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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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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 쓰나미, MB노믹스의 예고된 재앙

‘브릭스’와 한국 덮친 물가불안…

성장지상주의 정책이 낳은 예정된 악재라는 비판 속에 주가·부동산 버블 붕괴 우려도
등록 2011-01-20 12:01 수정 2020-05-03 04:26

“‘인플레 쓰나미’가 글로벌 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지난 2008년 이후 경제위기 속에서도 높은 경제성장을 구가하며 ‘세계경제의 엔진’이라는 찬사를 들어온 브릭스(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등 글로벌 신흥국들이 최근 인플레 위험에 봉착해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했다고 자찬한 한국도 그중 하나다.
브릭스 중에서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가장 높은 나라는 인도다. 2009년 10.9%에 이어 2010년에도 13.2%(이하 2010년 수치는 국제통화기금의 추정치)로 두 자릿수의 고공행진을 벌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인도의 경제성장률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8%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인플레이션이 성장의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도 근로자들의 임금이 인상되는 추세지만 물가 상승폭이 워낙 커서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물가상승률은 2009년 11.7%에서 2010년 6.6%로 둔화되기는 했지만, 절대 수준은 여전히 높은 편이다. 특히 지난해 12월에는 8.7%까지 치솟았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최근 “2011년의 최우선 목표는 인플레이션 통제”라고 인정했다. 브라질은 물가상승률이 2009년 4.9%에 이어 2010년 5%를 기록했다. 이는 2004년 7.6% 이후 가장 높은 것이다.

경제위기 뒤 유동성 완화가 ‘부메랑’으로

물가불안이 심상찮다. 저금리·고환율이라는 MB 노믹스의 성장지상주의 정책 기조 아래서 이는 이미 예고됐던 ‘악재’다. 서울 중구 봉래동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식료품을 고르고 있다.한겨레 김경호

물가불안이 심상찮다. 저금리·고환율이라는 MB 노믹스의 성장지상주의 정책 기조 아래서 이는 이미 예고됐던 ‘악재’다. 서울 중구 봉래동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식료품을 고르고 있다.한겨레 김경호

중국의 물가상승률은 2009년 -0.7%에서 2010년 3.5%로 오름세로 반전됐다. 특히 지난해 11월에는 5.1%로, 2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12월에는 조금 주춤했지만, 올해 1월부터는 다시 치솟아 연간 전체로 4~5%에 이를 전망이다. 일부에선 중국이 올해 11년 만에 최고 수준의 인플레이션 압력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브릭스만의 일이 아니다. 베트남의 물가상승률은 2009년 6.7%에서 2010년 8.4%로 더욱 치솟았다. 타이도 2009년에 마이너스를 보였던 물가상승률이 지난해에는 3%로 오르며 상승세로 전환했다.

이들 나라의 물가불안은 정치적 부담으로도 이어진다. 식품 가격 폭등은 저소득층에 직격탄을 안기며 사회적 안정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인도와 러시아 정부는 각각 양파와 밀의 수출을 금지하는 긴급조처를 내렸다. 중국 정부도 식용유 등의 가격통제를 약속했다.

신흥국들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속화하자 지난해 11~12월부터 앞다퉈 금리를 추가로 올리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지만 한번 고삐가 풀린 말을 다시 잡기는 쉽지 않다. 인도는 지난해 11월 6%에서 6.25%로 금리를 추가 인상했다. 중국도 지난해 12월 정책금리를 5.81%로 0.25%포인트 올리고, 은행 지급준비율은 사상 최고 수준인 18.5%로 0.5%포인트 인상했다. 이와 함께 재할인율도 2.25%로 0.45%포인트 올렸다. 러시아는 사상 최저 수준인 7.75%로 유지하고 있는 정책금리를 조만간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러시아는 이미 지난해 11~12월에 지급준비율과 예금금리를 각각 상향 조정했다. 브라질은 이미 지난해 7월부터 정책금리를 세계 최고 수준인 10.75%로 올렸지만, 새해 들어 추가 인상이 점쳐지고 있다. 이 밖에도 대만·칠레·타이는 지난해 12월에, 오스트레일리아는 11월에 각각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이같은 물가불안은 이미 예고됐던 ‘악재’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시기가 불확실했을 뿐이다. 경제위기 이후 각국은 경기부양을 위해 너도나도 저금리와 재정지출 확대, (통화의) 양적 완화 정책을 남발했다. 이로 인해 과도하게 풀린 유동성이 브릭스와 한국 등에 집중적으로 흘러 들어가고, 원자재 및 자산 가격을 끌어올려 물가불안을 촉발하는 ‘부메랑’이 된 것이다.

