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낳고서야 철이 든 기자의 무자녀 반대론
친구 H는 외환위기 직후 첫딸을 낳자 안정된 직장에 다니는 아내를 대신해 집에서 아기를 돌보다 아예 ‘전업주부’로 눌러앉았다. 9대 종손인 그는 젖병을 소독하고, 기저귀를 갈고, 장을 보러 다니는 생활을 이제는 즐기는 경지에 이른 것 같다. 다만 연말에 태어날 셋째만은 아들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눈치다.
대학동창인 아내와 10년 넘게 살고 있는 Y는 앞으로도 아이는 낳지 않을 작정이다. Y는 양가 부모의 성화 때문에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도 했지만, 몇해 전 아내가 두 번째로 외국에 공부하러 나가면서 먼저 이혼을 요구해 지금은 법적으로 이혼상태다. 물론 둘은 지금도 같은 집에서 아주 잘살고 있다.
이들에 비하면 내 결혼생활은 아주 평범하다. 애초 내 인생설계에도 결혼은 없었다. 취직하겠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그저 입에 풀칠 하고, 책 사보고, 가끔 여행하는 데 필요한 경비를 벌 수 있는 파트타임 일만 있으면 충분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런 생활을 1년 넘게 했다. 그런데 내 삶에 무언가 비어 있다는 느낌은 갈수록 커져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일을 경험해보지 않고서 어떻게 세상살이를 이해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든 것이었다.
“직장생활도, 결혼생활도,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도 다 도닦는 일이다!” 나는 그렇게 결론짓고 ‘파라다이스’에서 탈출했다. 아들 ‘제’는 결혼 3년 만에 얻었다. 몸이 약한 아내가 1년 넘게 요가를 하고, 나도 몇달간 담배를 끊고서 생긴 아이다. 제를 키우며 나는 결혼하고 자식 낳는 일을 거부하려 한 게 얼마나 철없는 짓이었는지 수없이 깨닫는다. 자식은 내게 부모의 사랑을 이해하게 해주었고, 인간 그리고 나를 끊임없이 돌아보도록 한다. 물론 평온히 잠든 아이 얼굴에서 최고의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일이다.
자식을 기르는 것에는 많은 시간과 정성, 그리고 돈이 든다. 가난한 우리 부부는 그래도 아이를 하나 더 갖길 원한다. 아이에게 형제가 있다면 더 좋을 테니까. 아들이 여섯살이 되도록 소망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둘째가 생기면 이제 막 자기 일을 시작한 아내가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도 조금은 두려워한다. 그러나 사람이 자식을 낳아 힘써 기르는 것은 대자연의 섭리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것을 거역하고서는 결코 더 큰 행복을 얻을 수 없다는 데 우리 부부는 깊이 공감한다.
“우린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캐서린)/ “어쩌긴, 밍크처럼 사랑하고 새끼 낳고 살아야지.”(닉)/ “새끼는 싫어요.”(캐서린)/ “그럼, 새끼는 빼고….”(닉)
영화 에서 캐서린(샤론 스톤)은 ‘새끼는 빼고’라는 대답을 들은 뒤에야 침대 밑에 얼음송곳을 내려놓는다. ‘윤회’의 고리를 끊겠다는 의지인가 내 생각으론 인구 포화상태의 우리네 삶의 환경이 일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식을 낳지 않는 선택을 하도록 어떤 기제를 발휘하는 것 같다. 캐서린이 그런 기제에 감염된 것이라면 사회가 치료를 도와줘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사회환경을 바꾸려는 노력은 별개의 일이겠지만. 나는 요즘도 Y부부를 만나면 “자식이 있어야 비로소 우리의 죽음이 ‘축제’가 될 수 있다”고 ‘온정적인’ 간섭을 하곤 한다. ‘못낳는 것도 아닌데, 철이 덜 든 것들!’이라고 가끔 힐난도 하면서.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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