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방식에 대한 하나의 선택으로 이해와 지지를 받고 싶은 무자녀 부부들 이야기

3월 말의 어느 날 회사 선배인 이성욱 기자와 기획안을 의논하고 있었다. “최근에 나온 <무자녀 혁명>이란 책은 서평으로 쓰기 아깝다.” “아이 낳기는 선택인 시대가 된 것 같다.” “우리 둘이 손 꼭 잡고 특집으로 써보자.” 갑자기 옆에 앉은 정남구 기자가 한심하고 가련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쯧쯧, 애 키우는 기쁨을 알지 못해 그렇지.”
무자녀의 다양한 스펙트럼
이 기자와 나는 “아이를 낳아 기르기에 필수적이고도 중요한 것을 안 갖고 있고, 그런 까닭에 두려워서” 아이 안 낳기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이성욱 기자는 결혼하지 않았지만 그의 고민은 ‘오버’가 아니다. 아이를 안 낳으려는 생각이 직접적 원인은 아니지만 상당한 걸림돌로 작용해 결혼의 문턱에서 두번 이별한 경력이 있다.
정 기자의 말을 듣고 우리는 동질감과 연대감을 눈빛으로 교환하며 목소리를 낮췄다. “세상은 너무 아이 중심이야. 아이 없는 사람들은 불임이거나 이기적이거나 둘 가운데 하나로 찍혀. 아이 낳기는 사회적·제도적·관습적으로 강요돼. 완고한 이데올로기야.” 우리가 아는 많은 무자녀 부부들의 사연이 주마등같이 스쳐갔다. 개중에는 불임도 있지만, 무자녀를 선택한 부부도 많다. 그들은 결코 불쌍하지도 이기적이지도 않다. 얘기하던 중 나란히 앉은 이 기자와 정 기자의 노트북 초기화면이 한눈에 잡혔다. 정 기자는 6살된 아들의 얼굴 사진, 이 기자는 고양이 사진을 띄워놓았다. 정 기자는 아들 사진을 자랑스러워하는 눈치지만 이 기자는 “인터넷에서 보고 예뻐서 퍼다놓았거든” 하며 우물쭈물한다. 그러고 보니 사무실의 기혼자들은 대부분 아이 사진을 노트북 초기화면에 띄워놓았다.
부모에게 아이는 어떤 존재일까. 1천명에게 물어도 1천개의 답이 나올 것 같다. 무자녀인 내가 보기에 어떤 이들은 아이를 방치하고 어떤 이들은 숭배한다. 물론 두 극단 사이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무자녀 혁명>(매들린 케인 지음·북키앙 펴냄)은 100명의 미국 무자녀 여성들을 인터뷰한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같은 시대를 사는 우리와 겹치고 포개지는 지점이 많다. 지은이가 만난 무자녀 여성들은 세 부류로 나뉜다. 첫째, 아이가 필요 없거나 기르고 싶지 않다. 둘째, 아이를 갖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셋째, 살다 보니 아이가 없게 됐다. 각 부류에 속한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갖고 있다. 첫째 부류에는 아이 없는 삶을 확신하는 사람들, 종교인들, 환경주의자들이 포함된다. 둘째 부류에는 질병에 걸렸거나 동성애자, 불임자들이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셋째 부류다. 부모님, 특히 엄마의 삶에 대한 기억과 성장기의 상처가 있는 경우, 배우자를 만나야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도덕적 규범에 얽매인 경우, 상대방이 아이를 원치 않는 경우 등 이들이 무자녀를 선택한 이유는 다양하다. 이들 가운데는 아이 낳기를 미루다 ‘생체시계’가 멈춰 아이를 못 낳게 된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의식했건 안 했건 무자녀는 ‘스스로의 선택’이었음을 인정한다. 지은이는 아이 낳는 것을 절대선인 것처럼 여기는 시대에 이들의 가치관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일컫는다.
우리가 철없다고

지은이는 두명의 의붓딸과 한명의 친딸을 둔 엄마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기쁨에 대해 스스로 한번도 회의한 적이 없다. 그러나 책 말미에 이렇게 되묻는다. “그들(무자녀 여성들)은 신문이나 잡지, 텔레비전, 영화에서 언급되는 이기적이고 아이를 미워하는 일 중독자들이 아니었다. …드러내놓고 아이를 싫어하고 엄마가 되는 일에 질색인 여성들도 아이를 가지려는 나의 열망을 존중해주었다.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는 왜 세상은 그들을 똑같이 존중하지 않는가”
취재 중 만난 무자녀 부부들의 삶은 개인적이지만 보편적 울림이 있었다. 이들은 남들이 자신을 “철없다”고 여길 때면 말문이 닫힌다. 그리고 “아이 없는 사람 역시 아이 있는 사람 못지않게 아이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또 자신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한다”고 입을 모았다.
