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사전 기획설의 장본인으로 지목된 최규선씨. 그는 노벨상 관련 문건을 작성했지만 청와대에서 거부했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한국판은 자신을 팔아 로비 의혹을 증폭시켜 국가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주장한다. |
‘노벨평화상이 과연 로비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일까.’
지난해 10월 노벨상 수상 관련 로비 의혹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뒤 이 문제가 대선을 코앞에 둔 여야 사이에 치열한 정치쟁점으로 떠오른 이래로 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 의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과 관련해 로비설 의혹을 불러일으켰던 진원지이자 직접 당사자인 최규선(43·미래도시환경 대표)씨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최씨는 12월20일 과의 인터뷰에서 “노벨평화상 관련 문건은 어르신(‘김 전 대통령’을 지칭)의 신임을 잃은 상태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뒤 ‘롤백’(‘복귀한다’는 의미)하기 위해 청와대와의 사전교감 없이 내가 스스로 만든 것이며, 실제로 문건내용대로 집행된 것은 없다”면서 “당시 이재만 청와대 부속실 수행비서를 통해 청와대쪽에 문서를 전달했지만 거절의 뜻을 듣고 그 뒤로는 노벨평화상 관련 활동을 일절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자신이 만든 노벨평화상 관련 문건내용을 보도한 한국판(2002년 10월16일치) 기사와 관련해서도 “내가 그 기사의 가장 큰 피해자”라고 전제한 뒤 “기사를 쓴 한국판 기자는 우리 운전기사를 꼬드겨서 (사무실에서 문서와 자료를) 무단으로 가져갔고, 나에게 인터뷰나 전화를 한 적도 없으며, 내 변호사나 주변사람에게 물어본 적도 없이 마치 (문서내용이) 사실인 양 보도해 국가적·민족적 자산에 큰 흠을 남기게 됐다”고 덧붙였다.
청와대와 사전교감 없이 스스로 작성
최씨는 김 전 대통령의 3남 홍걸씨와 함께 기업체로부터 청탁 대가 등으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수감돼 지난 11월28일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의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뒤 12월12일 두달 동안의 형집행정지 결정이 내려져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최씨는 현재 두 눈 모두 녹내장이 급격히 진행되고 있어 실명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취재팀의 인터뷰 도중에도 최씨는 왼쪽 눈에 안구보호대를 하고 있었다. 오른쪽 눈의 경우 최근 시력이 크게 떨어져 가까이 있는 물체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등 실명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게 의료진의 설명이다. 최씨는 양쪽 콩팥에 생긴 종양 치료도 함께 받고 있다.
지난해 10월 노벨상 관련 의혹이 정치권으로 확산된 것은, 한국판이 최규선씨 문건을 토대로 관련 기사를 쓰면서부터였다. 이 기사는 ‘DJ 특명 블루카펫을 깔아라’(부제는 ‘노벨평화상 만들기 최규선 파일 단독 입수’)는 제목이 붙어 커버스토리로 다뤄졌다. 표지에는 김 전 대통령과 최씨의 얼굴 사진이 나란히 실렸다. 제목과 표지만을 놓고 보면, 김 전 대통령이 최씨에게 노벨상과 관련해 어떤 명령이나 지시를 내렸다는 사실이 기사에 언급돼 있다고 유추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노벨평화상 관련 기획서의 성격을 띤 문건으로 기사에 언급된 것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다. 이른바 ‘M 프로젝트 추진계획’과 ‘프로젝트 블루카펫 추진계획’ 이 그것이다. 기사는 “이 두개의 노벨상 프로젝트는 98~99년 사이 국민회의 총재 보좌역으로 일했던 최규선씨가 기획하고, 박지원 현 청와대 비서실장과 연락을 취해 실행해왔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이 사건의 기본 구도를 밝히고 있다. 기사에는 이 두 가지 문건 말고도 국제인권상 수상 관련 서류들, 최씨가 국제변호사와 맺은 컨설팅 계약서, 각종 팩스문건들이 관련 자료에 포함됐다. 기사는 모두 임도경 당시 취재팀장(현재 편집장)이 작성한 것으로 돼 있다.
