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만든 시드니 폴락 감독의 죽음
▣ 심영섭 영화평론가
우리는 모두 그 영화를 알고 있다. 광활한 아프리카의 초원, 쌍발 비행기에 한 여인을 싣고 남자는 아프리카의 상공에서 장엄한 비행을 시작한다. 두 연인의 마주 잡은 손과 춤추는 홍학떼의 군무. 로버트 레드퍼드와 메릴 스트립의 로망은 이윽고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모든 고정적 이미지를 서서히 씻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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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레드퍼드가 무릎을 꿇었을 때
시드니 폴락이 죽었다. 지난 5월26일 암투병을 하던 그가 아내와 두 딸, 6명의 손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다. 시드니 폴락의 죽음을 새삼스럽게 접하니, 할리우드 정통 서사 영화의 시대도 서서히 막을 내리는가 싶다.
그의 영화는 와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카르비네 쇼비뇽이요, 음악으로 치면 달콤한 이지리스닝 뮤직인 폴 모리아 오케스트라 같은 것에 속했다. 와 같은 멜로, 같은 코미디, 등의 스릴러. 장르 불문하고 시드니 폴락의 영화는 캐릭터의 생생함과 스토리의 빼어남으로 관객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시대는 다르지만 이데올로기는 다루지 않는 감독으로서 할리우드에서 한때 ‘가장 안전한 감독’으로도 불렸다.
그럼에도 로버트 레드퍼드가 무릎을 꿇고 앉아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운동화끈을 매줄 때, 더스틴 호프먼이 남장 여자인 자신의 본색을 밝히면서 제시카 랭에게 뺨을 한 대 엊어맞을 때, 시드니 폴락의 영화는 왠지 모를 설렘이나 연민 같은 감정이 만져져서 좋았다. 부풀려진 소맷부리에 뚝뚝 떨어지는 로망과 야망은 로버트 레드퍼드나 폴 뉴먼, 제인 폰다 같은 배우들의 연기에 강렬한 후광을 얹어주었으니까.
왜 아니었겠는가. 시드니 폴락 자신이 한 명의 뛰어난 배우였는걸. 어떤 때는 다소 능청스럽게 때론 배후의 열쇠를 쥔 막후 인물로, 튀지 않고 모나지 않은 그의 연기는 주연배우를 돋보이게 하는 좋은 조역의 전형 같은 것이었다. 특히 의 재촬영 당시 하비 카이틀 대신 낙점된 그의 대부호 연기는 폴락의 자연스러움 때문에, 톰 크루즈의 성적 오디세이의 판타지와 대비되는 현실의 일상성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1986년 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거머쥐고 절정기를 구가한 뒤 시드니 폴락은 부진했다. 그의 영원한 동지인 로버트 레드퍼드까지 나서서 를 찍고, 를 리메이크했지만, 원작감독인 빌리 와일더와 비교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사실 그는 변한 게 없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관객들이 쿠엔틴 타란티노에 취하고 스티븐 소더버그가 스타들을 그러모으는 시대에, 그만이 변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 시대, 사실 그와 비견되는 전통 서사 영화 감독으로 앤서니 밍겔라를 들 수 있는데, 2008년에는 둘 모두가 이 지구상에서 사라져버렸다(폴락은 실제로도 앤서니 밍겔라의 영화를 다수 제작했다).
이제 그렇게 추억이 되려나 보다
이제 시드니 폴락 감독은 가버렸다. 로버트 레드퍼드는 늙었고, 제인 폰다는 할머니가 되었다. 그렇게 할리우드 키드들의 세상도 한 시절을 등지고 있다. 아듀, 시드니 폴락. 안녕 아프리카! 을 만든 시드니 폴락 감독도 이제 그렇게 추억이 되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