전문직 여성인 이아무개(29)씨. 결혼 전 아이를 낳지 않기로 남편과 합의했다.
“나는 애를 좋아하고 애 낳는 능력을 써먹고 싶다는 생각도 있지만, 남편은 완강하다. ‘내 한몸 주체하기도 힘들다’는 게 이유다. 맞벌이인 우리는 애를 낳아 기를 정신적 여력도, 물리적 여력도 없다. 가끔 친구들 만나면 소외받는 기분이 든다. 애 얘기는 끝이 없다. 애 얘기말고는 할말이 없어 답답하기도 하다.”
회사원 윤아무개(35)씨. 무자녀 확신자는 아니다.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다 경제적 부담도 있다. 판단을 미루고 있지만, 이 상태로 30대 후반을 넘기면 그냥 무자녀로 갈 것 같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는 기러기 아빠가 많았다. 외국 지사에 자리가 나면 서로 달려가려고 했다. 아이들 때문이었다. 보기 좋지 않았다. 아내는 아이를 안 낳는 게 아니라 못 낳을 수 있는 나이가 한발씩 다가오면서 고민하는 눈치다.”
결혼 8년째인 남아무개(36)씨. 아내도 그도 무자녀를 선택했다.
“애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 자문해봤지만 답이 없었다. 장남이어서 애 낳으라는 압력이 크다. 큰 불효를 하는 거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적어도 내 핏줄을 만들기 위해 애를 낳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 가정·가족이라는 관계를 피할 수는 없겠지만 아이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에 속한다. 40∼50살이 돼 아이가 그리워지고 보살핌을 주고받는 게 필요하다면 입양한다는 생각에 아내도 동의했다.”
회사원 김아무개(41)씨. 어쩌다 보니 아이 낳을 시기를 놓쳤다.
“아내는 프로로서의 위치를 인정받을 때까지 애를 낳지 않으려고 했다. 내가 봐도 자질과 능력이 있어 보였다. 그래서 미뤘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쪽에서 애를 낳아볼까 얘기를 꺼냈지만 내 생각이 바뀌었다. 둘이 사는 데 익숙하고, 둘 다 마흔 넘은 지금 애를 낳으면 부모로서 제대로 책임을 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냥 우리 둘이 행복하게 살다 가자’는 게 지금까지의 합의내용이다. 노년의 외로움이나 두려움 자식 여럿 두고도 혼자 살거나 외로운 노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주변에서는 우리 부부가 애를 못 낳는 줄 알고 좋은 처방이 있다며 소개시켜주려 한다. 일일이 설명하기 힘들어 감사하다고 하고 대충 넘어간다.”
사회적 편견을 넘어

직장생활 8년째인 김아무개(32)씨. 아이를 포함한 가족동반 모임을 싫어한다.
“직장 회식이나 단합대회 때 아이들이 와버리면 어른들 단합대회가 아닌 아이들 단합대회로 바뀌어버린다. 사실 아이 없는 사람에게는 폭력적이다. 넷 가운데 세 커플은 불임일 확률이 높다는 통계를 봤다. 동료 가운데 아이를 갖고 싶어도 못 갖는 사람이 있다. 그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 가족과 친인척들은 그렇다고 해도 회사조직마저 아이 낳기를 부추기는 경향이 크다. 단적인 예로 아이가 없는 사람에겐 피부양자 수당이 없다. 어느 누구도 불평등하다고 문제삼지 않는다.”
30대 중반에 결혼한 박아무개(38)씨. 아이는 하나의 종교로 자리잡았다고 여긴다.