‘M 프로젝트’와 ‘블루카펫’의 실체
가장 중요한 두 문건 가운데 하나인 ‘M 프로젝트 추진계획’은 98년 5월에 작성된 것으로 나와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 대통령이 2000년도 노벨평화상 수상을 추진하는데 가급적 단독 수상하도록 하고, 지난 40여년 동안의 민주화 및 인권투쟁에 대해 국제사회의 정당한 평가를 받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문건은 이를 추진하기 위해 미국·유럽·제3세계·아시아를 아우르는 범세계적인 추대조직을 결성해 가동하고 해외 조직 운영은 미국에서 총괄하고 국내에서 이를 원격조종한다고 돼 있다.
문건은 국내 추진조직은 6월15일까지, 해외 조직은 7월30일까지 구성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섭외와 공략 대책에는 노벨평화상 선정 5인위원회의 개인신상을 파악해 맨투맨식 접근을 강화하고 5인을 1인당 최소 3명이 마크한다는 세부 지침까지 포함돼 있다. 프로젝트 별첨자료에는 노벨위원회 5명의 신상명세가 자세히 기록돼 있었다.
나머지 하나의 문건인 ‘프로젝트 블루카펫 추진계획’은 기사에 따르면, “추진 목표가 동일한 것으로 보아 ‘M 프로젝트’의 발전적인 형태인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블루카펫’이란 노벨상 시상식 무대에 깔려 있는 융단을 뜻한다. 기사에 언급한 이 문건의 주요 내용으로 △남북정상회담, 이산가족 상봉, 북한어린이돕기 등 다양한 감동의 장면들을 노벨평화상으로 가는 과정에서 만들어내야 한다는 점 △북한과의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만델라 대통령을 노벨평화상 추천인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점 등이 있다. 기사에 따르면 “박지원 공보수석과 연락을 취한 그(최규선씨)는 ‘블루카펫’ 프로젝트 및 그간의 프로젝트 관련 활동 보고서를 99년 2월24일 청와대에 제출했다”고 돼 있다.
9개월 차이로 만들어진 두 가지 문건은 최씨가 구상하는 노벨상 만들기의 기본전략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겉으로 드러난 점만으로도 몇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연속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추진했다면 98년 5월 구상했던 국내 추진조직과 해외 추진조직이 1년 뒤인 99년에는 어떻게 구체화했는지가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거창하게 추진했던 조직 구상이 어떻게 현실화했는지 99년 문건에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만약 이 문건에 조직의 구조도나 체계도라도 나와 있었다면 한국판이 이를 보도하지 않을 까닭이 없을 것이다. 노벨상 수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는, “5인을 1인당 최소 3명이 마크한다는 세부 지침까지 마련된 노벨위원회 5인선정위원회에 대한 대책”도 1년 가까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추진 조직도 없는 문건… 노르웨이 방문은 사실
이는 ‘M 프로젝트’ 문건이 개인의 아이디어 차원에 머물렀을 뿐, 실제로는 집행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최씨는 이와 관련해 과의 인터뷰에서 “M 프로젝트는 시리어스(serious)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 모호했다”고 말했다. 최씨가 청와대에 전달했다고 기사에 언급된 문건은 바로 ‘프로젝트 블루카펫 추진계획’인데, 최씨는 인터뷰에서 “당시 이재만 청와대 부속실 수행비서를 통해 청와대쪽에 문서를 전달했지만 거절의 뜻을 들었고, 그 뒤로는 노벨평화상 관련 활동을 일절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 전 대통령쪽의 김한정 비서관은 “최씨와 만났다는 이재만 전 비서관은 나와의 전화통화에서 ‘최씨가 가져온 문건의 내용이 너무 이상해서 대통령께 보고하지 않고 최씨에게 돌려줬다’고 한다”며 “바로 돌려줬는지 보관했다가 돌려줬는지는 모르겠다”고 전했다. 이 비서관과는 연락을 여러 번 취했지만 직접 통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두 가지 문건이 연속성을 띠지 못한 것, 조직적인 차원의 추진 움직임이 없었던 것 등은 최씨가 당시 처한 상황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대통령의 당선과 구제금융 사태는 최씨에게 최대의 ‘기회’였다. 외자유치가 절체절명의 과제이던 때였다. 그는 외국생활을 하면서 만든 인맥을 적극 활용해 조지 소로스를 국내에 불러들여 상당한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꿈꾸던 청와대 입성이 좌절되고 외자유치 과정에서 커미션 수수 의혹과 마이클 잭슨 내한공연을 계기로 생긴 의혹사건 때문에 두번이나 청와대 사직동팀의 내사를 받게 된다. 이때 그는 정권 주변 인사들로부터 결정적인 불신을 받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그는 98년 9월 미국으로 떠난다.
