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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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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플레이로 국정 돌파!

등록 2004-08-19 00:00 수정 2020-05-03 04:23

노 대통령의 분권형 실험… 3인방 경쟁 유도로 내각에 활력 일겠지만 혼란 부를 수도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참여정부의 국정운영 시스템은 언제쯤 완성되는 것일까. 노무현 대통령이 ‘실험정권’이라는 비판과 조롱까지 감수하면서 국정운영 시스템을 끊임없이 변형하는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

취임 이후 1년6개월 동안 청와대 비서실과 정부 각 부처의 조직과 운영 방식을 개편하는 실험을 거듭해온 노 대통령이 최근 정부를 대통령과 총리(이해찬), 과학기술부 총리(오명), 경제부총리(이헌재), 교육부총리(안병영), 통일부 장관(정동영), 보건복지부 장관(김근태) 등 7명의 주체가 각각 역할을 나눠 분담하는 ‘분권형 국정운영 체제’를 전격 도입하면서 이런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크고 작은 개편 실험의 완결판”

참여정부의 핵심 인사들은 이번 조처는 노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부터 구상해온 분권형 국정운영 시스템을 전면 도입한 것으로, 그동안 계속됐던 크고 작은 개편 실험의 완결판이라고 분석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예고됐던 코스다. 대통령은 국정 어젠다의 큰 그림을 챙기고, 구체적 실무는 각 부처 장관이 맡는 집권 초기부터 해왔던 구상이 구체화된 것이다.” 노 대통령의 의중에 정통한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원은 이제야 비로소 노 대통령이 강조해온 ‘시스템 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틀을 완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이번 개편은 노 대통령이 강조해온 분권형 국정운영 구상을 현실화하는 내용이 상당 부분 담겨 있다. 특히 이해찬 총리, 정동영 통일부 장관,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등 참여정부 핵심 실세 3인방이 그동안 노 대통령이 행사해온 권력 가운데 상당 부분을 나눠 갖는 분업 체계를 형성한 것이 핵심이다. 정동영 장관은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을 겸직하는 것을 비롯해 통일·외교·안보 분야를 관장하고, 김근태 장관은 사회·노동·문화·환경·여성·보건복지 업무를 전담한다. 이해찬 국무총리는 각 부처에 대한 일상적인 지휘감독 등 내각총괄 업무를 수행하고, 이들에게 권력을 분산시킨 노 대통령은 △정부혁신 등 주요 혁신 과제와 미래정책 △균형발전, 동북아 전략, 고령화 사회, 국가에너지 정책 등 장기적 국가전략 과제 △부패청산 업무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은 왜 집권 1년6개월이 지난 현 시점에서 이런 분권화 구상을 구체화한 것일까.

무엇보다 4·15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국회 과반수 확보라는 정치적 기반을 확보하고, 이해찬 총리 임명 이후 내각이 안정화되면서 노 대통령이 국정운영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한 데 따른 조처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청와대의 한 핵심 참모는 “이해찬 총리 기용 이후 국정운영의 안정감이 확보되고, 정동영·김근태 등 비중 있는 인물들이 입각한 뒤 내각에 대한 국민의 기대심리가 높아졌다”면서 “국민에게 약속했던 분권형 국정운영 구상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적기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노 대통령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현실 여건이 따라주지 못했지만, 내각이 제 역할을 하고 원내 과반수 여당의 뒷심까지 보태지면서 구상을 현실화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실제 이해찬 총리 기용 직후부터 “나는 국가적 어젠다 등 큰 주제에 집중할 테니, 일상적인 업무 실행은 이 총리선에서 끝내달라”고 주문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해찬 총리는 8월13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만나 “(노 대통령은) 정 장관이나 김 장관이 아직은 부서 파악 중이지만 그것이 끝나면 정치 경험이 있는 만큼 포괄적인 업무를 파악할 수 있는 부총리 격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하자고 말했다”고 밝혀 노 대통령의 분권형 구상이 상당히 오래전부터 계획된 것임을 내비쳤다.

당의 중심을 잡아라

그러나 지난 1년6개월의 국정운영을 통해 만신창이가 된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능력을 보강하고, 정권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측면도 강하다.