“둘 다 적령기를 넘긴 상태에서 결혼했다. 가족과 주변 등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막상 결혼하고 보니 아이를 가지라는 압력은 결혼하라는 압력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도 아이 문제만큼은 간섭하려 한다. 아이 낳기를 강권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세상이 뒤집어져도 우리 가정은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 한가운데 아이가 있다. 절대 신앙·종교처럼 보인다. 믿음은 소중하지만, 그런 믿음이 결혼을 하지 않거나 다른 형태의 가족을 구성한 사람들에게 배타적 칼날로 다가가지는 않는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무자녀 부부들은 양가나 주변의 공격을 방어할 만한 배짱과 경제력을 공통적으로 가졌다. 또 저마다 부모에 대한 특정 기억을 몸에 깊게 지니고 있었다. 아이들은 아주 일찍부터 자신의 역할모델인 아빠·엄마의 삶을 눈치챈다. 특히 부정적 메시지는 깊게 각인된다. 이대로 가다간 아이를 안 낳을 것 같다는 윤아무개(35)씨는 “사실 부모님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다. 어머니가 직장 다니시다가 애를 갖자 아버지 주장대로 집에 눌러앉으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어머니는 사회생활 포기한 것을 20∼30년 내내 스트레스로 여겼다”고 말한다. 장남인 남아무개씨는 “장남의 온갖 부담을 지고 살아온 아버지는 자식인 나에게도 비슷한 걸 바라지만 난 그러지 못하겠다. 부모 자식으로 구성된 가정에 대한 환상이 없다. 의무가 우선인 가족은 더욱 싫다”고 말한다. 가족동반 모임을 싫어하는 김아무개(32)씨는 “엄마는 살림도 잘하고 아빠보다 경제력도 있었다. 우리에게도 부족함 없이 대해줬다. 하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의 고단한 삶을 피부로 느꼈다. 세 자녀를 키우면서 노모 모시고 돈 벌고 살림하는 일은 아주 힘들다. 엄마는 성공적으로 살아왔지만, 자녀가 없었다면 아주 다른 삶을 살았으리란 느낌을 버리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다음카페 딩크족(cafe.daum.net/dink)은 부부중심 가치관을 가진 이들의 온라인 집합소다. 남녀 불문하고 사회적 편견을 견디는 사연이 줄지어 올라온다. 명절날 애들을 데려와 물고빨고 하면서 아이 없는 자신 부부를 2등시민 취급하는 형제·자매·친척들의 횡포, 직장에 다니지 않으면서 애를 낳지 않는 자신을 환자로 동정하는 아파트 주부들의 눈길, 예식장에서 모처럼 만났는데 제 아이만 챙겨 먹이고 휑하니 나가버린 친구에 대한 섭섭함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어떤 글이든 결론에는 “스스로의 선택이든 어쩔 수 없는 결과든 신나고 당당하게 살아가자”는 목소리를 낸다. 이들 대다수는 비교적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즐긴다. 여행이나 각종 취미활동에도 열심이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삶이 아이 있는 이들의 삶보다 결코 우월하거나 행복하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지난 가을 나는 왜 아팠나
결혼생활 7년째. 아이 없는 내게 사람들은 꼭 묻는다.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고. 나는 손쉽게 “때 되면 가지려고요”라고 답변했다. 서른세살이 된 올해부터는 그런 설명을 하는 나를 사람들은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더 나이 들면 힘드니 빨리 낳으라”는 것이다. 나도 그건 안다.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니다.
지난해 봄, 남편과 나는 중대한 결심을 했다. 엄밀하게 말하면 내가 잠깐 정신이 나갔다. 우리는 2003년에 아이를 낳자고 합의했다. ‘술·담배 멀리하고 몸도 만들자’는 깜찍한 계획도 나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겨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불안·초조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친구가 “너 출산계획 때문 아냐”라고 물었을 때 화들짝 놀라며 “무슨 소리야, 그건 이미 결정한 일이야”라고 되레 신경질을 부릴 정도로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것이 나를 아프게 한 모양이다. 이유 없이 우울한 가을을 보내고 나서 알게 됐다. 내가 진심으로 아이 낳아 기르기가 싫다는 것을. 하지만 이런 나를 자신 있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거꾸로 생각해보았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을 자신 있게 설명할까
아이 있는 사람들에게 물으면 “그냥 별 생각 없이”, “둘만 살면 허전하니까”, “부모님 등쌀에”, “노후를 위해서” 등 몇 가지 답변이 돌아왔다.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결정, 어찌 보면 실존적 결단이 필요한 문제치고는 너무 ‘헐렁한’ 답변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성인 세대는 아이를 낳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면적으로 생각해본 경험이 없다.
나는 여전히 고민 중이다. 최종결정을 내릴 생체시간이 남아 있는 탓에 판단을 미루고 있다. 분명한 것은 하나도 없지만 이성욱 기자에게 이 말만은 꼭 하고 싶다.
“선배, 노트북에 고양이 사진 깔아놓았다고 사람들이 놀려도 기죽지 마. 강아지 사진이면 어떻고, 펭귄·암탉·붕어면 어때 옆집아이 사진이나 조카 사진을 깔아도 되고 이라크 어린이 사진을 깔 수도 있지. 선배에게는 사랑할 대상의 외연을 넓힐 자유가 있어. 제발 나에게 ‘너도 그렇다’고 얘기해줘. 우리에겐 이해와 지지가 필요해.”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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