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사건 초기에 철수 불가 선언 등 사태 악화시켜… 이슬람성직자위원회와의 협조가 주효
도쿄= 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김선일씨 납치 사건의 대응책 마련을 위해선 지난 4월 비슷한 사건을 겪은 일본의 사례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인질 석방에 성공한 일본의 경험에서 얻을 만한 교훈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라크 무장세력의 일본인 납치 사건에 대한 일본 내의 평가는 ‘결과적 성공’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인질들이 무사하게 풀려나 다행스럽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많았다는 것이다.
당시 손에 쥔 카드 아무것도 없어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전쟁고아들을 돌봐온 여성 자원봉사자 다카도 나호코(34) 등 3명이 납치됐다는 소식이 아랍 위성방송 를 통해 전해진 것은 4월8일 저녁 무렵이었다. 무장세력은 사흘의 말미를 주면서 이라크 사마와에 파견돼 있던 자위대를 철수하지 않으면 이들을 처형하겠다고 협박했다.
이날 밤 총리 관저에서 긴급 대책회의를 끝낸 일본 정부가 보인 첫 번째 반응은 자위대 철수 불가였다. 자위대 파견에 대한 국내 반대 여론이 높은 터에 자칫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가는 철수 논란에 불을 붙일지 모른다는 우려에서 배수진을 친 것이다. 일본 정부는 테러 위협에는 굴복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펴면서 위기 극복을 위한 일본 사회의 단합을 외쳤고, 자위대 파견에 반대하던 야당과 언론도 정부 방침에 적극 협조했다.
고이즈미 정부는 인질 사건의 불똥을 차단하는 데는 재빨랐지만, 정작 인질 구출을 위해 쥐고 있는 카드는 아무것도 없었다. 미국과 영국의 협력을 요청하는 게 고작이었다. 자위대를 이라크에 보내는 데 급급해 실제 인명 피해가 발생하거나 자국인이 납치되는 상황을 가정한 대비책은 전혀 세우지 않아 정부의 당혹감은 더했다. 속수무책인 정부를 지켜보는 인질 가족과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무책임하고 경솔하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궁지에 몰린 일본 정부에 결정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뻗은 것은 이라크 수니파 종교지도자들이었다. 이들은 무고한 외국인 살해가 이라크 저항세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을 매우 악화시킬 것이라며 무장세력을 설득했다. 이들의 권고로 무장세력이 인질 석방 발표를 내놓음으로써 사태의 조기 해결 기대가 급속히 높아졌다.
그러나 무장세력이 밝힌 석방 시한이 넘어가면서 사건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 종교지도자 단체인 이슬람성직자위원회로부터는 인질들이 곧 풀려날 것이라는 소식들이 들려오는 반면, 다른 쪽에선 인질 살해 위협이 다시 전해져 혼란을 부추겼다. 그 와중에 비슷한 처지라고 할 수 있는 이탈리아의 인질 1명이 처형되는 장면이 아랍 방송을 통해 방영됐다. 게다가 프리랜서 등 일본인 2명이 추가로 납치돼 엎친 데 덮친 꼴이 됐다.
다급해진 일본 정부는 이슬람성직자위원회를 통해 무장세력과 석방 협상을 벌이는 데 목을 맸다. 가와구치 요리코 외상이 에 출연해 읍소하는 작전도 폈고, 현지 대책본부를 통해 무장세력과 직접 접촉도 시도했다. 이와 함께 인질의 가족과 시민단체들의 석방 운동도 활발하게 전개했다. 가족들은 아랍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인질들이 이라크인들을 돕기 위해 누구보다 애를 쓴 사람들이란 점을 각인하려 안간힘을 쏟았다.
시민단체들, 정부의 초기 대응 비판
이런 다양한 노력들이 결실을 거둬 마침내 일본인 인질들은 무사히 풀려났다. 인질 석방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자 일본 정부는 처음부터 단호한 태도를 보인 것이 주효했다며 자화자찬을 늘어놓았고, 우파들도 정부의 대응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지만 시민단체 등은 사뭇 다른 평가를 내놓았다. 무엇보다 이라크 종교지도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준 점이 사태 해결에 큰 힘이 됐고, 인질들의 이라크인 지원 활동이 무장세력의 마음을 돌리는 데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이들은 특히 정부의 서투른 초기 대응은 오히려 사태를 악화할 위험이 컸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라크 이슬람성직자위원회 관계자들은 일본 정부가 자위대 철수 요구를 즉각 거부한 것이나 고이즈미 총리가 무장세력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른 점 등이 석방 협상의 걸림돌이 됐다며 이런 견해를 뒷받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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