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한나라당이 정치적 계산과 복잡한 당내 사정 때문에 당론 결정이 늦춰지는 반면, 민주노동당은 행정수도 이전 반대 당론을 확정한 이후 당 안팎의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준비되지 않은 섣부른 결정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정부의 행정수도 예정지 확정 이전까지 민주노동당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왔다. 수도이전이라는 국가적 중대사가 선거 과정에서 정략적인 목적으로 제기됐고 거대 여야가 다툼을 벌이는 사안이어서 소수정당으로서 설 자리가 마땅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2002년 대선 때는 논쟁에서 한발 뺀 상태였고, 지난 총선을 앞두고는 여야 합의로 법이 통과된 것을 전제로 부작용을 최소화해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의 반대 당론 확정은 이라크 파병 문제처럼 ‘민주노동당은 이렇게 할 것이다’라는 예상을 벗어난 것이어서 의아하게 여기는 이가 많다.
민주노동당이 반대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행정수도 이전이 지방분권과 국토균형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현재 수도권의 과밀 문제를 그대로 이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8월11일 최고위원-의원단 연석회의에 참석했던 김종철 최고위원은 “그동안 뚜렷한 당론은 없었지만 반대하는 분위기가 강했다”며 “일부 당원과 민주노동당의 우호세력들의 ‘섣부른 당론’이라는 비판은 잘 알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설득해가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책임 있는 정책정당으로서 당론을 분명히 하겠다는 태도는 높이 살 만하나 당론 확정 과정은 음미해볼 대목이 적지 않다. 당초 당 수도이전특위는 8월16일 3차 회의 뒤에 입장과 대안을 확정하기로 했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의 공식적인 당론은 그 이후에 정해질 것으로 예견됐으나 정부의 발표에 맞춰 앞당겨졌다. 11일 연석회의에 참석한 의원 중에는 당론을 결정하는 줄 모르고 참석한 이도 있었다. 특위 차원에서 대안으로 제시한 ‘전국분산형 수도이전’ 방안 역시 이날 회의에서 현실성이 없고 외국에서 성공한 사례가 없다는 이유로 뒤로 밀렸다.
반대 당론은 결정됐지만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조승수 의원은 현 단계에서 반대보다는 보완 추진이라는 찬성쪽에 가까운 입장을 피력했고, 심상정 의원의 경우 “현 정부의 이전 프로그램을 반대하지만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의제 자체까지 반대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어쨌든 민주노동당은 당론을 확정하면서 한나라당을 향해 “여름에 없던 당론이 겨울엔 생기느냐”고 비판할 자격은 갖췄지만, 왜 반대하는지와 어떤 대안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오랜 기간 설명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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