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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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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자나깨나 후세인 입 조심!

등록 2003-12-26 00:00 수정 2020-05-03 04:23
공화당 정부와의 ‘더러운 거래’ 폭로될 수도…민주당도 후세인 체포로 대선 후보 명암 엇갈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체포 뉴스의 파장이 가라앉자 미 정부 일각에서 곤혹스러운 입장이 조금씩 새어나오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12월16일 미 <abc> 텔레비전과의 단독회견에서 후세인 전 대통령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명쾌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 이날 부시 대통령은 <abc>의 다이앤 소어가 “만약 사담 후세인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라는 질문을 하자 멈칫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는 고문을 행한 자이고 살인자”라며 “최고 처벌을 받아야 하는 폭군”이라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어 “사담 후세인을 만나보고 싶은가”라는 질문에는 즉시 “노(No)”라고 대답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존재 여부에 대한 질문에는 더욱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예봉을 피하기에 바빴다. 다이앤 소어가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지 않다고 밝힌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묻자, “사담은 위험한 인물”이라고만 대답했다. 다시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했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인가”라고 묻자, 그는 난감한 표정으로 “몇번을 물어도 나는 미국민을 위해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면서 일관된 대답을 했다. 결국 이날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인터뷰는 동문서답으로 끝났다.

20년전 화기애애한 담소에서는…

앞으로 부시 대통령과 행정부는 사담 후세인이 공개 재판을 받을 경우 더 곤란한 입장에 서게 될 것이다. 과거 미 공화당 정부와 사담 후세인 정권간의 밀착된 역사들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인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그리고 현재 국방부를 맡고 있는 도널드 럼즈펠드 장관 등이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과 깊이 연계돼 있다. 올 초 비밀해제된 미국 안보문서들에는 레이건-부시-럼즈펠드와 후세인간의 더러운 거래가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그러나 후세인이 이 문서들보다 더 비밀스러운 내용들을 알고 있어, 그것이 폭로될 경우 미국 정부는 세계적인 비난여론에 휩싸일 수도 있다.
현재 이라크를 점령하고 있는 미군의 총사령탑인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20년 전에는 사담 후세인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마주 앉아 함께 포도주와 스테이크로 식사를 하면서 화기애애한 담소를 나누던 사이였다.
1983년 12월20일 럼즈펠드는 중동문제 특사의 자격으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친서를 휴대하고 바그다드의 후세인궁을 방문했다. 미국과 이라크간에는 1967년 제1차 중동전쟁 이후로 외교관계가 단절된 상태였다. 또 당시 이라크와 이란은 전쟁 중이었다. 후세인과 럼즈펠드 회담 이후 미국은 후세인에게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군사원조를 제공했다. 물론 양국간의 외교관계도 회복했다.

그리고 미 정부는 이라크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했다. 럼즈펠드는 바그다드 방문 뒤 언론과 만나 “중동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풀렸다”고 밝혔다. 당시 유엔과 국제사회에서는 이라크의 화학무기 사용을 비난하고 있을 때였다. 언론에서 럼즈펠드에게 이 문제를 집중 질문했으나 그는 “회담에서 언급했다”라고만 밝혔다. 그러나 나중에 미 국무부 관리는 후세인은 화학무기 사용에 대한 어떠한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럼즈펠드가 거짓말을 한 것이다.

화학무기 사용 덮어준 럼즈펠드

비밀해제된 미 정부의 국가안보지침서(NSDD) 114호(1983년 11월26일), 139호(1984년 4월5일) 등에는 이란과 전쟁을 벌이는 후세인 정권에 대한 군사원조 지침이 들어 있다. 이라크를 지원하는 목적은 중동 석유자원 보호 등 미국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 있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이라크의 화학무기 사용 등 비인륜적 행위에 대한 대응 조치는 없었다. 실제로 이라크는 자국 내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에게 독가스를 살포했으며, 이란과의 전투에서도 독가스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유엔 조사반에 의해 밝혀지기도 했다. 후세인 정권에 대한 지원은 레이건 행정부에서 다시 아버지 부시 정부에 이르기까지 계속됐다. 그러나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미국과 이라크는 적대국으로 변했다.
만약 후세인이 공개적이고 공정한 재판에서 자유롭게 증언할 경우 그가 말하는 미 정부와의 관계는 그야말로 전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것이다. 이같은 후세인과 럼즈펠드간의 만남에서 언론에 보도된 이외의 실제 합의 내용은 무엇일까? 후세인과의 회담은 누가, 어떻게 주선했는가? 당시 이라크 정책에 누가 관여했는가?
미 정부는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할 수 있도록 지원한 내막을 밝혀야 할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다. 이는 이라크 전쟁의 명분에 심대한 타격을 줄지 모른다. 또한 후세인이 알카에다와의 연계를 부인할 경우에도 9·11 테러사건 이후 미 정부가 취한 정책이 명분을 잃는다.
이번 후세인의 체포는 2004년 미 대선에 뛰어든 민주당 대선후보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이는 미 유권자들에게 전쟁의 당위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작용한다. 지금까지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을 비판해온 민주당쪽은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도 미국인 10명 가운데 6명이 이라크 전쟁을 ‘싸울 가치가 있는 전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유권자들은 35%만이 전쟁을 지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민주당 대통령 예선후보군 중에서 인기 선두를 달렸던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가 사담 후세인 체포 이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조지프 리버먼 전 상원의원에게 2% 차이로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12월18일 현재 약 2만명이 참여한 인기투표에서 리버먼 후보는 28%를, 딘 후보는 26%를 얻었다. 딘 후보는 후세인 체포 직후인 12월15일 로스앤젤레스에서 행한 외교정책 연설에서 “후세인의 체포가 미국의 안전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며 반전운동을 계속 추진할 뜻을 천명했다.

인기 흔들리는 하워드 딘 후보

일부 후보들은 딘 후보가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지명을 받으면 부시 대통령과 경쟁하기에는 힘이 달린다고 주장한다. 이라크 파병을 지지했던 존 케리 후보(매사추세츠주 출신)는 “우리는 부시 대통령을 물리칠 강력한 정책을 추진할 후보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조지프 리버먼 후보는 “만약 후세인이 계속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세계는 결코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며 딘 후보를 공격하고 나섰다.
민주당 예선주자들은 본격적인 대선 예선투표가 시작되는 오는 1월19일 아이오와 당대회 투표를 앞두고 이라크 전쟁 이슈를 포함한 자신들이 제시한 대안에 대해 처음으로 심판받게 된다. 민주당 리더십위원회쪽은 사담의 체포가 민주당 예선주자 중 폭군을 제거하기 위한 군사작전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4명의 후보들에게 이득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 4명은 매사추세츠주 출신 존 케리 상원의원, 노스캐롤라이나주 출신 존 에드워드 상원의원, 조지프 리버먼 2000년 대선 부통령 후보, 그리고 미주리주 출신 리처드 게파트 하원의원 등이다. 그러나 딘 후보가 아이오와 당대회 투표에서 승리한다면 그의 인기는 다시 치솟아 대선유세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로스앤젤레스= 김지현 전문위원 lia21c@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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