몇달 뒤 일본에 머물던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을 찾아가 만난 최씨는 99년초 귀국해 권노갑씨의 비서진이 된다. 최씨는 과의 인터뷰에서 “국내에서 어르신의 ‘내침’을 받은 이후부터 미국에 있을 때도 항상 어떻게 하면 그분으로부터 사랑을 다시 받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만 생각했다”며 “그러면서 얻은 결론이 노벨평화상 수상을 계속 추진하는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최씨는 99년 2월 노르웨이를 ‘개인적으로’ 방문한다. 그는 그곳에서 노벨위원회 사무총장이었던 게이르 룬데스타트 교수를 만난다. 그는 룬데스타트 교수를 만난 것과 관련해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곳에서 만난 룬데스타트 교수에게서도 특별한 얘기를 들은 것은 아니다. 노벨평화상이 어떤 절차와 과정을 통해서 수상되는지에 대한 일반적인 얘기만을 들었다. 매년 6월에 6명의 후보를 선정한다는 것, 최종 수상결정자는 노르웨이인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이 선정한다는 것 등을 그때 들었다. 절차나 과정을 보면 비정상적인 로비에 의해 선정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시상식을 주관하는 공무원을 만나서 노벨상 시상식이 열리는 장소에도 가봤다. 그때 블루카펫이 깔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뒤로 룬데스타트 교수와는 연락도 없었고 만난 적도 없다.”
청와대서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귀국 이후 청와대쪽에 노벨평화상 관련 프로젝트 기획안을 전달했지만 거절당했다. 주변에서 모두 부정적인 얘기들을 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밝혔다. 그는 “박지원씨가 그나마 이해해주는 사람이었지만 그분 역시 김중권 비서실장 등 당시 청와대 다른 인사들이 모두 나를 멀리하라고 하는 분위기여서 더 이상 여지가 없었다”면서 “그 무렵을 전후해 어르신의 머릿속에서 나의 존재가 완전히 지워진 것을 확인하고서 느낀 절망감은 너무 컸지만, 국민의 정부 아래서는 더 이상 정치활동을 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비즈니스를 해야겠다는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어쨌든 한국판의 노벨평화상 관련 기사를 아무리 꼼꼼히 뜯어봐도 ‘DJ 특명’이라는 제목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을 발견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문서의 내용에 나오는 기본적인 사실과 관련자들에 대한 확인 취재가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사가 작성된 데서 비롯한 문제점으로 보인다. 실제 이 기사에는 최씨나 박지원씨, 김 전 대통령, 문서에 언급되는 외국인사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이 문건의 내용에 대해 언급하는 대목이 없다.
기사 작성자인 임도경 편집장은 이에 대해 “최규선씨가 만나기를 원하지 않아 만날 수 없었지만, 최씨와 함께 문건을 작성한 중요한 인물을 따로 취재해 확인했다”며 “그 인물이 누구인지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임 편집장은 또 “기본적인 문건 2개 이외에도 이를 뒷받침해주는 팩스 자료나 편지, 다른 문서 등이 충분히 있었다”면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확인 절차는 거쳤다”고 설명했다. 최씨와 함께 문건을 작성했다면 이 사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으로 보이지만, 기사에는 그 ‘제3의 인물’에 대한 언급은 없다.