첫째, 내각의 안정화에도 불구하고 아직 명확히 중심을 잡지 못하는 열린우리당을 효율적으로 지휘·통제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노 대통령을 지근거리에 보좌해온 한 핵심 인사는 “노 대통령은 내각이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여당에 걸맞게 좀더 많은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며 “이해찬, 정동영, 김근태 3명이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당정협의를 원활히 하면서 당의 중심을 잡아달라는 의미가 강하게 담겨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16일 이들에게 구체적인 소관 업무를 분장하면서 “당정이 국정의 중심을 확실하게 잡도록 하려는 취지”라고 말해 이런 의지를 분명히 했다.

둘째, 노 대통령이 그동안 주요 정치 공방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집중적인 상처를 입고 권위가 실추된 과오를 타파하려는 전술적 고려도 작용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다른 한 핵심 측근은 “그동안 보수언론과 야당은 노 대통령 한 사람을 겨냥해 공격의 초점을 맞추고 논쟁을 벌였지만, 이를 대신할 힘있는 인물이 없어 격이 떨어지는 부담을 떠안으면서 직접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며 “이제는 분야별 국정을 책임진 팀장급 장관들이 전면에서 대응하고, 언론과 야당도 이들과 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집중된 주요 현안은 실세 장관들이 전담하고, 대통령은 국가의 중·장기적 어젠다를 관리하는 역할분담을 통해 대통령이 정치적 공방의 중심부로 끌려드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구상인 셈이다. 청와대는 최근 이해찬 총리가 행정수도 이전 논쟁에 관해 ‘총대’를 메고, 지하철 파업 등 주요 분규를 직접 해결한 것을 성공적인 사례로 꼽고 있다. 노 대통령도 지난 8월10일 일상적 국정운영을 총리가 총괄하라고 지시하면서 “이렇게 변경하는 이유는 아직도 대통령이 무소불위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시각이 있고, 정책의 포석이 되는 관행이 있다. 우리 정치에서 이런 문제에 대해 이제 가닥을 잡을 필요가 있다”고 말해 정치적 논쟁을 피하기 위한 조처임을 숨기지 않았다.

여권 내부에서는 정 장관의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 겸직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는 분위기다. 문희상 의원은 “국가안전보장회의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이 크게 확산돼 있어 법적인 틀의 변화 없이 매끄럽게 처리하는 방향을 찾다 보니 정 장관에게 그 몫이 돌아갔다”고 말했다. 자주파인 이종석 사무처장이 참여정부의 외교안보 현안을 쥐락펴락한다고 공격해온 보수세력에 대항한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셋째, 노 대통령의 구상은 여권의 유력 대권주자 3인방 사이에 선의의 경쟁을 유도해 국정운영에 활력을 불어넣고, 차기 주자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려는 의도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잠재적 대권주자들인 이들에게 국정운영 권한과 함께 그에 따를 책임을 지워 노무현 정권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방식으로 능력을 검증받는 구조를 만들어, 돌출행동에 따른 권력 누수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아울러 한나라당 안에서 박근혜 대표,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도지사 등 잠재적 대권주자들이 실무를 통해 단련되고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 효율적인 대응 전략이기도 하다.

노 대통령, 오래 참을 수 있는가

그러나 노 대통령의 이런 분권형 국정운영 구상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단, 팀장제 내각 운영은 과거 김대중 정권에서도 시도됐지만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들에게 실질적인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고, 유기적 공조에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업무분장의 제도적 한계도 중대한 걸림돌이다. 정부조직법 등 법적인 근거 없이 노 대통령의 말 몇 마디로 실세 장관들에게 국정을 분장하는 것에 대한 정치적 논쟁이 촉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팀장을 맡게 된 정동영·김근태 두 장관이 법적으로 동격인 관할 부처 장관을 어떻게 지휘·조정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노 대통령은 8월16일 “유관부서간 관계장관(팀장) 협의를 통해 업무를 조정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라”고 지시했지만, 각 팀에 소속된 장관들과 부처 공직자들 사이에 역할과 기능 혼선, 갈등과 반목이 돌출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이번 구상에 여권 차기 대권주자들 사이에 역할분담과 대권수업 과정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도 큰 약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을 겨냥한 야당의 공세가 강화될 것이 명확하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 강화를 염두에 둔 각축전이 벌어질 경우 국정 혼란이 확대되고 정권의 위기로까지 치달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참모들의 거듭된 만류에도 불구하고 각종 정치 논쟁의 전면에 등장해온 노 대통령이 얼마나 침묵을 지킬 수 있을지도 관심거리다. 야당은 끊임없이 노 대통령을 겨냥해 전면에 세우려 할 것이고, 노 대통령이 구체적 발언을 시작하면 팀장급 장관들의 힘은 빠질 수밖에 없는 취약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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