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압승을 거둔 4·15 총선 결과의 배경엔 코로나19 대응에서 중앙정부를 선도한 광역 시도지사들의 노력이 있었다. 다음 대선의 잠재적 후보들이기도 한 이재명 경기도지사, 박원순 서울시장,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긴급재난지원금이나 마스크 공급, 신천지교회 대응 등 다양한 이슈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했다. 이들의 활약으로 중앙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은 시너지를 내고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까지 받게 됐다.
지방정부, 마스크 공적 공급·재난기본소득 밑돌
지방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을 주도한 사람은 이재명 지사였다. 국내 코로나19 확산의 진원지이던 신천지교회에 대한 대응이 두드러졌다. 이 지사는 2월24일 353개 신천지 시설을 2주 동안 강제 폐쇄하고, 신천지 신자들의 집회도 금지했다. 다음날엔 경기도 과천시 신천지 부속기관에 강제 진입해 신천지 교인 4만여 명의 명단을 확보해 국민의 요구에 부응했다.
마스크 공급과 관련한 대응도 눈에 띄었다. 이 지사는 코로나19 확산 초기인 1월30일 가격이 폭등하던 마스크 사재기에 강력한 단속을 하겠다고 밝혔다. 3월3일 영상 국무회의에선 중앙정부가 마스크 가격을 통제하고 생산량의 90%를 공적으로 판매하자고 제안했다. 이틀 뒤인 5일, 정부는 마스크 가격을 정해 일주일에 1인 2개씩 파는 마스크 5부제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경기도 한 관계자는 “이 지사는 현장에 답이 있다고 생각하고, 수요자의 생각과 속도를 중시한다. 이런 생각이 중앙정부 정책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정국에서 최대 이슈는 긴급재난지원금(재난기본소득)을 둘러싼 논란이었다. 이 지사는 3월6일 “비상 상황에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일정 기간에 반드시 소비해야 하는 재난기본소득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며 이 문제를 앞서 제기했다. 이어서 3월8일엔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국민 1인당 재난기본소득 100만원을 지급하고, 고소득층에겐 내년에 세금으로 다시 거두어들이자고 제안했다. 지급액의 50% 이상을 지역 상품권으로 제공하자고도 했다. 이관후 경남연구원 연구위원은 “김 지사는 현장에서 느낀 것을 중앙정부에 제안했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선제적으로 집행했다. 다만 경남의 재정이 넉넉지 않아 보편 지원을 하지 못한 게 아쉽다”고 말했다.
3월9일부터 박원순 시장,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후보 51명, 심상정 정의당 대표,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등이 잇따라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고 중앙정부에 요청했다. 이재명 지사는 한발 더 나아갔다. 24일 전격적으로 경기도민 1326만 명 모두에게 10만원의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모든 주민에게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건 광역정부 가운데 처음이었다.
대선 후보로 우뚝 선 이낙연, 앞길 어두운 황교안
청와대는 더뎠다. 문재인 대통령은 3월30일 소득 하위 70%에 대해 4인 가구 기준으로 100만원의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70%의 가구에만 지급하겠다는 선별지급 방침에 비판이 쏟아졌다. 급기야 4월5일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까지 “전 국민에게 1인당 50만원의 긴급재난지원금을 현금으로 즉각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되자 4월6일 결국 민주당은 전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재명 지사, 김경수 지사, 박원순 시장 등의 계속된 노력이 열매를 거둔 것이다.
지방정부 장들의 맹활약은 이들에 대한 지지도에도 반영됐다. 긴급재난지원금 논의를 주도한 이재명 지사는 3월13일 한국갤럽 조사에서 11%를 얻어 9%를 얻은 황교안 전 대표를 제치고 이낙연(23%) 전 총리에 이어 2위로 올라섰다. 4월8일 리얼미터의 전국 17개 광역 시도지사에 대한 지지도 조사에서 이 지사는 3월보다 8.8%포인트, 김 지사는 6.0%포인트, 박 시장은 3.3%포인트 뛰어올랐다. 이 지사는 4월10일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이 전 총리(26%)에 이어 2위로 황 전 대표를 다시 제쳤다.
이 밖에 이낙연 전 총리,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 황교안 전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등 총선에서 후보로 나섰거나 선거를 지휘한 다른 대선 후보들은 4·15 총선 결과로 희비가 엇갈렸다. 민주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이 전 총리는 많은 민주당 후보의 선거를 지원하고 여당의 메시지를 다잡는 노릇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정치 1번지’ 종로구 선거에서도 황 전 대표를 상대로 대승을 거둬 차기 대선 후보 1순위의 위상을 재확인했다.
김부겸 전 장관은 코로나19와 관련해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구하고, 큰 고통을 겪은 대구 시민들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대구 수성갑 선거에서 미래통합당 주호영 후보에게 20%포인트 차이로 패배해 새 길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황교안 전 대표는 부적절한 발언, 경쟁자들에 대한 불공정한 공천, 총선 대패에 따른 당대표 사퇴 등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황 전 대표는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기 위해 당분간 정치 활동을 자제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코로나19 사태로 가장 피해가 컸던 대구를 찾아가 의료봉사를 함으로써 오랜만에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러나 국민의당은 안 대표의 봉사활동과 국토 종주 마라톤에도 불구하고 2016년 총선거의 38석에서 3석 안팎으로 쪼그라들었다.
‘안철수’ 국민의당, 38석에서 3석으로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총선 국면에서 광역 시도지사들이 분명한 존재감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총선거나 코로나19 상황에서 현장을 아는 지방정부의 장들이 나서는 건 자연스럽다. 잠재적 대선 후보들이 이런 기회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이재명 지사가 과감한 결정, 신속한 대응, 강한 실행력으로 호감과 지지를 얻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제기된 가정사 문제도 어느 정도 해소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어떻게 보면, 코로나19 사태는 이재명, 박원순, 김경수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총선이 끝나면 다시 국회의 시간이 시작된다. 이 상황에선 이번 총선을 이끈 이낙연 전 총리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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