한편 이 기사는 내용의 엄밀성이나 취재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취재과정을 둘러싼 불법 여부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임 편집장은 최씨의 노벨평화상 관련 문건과 자료를 ‘입수’하면서 주인인 최씨의 허락도 없이 빈 사무실에 들어가 관련 문건과 자료들을 털어나왔다. 임 편집장은 이 과정에서 최씨의 운전기사 ㅂ씨와 동행했다. 임 편집장과 ㅂ씨는 현재 ‘취재를 도와주는 대가로 안정적인 공무원 신분’을 제공하기로 했는지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주장을 펴고 있다.
최씨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문건과 자료들이 도난당한 데 대해 “ 한국판에 문서들이 실린 것은 전혀 내 뜻이 아니었는데도 지금 시중에서는 내가 마치 노벨평화상 관련 의혹을 부추긴 장본인으로 돼 있다”면서 “나는 이 사실이 무엇보다 억울했기 때문에 검찰에서 조사를 받을 때도 임 편집장을 법에 따라 처리해달라고 진술했다”고 인터뷰에서 확인했다. 현재 임 편집장의 취재 행위가 특수절도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형사처벌 여부를 결정하는 일은 서울지검 형사6부(부장 김영철, 주임검사 박상길)에서 진행되고 있다.
편집장 고발… 불법적인 로비 없어
한국판의 노벨평화상 관련 기사는 당시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중앙 일간지 대부분이 받아썼고, 실제 로비가 이뤄졌는지에 관한 의혹기사가 잇따랐다. 문건에 나온 계획들이 실제로 실행됐는지를 엄밀히 따져보는 심층기사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신 한국판의 내용을 요약하거나 그대로 옮기는 식의 무책임한 인용보도가 주를 이뤘다. 한나라당은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이를 정치 쟁점화하려고 시도했고 노벨상 반납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주장까지 폈다.
국내에서의 논란은 노르웨이로까지 번졌다. 최씨를 만난 당사자인 룬데슈타트 교수는 당시 와의 인터뷰에서 로비설에 대해 “매우 불쾌하다(outrageous)”고 표현했다. 당시 나라 망신에 앞장선 국내 일부 언론과 정치권의 비이성적인 반응을 두고 “가히 노벨상감”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일본이 물리·화학 등 기초과학 분야에서 2개의 메달을 따내고 3년 연속 받게 된 화학상의 수상자가 무명의 회사원이어서 더욱 들떠 있던 것에 비하면 우리의 현실은 너무 달랐다.
노벨평화상을 받는 과정에서 불법적인 로비 행위가 있었는지를 밝히는 것은 미래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제2의 노벨상에 대해서도 이런 낯뜨거운 논란이 벌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관련자들은 더욱 구체적인 증언을 해야 하고 진실을 모두 공개해야 할 때이다.
글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orgio.net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헌법학자들 “국힘, 사태 오판…한덕수가 헌법재판관 임명 가능”
미 국무부, ‘한동훈 사살 계획’ 출처 질문에 “인지 못 하고 있다”
‘윤 캠프’ 건진법사 폰 나왔다…공천 ‘기도비’ 1억 받은 혐의
미군 “우크라서 북한군 수백명 사상”…백악관 “수십명” 첫 공식 확인
유승민 “‘탄핵 반대 중진’ 비대위원장? 국힘 골로 간다”
김문수, “내란공범” 외친 시민 빤히 보면서 “경찰 불러”
국힘·윤석열의 탄핵심판 방해 ‘침대 축구’
‘윤석열 탄핵소추안’ 분량 줄이다…넘치는 죄과에 16쪽 늘어난 사연
[단독] 계엄 선포 순간, 국힘 텔레방에서만 ‘본회의장으로’ 외쳤다
1호 헌법연구관 “윤석열 만장일치 탄핵…박근혜보다 사유 중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