그나마 눈치 빠른 일부 신흥국들은 위기 조짐을 미리 읽고 2009년 말과 2010년 초부터 풀었던 돈주머니를 다시 죄는 출구전략을 선제적으로 시행했는데도 물가불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인도는 지난 한햇동안 6차례 연속으로 금리 인상을 단행했고, 중국도 2번의 금리 인상과, 6번의 은행 지급준비율 인상을 실시했다. 칠레와 브라질도 지난해 각각 7차례와 3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금리 인상 등 출구전략 시행했어야

브릭스 국가와 한국 등의 고성장·고물가 현상은 미국, 유럽연합, 일본 등 선진국들이 저성장·저물가의 덫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특히 일본은 2010년에도 물가상승률이 1.0% 하락하는 등 여전히 디플레이션 상태다. 이같은 선진국과 후발국 간의 불일치는 후발국들의 물가안정을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 요인이 되고 있다. 한 예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2차 양적 완화 조처로 6천억달러가 추가 투입되자 달러 약세로 이어지면서 신흥국들의 인플레이션과 자산가격 버블을 부채질했다. 신흥국들은 물가안정을 위해 금리를 많이 올리면 통화가치 절상(환율 하락)으로 이어져 수출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담도 안게 된다.

특히 한국은 달러를 푸는 미국과 수출경쟁력 저하를 우려해 급속한 위안화 절상을 회피하려는 중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처럼 어려운 처지다. 한국으로서는 금리 인상으로 원화가치가 올라 대미 수출경쟁력이 떨어지는 것보다, 중국보다 수출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원화 절상 속도를 우리 입맛에 맞게 조절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국은행의 한 간부는 이와 관련해 “미국이 현재 신흥국들의 물가불안을 즐기는 것 같다는 분석도 있다”고 소개한다. 경기부양을 위한 미국의 양적 완화 조처 → 중국 등 신흥국들의 물가불안 고조 → 물가안정을 위한 금리 인상 → 수출경쟁력 약화 → 미국의 수출경쟁력 상승 → 미국의 경제성장과 무역수지 적자 축소로 이어진다는 시나리오다.

“내가 얘기한 것이 크게 틀리지 않았지요….”

이동걸 한림대 교수(전 금융연구원장)가 아쉬워하며 하는 말이다. 이 교수는 2009년 3분기부터 금리 인상을 포함한 출구전략의 조기시행을 가장 강력히 주장했던 당사자다. 하지만 당시는 광야의 외로운 외침처럼 반향이 크지 않았다. 세계경제 회복세도 불투명한데 출구전략은 시기상조라는 반론이 우세했다. 이 교수는 “정부가 출구전략을 조기에 시행했다면 지금은 오히려 경제 운용에 여유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뒤늦게 경제성장과 물가안정 사이에서 선택의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을 가리키며 하는 말이다.

한국은행도 정부의 눈치를 보며 금리 인상에 소극적인 자세를 견지했다.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2%에서 2.5%로 올렸지만, 다른 신흥국들에 비하면 그 폭이나 횟수가 훨씬 적다. 한은 내부에서도 이런 정부와 김중수 한은 총재의 행보에 대해 작은 경고의 소리가 있었다. 한은이 지난해 5월 발간한 ‘해외경제 포커스’를 보면, 아시아 중요국의 물가가 선진국에 비해 빠르게 상승하고 있음을 경고하며 다른 나라의 조기 출구전략 시행 사례 소개와 함께 우리도 출구전략의 조기 시행 필요성이 있음을 내비치고 있다. 한국은행 해외조사실 김대수 종합분석팀장은 “인도, 베트남, 오스트레일리아, 중국, 싱가포르 등은 물가불안을 감안해 지난해 초부터 이미 통화정책을 긴축 기조로 전환했다”면서 “당시 우리나라도 빠른 경제회복과 높은 통화증가율 등이 인플레이션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이 제기됐었다”고 설명했다.

