국적을 주더라도, 베트남 정부가 위조된 결혼증명서를 근거로 성립된 결혼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6개월 이내에 베트남 국적 포기에 대한 승인을 얻어내기 힘들 것이라는 논리다. 법무부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베트남 정부로부터 국적 포기 승인을 받을 수 없을 테니 (국적을 부여해도)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정상적으로 혼인신고를 하고 2년 이상 살아 ‘귀화 자격’을 갖춘 베트남 신부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데도 한국 법무부는 ‘국적 부여’의 책임을 베트남 정부에 미루고만 있는 셈이다.
두 나라 정부는 모두 “방법이 없다”고 말하지만 조금만 시각을 달리하면 길은 있다. 국적법에선 ‘본인의 의사에도 불구하고 해당 외국의 법률에서 정하는 절차 등으로 인하여 국적 포기절차를 마치지 못한 사람’은 ‘6개월 내 외국 국적 포기 의무’의 예외로 규정하고 있다. 법무법인 ‘공감’의 소라미 변호사는 “베트남 신부들이 이 예외 규정에 해당한다는 정책적 결단만 내리면 되는 상황”이라며 “법무부가 베트남 정부의 입장을 핑계로 베트남 신부들의 귀화 절차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은 한국 국적을 주지 않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결혼증명서 없어도 귀화 신청 접수”이에 대해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관계자는 “국적 포기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되는 ‘국가적 사유’란 법적으로 국적 포기가 불가능한 이란, 아르헨티나 등의 경우를 말한다”며 “베트남 신부의 경우 개인에게도 귀책사유가 있고 충분히 스스로 포기하는 절차를 밟을 능력이 있으므로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베트남 신부들이 피해자라는 것만 입증이 되면 국적 포기 기간을 2년까지 늘여주는 방안도 있다”며 “우선 피해자들의 경우 베트남 쪽 결혼증명서가 없어도 귀화 신청 서류를 접수하도록 전국 14개 출입국사무소에 지시를 내리겠다”고 말했다.
서류상 ‘반쪽부부’로 존재하는 피해 부부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양국의 무관심인지도 모른다. 복잡하게 얽힌 규정과 제도 속에서 길을 잃은 베트남 신부들에겐 ‘예비 국민’에 대한 한국 정부의 도움이 절실하다.
글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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