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지하철 2로선 사당역에서 탔습니다. 승객들로 붐비고 있습니다. 돔더 쾌적한 지하철 만들기 고심해보겠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10월28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승강장에서 직접 찍은 사진도 함께 올렸다. 트위터엔 스마트폰을 이용해 글을 올린 탓에 2호선을 ‘2로선’으로, 좀더를 ‘돔더’로 오타를 2개 냈지만, 이 글에 멘션을 단 사람들 가운데 박 시장의 진심이 오타라고 여기는 이는 드물었다. 대신 “신도림역같이 환승인원이 많은 역사의 안전 문제도 함께 검토해주세요”라는 제안이나 “지금처럼 항상 서민들과 동화되는 친근한 시장님이 되어주시길 기원합니다~!”라는 기대가 넘쳤다.
의무급식 서명으로 업무 시작
지하철 출근은 시장이 된 첫날인 하루 전날에 이어 이틀째다. 전날엔 사람들이 꽉 찬 탓에 자신이 타지 않자, 지하철이 1분가량 출발하지 않았다. 출근길 시민보다 ‘시장님’의 탑승을 우선순위에 둔 것이다. 그는 “이걸 (나 때문에) 잡은 거냐. 이렇게 하면 민폐”라며 “이런 게 관료주의다. 그냥 열차 보내라”고 했다. 시민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하는 ‘염치’도 잊지 않았다.
박 시장은 10월27일 아침 6시30분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 방문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그는 상인들을 만나 “제가 시장 됐는데도 찾아왔다. 약속 지켰다”며 “뽑아주셨으니 잘하겠다”고 했다. “늘 현장에서 시민의 말씀을 듣는 경청투어도 계속하겠다. 기자들 없을 때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다. 노량진 시장 방문 일정을 알고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며 자신을 ‘트위터 친구’라고 소개한 한 대학생에겐 “앞으로 제게 ‘디엠’(DM·트위터 쪽지) 보내라. 대학생도 모두 서울시민”이라고 말했다. 시청으로 향하는 지하철에선 자신을 알아보고 인사하는 시민들에게 “좋은 시장이 되겠다. 서울시에서 잘못한 것이 있으면 인터넷에 올리시고, 저한테 신문고도 올리시라”고 말했다.
소통과 민생. 임기를 시작하며 시장 방문과 지하철 출근이라는 파격을 통해 박 시장이 강조한 것은 이 두 가지였다. 이는 공식적으로 본 첫 서울시 업무가 무상급식 예산집행안이라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주민투표까지 치른 무상급식은 서울시민의 민심을 외면한 오세훈 전 시장의 불통의 상징이었다. 박 시장은 임기 첫날 200억원 규모의 무상급식 예산집행안에 서명함으로써 11월부터 서울시 초등학교 5~6학년생 19만8천여 명도 의무교육에 걸맞은 의무급식을 먹을 길을 텄다. 이날 오후엔 재개발 지역에 포함돼 주민들이 쫓겨날 위험에 처한 영등포 쪽방촌을 방문해 “동절기 월동 대책이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해 오늘 특별히 업무보고를 받았다. 취약한 생활지역 거주자의 월동 대책, 주거, 안전을 최우선으로 챙기겠다”고 약속했다. 또 “뉴타운이나 대규모 개발 방식을 개선하고 두꺼비 하우징(전면 철거식 재개발 대신 기존 주택을 개·보수하는 대안적 개발 방식)과 같은 인간적 개발 방식을 고민하겠다”며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박 시장의 주변 인사들은 이런 행보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민생을 위하고 소통하는 쪽으로 서울시정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참여연대에서 박 시장과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김기식 ‘혁신과 통합’ 공동대표는 “박 시장은 실무를 굉장히 꼼꼼하게 챙기고 강도 높게 일을 시키는 편이지만, 의사결정을 할 땐 옳고 그름뿐만 아니라 과정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신중하고, 심지어 더디다고 느낄 수도 있을 만큼 다양한 의견을 듣고 충분히 논의한다”고 말했다. 박 시장 스스로 보여준 시민과의 직접적인 소통뿐만 아니라 서울시 내부, 서울시의회와의 관계에서도 공론화를 통한 소통이 강화될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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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실 라인만 확정된 상태
이런 민생과 소통의 시정을 박 시장과 함께할 사람은 누구일까? 서울시장이 시에 ‘자기 사람’을 영입하는 자리는 대체로 정무부시장, 정무조정실장, 대변인, 특보 등의 정무라인과 비서실 쪽이다. 규모는 오 전 시장 때 24명까지 늘어난 특보를 얼마나 줄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서울시 출연기관의 기관장·감사 임명권도 박 시장이 갖고 있다.
언론에선 시민단체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출신으로 선거 캠프인 희망캠프에 참여한 이들, 야권 연대를 이룬 민주당 쪽 인사들의 이름과 자리를 구체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10월28일 현재 서울시 영입이 확정된 사람은 당장 급한 비서실 정도다. 희망캠프에서 상황부실장을 지낸 권오중 전 참여정부 민정수석실 행정관이 비서실장으로 내정됐다. 희망캠프 비서팀이었던 김준호·신영희 전 희망제작소 연구원도 비서실에서 일하게 됐다.
박 시장의 주변 인사들은 “보궐선거에서 당선됐기 때문에 인선 작업을 할 만한 인수위원회 과정 없이 바로 임기를 시작해, 아직 구체적으로 논의되거나 확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동시에 “야권 연대의 정신과 정책 합의를 잘 이행할 수 있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할 것이다. 여러 세력들이 당선을 도왔다고 해서 논공행상 식으로 자리를 안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박 시장의 한 측근은 “언론에서 여러 명이 거론되는 건 본인이 하고 싶은 건지, 밀고 싶은 사람이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다”며 “다만 선거캠프 출신 인사들을 대규모로 채용할 수가 없다. 어떤 자리와 역할이 필요할 때 거기에 적당한 사람을 한 명씩 임명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박 시장이 기존 정치인들처럼 이너서클에 있는 사람들과만 일하지 않는 탓도 있지만, 서울시 조직을 안정화하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서울시에선 선거 전부터 “박원순이 당선되면 시민단체 ‘낙하산’들이 대거 영입될 텐데, 그럼 고위직들은 다 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공무원들의 우려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공무원 조직의 보수적인 특성상 외부 인사들, 특히 ‘문법’이 다른 비정치권이 ‘점령군’처럼 비치고 조직이 동요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얘기도 나온다.
공동정부, 시의회 사이의 균형
박 시장은 야 5당과 합의한 공동정부 운영협의회와 서울시의회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공동정부 운영협의회 쪽에 기울어 서울시민이 선출한 대의기관에 소홀하면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에 배치된다. 그러나 야당과의 공동정부 운영협의회를 존중하지 않으면 정치적 신뢰를 잃게 된다. 이와 관련해 박 시장은 “공동정부 운영협의회는 자문기구로, 서울시정의 협치와 소통을 위한 구조다. 그러나 동시에 의결기관인 의회가 분명히 존재한다”며 “이런 관점에서 보면 큰 어려움 없이 (공동정부 운영이) 진행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10월27일 국립현충원 방명록에 ‘함께 가는 길’이라고 썼다. “순국선열들이 가셨던 길을 우리 모두 함께 가야 한다는 뜻이자 서울시장이 시민과 함께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3년 동안 박 시장은 “뽑아주셔서 고맙다던 그 아저씨들 뭐하시나요”(이승환, )라는 노랫말에 또 한 명의 ‘아저씨’로 추가되지 않는 ‘기적’을 보여줄 수 있을까.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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