선거 앞둔 MB 정부, 성장 유혹 뿌리칠까
지난 1월13일 오전 경기 과천시 중앙동 정부과천청사 1브리핑룸에서 열린 ‘서민물가 안정을 위한 종합대책’ 발표에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과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웃고 있다.한겨레 박종식

지난 1월13일 오전 경기 과천시 중앙동 정부과천청사 1브리핑룸에서 열린 ‘서민물가 안정을 위한 종합대책’ 발표에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과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웃고 있다.한겨레 박종식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미국 등 선진국 성장세가 아직 미약한 상태에서 금리 인상은 자칫 성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저금리를 통한 성장 우위 정책 기조를 고집했다. 특히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는 국제 공조를 통한 출구전략의 필요성까지 제기하며 저금리 정책을 고수했다. 하지만 정착 G20에서는 출구전략이 핵심 의제에서 빠져버렸다. 한국 경제를 위협하고 있는 지금의 물가불안을 성장지상주의에 매몰된 ‘MB 노믹스’의 예고된 파멸이라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국회예산정책처의 박종규 경제분석실장은 “2008년 가을께부터 출구전략의 필요성이 제기됐는데 정부가 조기 대응에 실패함으로써 지금의 물가불안이 커졌다는 점을 부인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은 시장의 예상을 깨고 지난 1월13일 기준금리를 2.75%로 0.25%포인트 올렸다. 또 정부는 기획재정부 등 9개 부처를 총동원해 ‘서민물가 안정을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는 정부가 뒤늦게나마 ‘물가는 반드시 잡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윤종원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애초 올해 경제정책의 초점을 경제성장과 물가·고용에 균일하게 뒀지만 이번에는 물가안정을 먼저 확고히 하고 경기와 고용을 감안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은 역시 기준금리 인상 결정 직후 내놓은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 “앞으로 통화정책은 물가안정 기조가 확고히 유지될 수 있도록 운용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정부의 경제정책 무게중심이 ‘경제성장’에서 ‘물가안정’으로 이동했다고 단정짓는 것은 아직 이르다는 신중론도 적지 않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올해의 5% 성장목표를 포기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복병은 2012년 4월과 12월로 예정된 총선과 대통령 선거라는 정치 일정이다. 이동걸 교수는 “선거를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이 믿을 구석은 경제성장밖에 없어 성장률 높이기에 올인하고 싶은 유혹이 클 것”이라면서 “향후 정치 일정상 합리적인 경제적 판단보다는 정치적 판단이 득세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과도한 유동성을 줄이고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기준금리를 금융위기 이전 수준인 3.5~4%까지는 올려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하지만 정부가 앞으로도 계속 금리 인상을 단행할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눈치보기를 하다가, 경제 여건이 조금이라도 좋아지면 바로 경제성장 기조로 원위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 경제가 지금 시점에서 근원적으로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물가불안을 잡지 못하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주가와 부동산 등 자산가격 상승으로 버블이 더욱 커지다 끝내는 폭발해버려 경제가 곤두박질할 위험성이 높다. 더욱이 정부는 과거에 비해 경제위기에 대처할 기초체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통화 팽창, 재정건정성 악화 등으로 추가로 재정지출을 늘리고, 통화 공급을 확대할 여지가 그만큼 적다는 얘기다.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의 유종일 교수는 “성장-물가의 최적 조합을 찾아야 하는데, 지금은 고성장만 추구할 수 있는 시점은 지났고, 단계적인 금리 인상을 통해 시장에 물가안정을 위해 노력한다는 분명한 신호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고환율 정책도 수입물가를 올려 물가불안을 부채질한다는 비판의 도마 위에 올라 있다. 유 교수는 “환율을 너무 내리면 수출경쟁력에 부정적 영향이 크지만, 지금은 수출 여건이 괜찮은 만큼 달러당 1100원 이하로 내릴 여력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원화가치 절상에 대한 신중론도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의 박종규 경제분석실장은 “환율 절상은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특히 물가안정을 위해 환율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저성장·고물가의 스태그플레이션 오나

한국 경제가 위기 속에서도 저금리와 재정지출 확대, 고환율 정책에 힘입어 구가해온 고성장-저물가 시대가 이제 저물고 있다. 이제 한국 경제는 저성장-고물가의 스태그플레이션 암흑기로 빠질지, 아니면 적정한 성장-물가의 조화를 찾아 경제 안정에 성공할지 기로점에 서 있다.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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