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패배와 함께 종북파 문제 수면 위로…심상정 비대위 체제가 당을 살릴 수 있을까
▣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돌이켜보면 민주노동당에 2002년 대선은 ‘작은 승리’였다. 95만7148표를 얻어 3.9% 득표율을 올렸다. 대선이 끝난 지 25일째 되는 날 대선평가보고서를 내놨다. 이때의 자신감은 2004년 4·15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을 제3당으로 이끈 추동력이었다.
17대 대선이 끝난 지 14일째가 되는 2008년 1월4일 현재 민주노동당은 대선평가보고서를 내놓지 못했다. 초안 작업을 위한 토론이 기약 없이 진행 중이다. 득표율은 3.0%, 득표 수는 71만2121표에 불과했다. 지난해 9월27일 권영길 당시 대선 후보는 과의 인터뷰에서 “출발이 300만 표”라고 말했다. 2002년에 견주든 2007년 목표치에 견주든, 분명 ‘큰 패배’였다. 지금의 패배는 오는 4월9일 총선에서 참담한 성적표를 예고하고 있다.
파벌들 간 스펙트럼도 다양
대선 패배로 당은 창당 이래 최악의 혼란을 겪고 있다. 당 지도부는 총사퇴했다. 임시 지도부를 맡은 천영세 의원은 1월3일 시무식에서 여러 차례 “당을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당을 떠나는 이들도 있다. 이정우 당 조직국 실장은 “분란이 있다 보니 예년에 비해 탈당이 조금 늘었다”고 말했다.
위기는 모두 공감한다. 하지만 위기에 대한 진단과 해법은 제각각이다. 그래서 위기는 더욱 확대됐다. 대선 평가는 당의 누적된 모순과 갈등을 드러냈다. 외부엔 이른바 자주파(NL)와 평등파(PD)의 갈등으로 비쳐졌다. 실제 정확히 그런 양상이다. 위기의 해법으로 제안된 ‘심상정 비대위원장 체제’가 지난해 12월29일 당 중앙위원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것도 정파 간 갈등 때문이었다.
이제 당은 어디로 갈까? 안갯속이다. 크게 혁신이냐 분당이냐로 갈린다. 모두 위기를 공감하는 만큼 혁신의 필요성에도 공감한다.
하지만 혁신의 수위에 대해서는 자주파와 평등파의 생각이 다를 뿐만 아니라 그 안에 존재하는 파벌들 간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평등파의 핵심 정파 중 하나인 ‘전진’의 김종철 상임집행위원장은 “비대위가 공식적으로 천명하긴 어려울지 몰라도 종북주의 청산 의제가 혁신 내용에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평등파의 많은 인사들이 혁신 대상의 핵심 과제로 종북주의를 꼽는다. 종북주의의 대표적인 예로는 자주파가 2006년 10월9일 실시된 북한의 핵실험을 ‘자위권’ 차원으로 해석한 것 등이 꼽힌다. 평등파 내 강경파들이나 당 밖에서 논쟁을 주도하는 이들은 ‘자주파와의 결별’, 곧 ‘분당’의 필요성을 얘기하면서 그 핵심 근거로 꼽는 게 종북주의다. 물론 종북주의 문제를 제안하고 처리하는 데 평등파 내에서도 편차가 존재한다. 신장식 서울관악을 총선 예비후보는 “종북주의로 인해 당이 국민을 설득하지 못한 과오를 적시하고, 토론할 필요가 분명히 있다”면서도 “종북주의 청산은 당을 갈라서자는 얘기”라고 말했다. 어떻게 해서든 민주노동당이란 집을 부숴선 안 된다는 생각에 따라 평등파 내에서도 종북주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다르다.
정파 간 시각 차이는 더 크다. 자주파의 분파 중 하나인 ‘경기동부’로 분류되는 김배곤 용인시당 부위원장은 혁신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실체도 불분명한 종북주의를 선거의 패인처럼 얘기하는 건 분당을 위한 명분 쌓기용”이라고 말했다. 종북주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당내 다수파인 자주파의 패권주의를 어떻게 다루느냐와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더욱 예민하고 어려운 문제다. 비대위가 뜬다면 비례대표 공천 문제와 함께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위기가 기회가 될 수도
분당론은 자극적으로 외부에 소개되고 감정적으로 분출되고 있는 것과 달리, 당장 현실성은 조금 떨어진다. 물론 창당 이래 분당론이 이렇게 공개적이고 폭넓게 논의된 적은 없었다. 특히 당 밖에서 아주 빠르고 구체적으로 얘기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분당을 주장하는 쪽조차 일단 비대위 구성과 활동을 지켜보자는 입장이 강하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민주노동당이 분당이 아닌 당 혁신의 길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일단 오는 1월15일 전후로 다시 열릴 중앙위원회에서 심상정 비대위 체제가 승인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말보다 위기가 커진 만큼 당 혁신 권한을 쥔 비대위 체제를 출범시켜야 한다는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대위가 뜨지 않는다면 당은 이후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위기 속으로 깊숙이 빨려들어갈 것이다.
비대위가 혁신만 제대로 보여준다면 당에 기회가 올 수 있다. 김성희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은 “비대위를 통한 당 혁신이 총선까지 당의 최대 선거운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가 지난해 12월 20~2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5.8%만이 4·9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을 찍겠다고 답했다. 실제론 더 낮아질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의석 수가 5석 안팎으로 줄어든다. 당이 당원들뿐 아니라 일반 국민에게 제대로 된 혁신을 보여준다면 13%(2004년 총선에서 정당명부 득표율)와의 간극을 훨씬 더 줄일 수 있다. 총선은 아직 3개월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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