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확산 사태와 관련된 고발이 검찰에 몰려들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원인으로 지목된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을 상대로 한 것에서부터 방역 대응에 나선 주무 부처 장관들을 고발한 것까지 다양하다. 대부분 정치적 목적으로 낸 고발이다. 검찰의 과도한 권한을 줄이려는 검찰개혁이 진행되는 중에 거꾸로 검찰에 힘을 실어줄지도 모르는 고발장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난무한 고발 가운데 법조인들의 주목을 받은 것은 단연 박원순 서울시장의 고발이었다. 박 시장은 3월1일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과 12개 지파장들을 살인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신천지가 시설 폐쇄 등을 제때 하지 않고, 신도 명단을 허위로 제출한 것은 미필적 고의에 따른 살인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신천지 교인들에 의해 코로나19가 대규모로 확산됐기 때문에 교단 지도자들은 방역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했다. 하지만 당시 신천지 쪽은 협조는커녕 오히려 방역을 방해했다.
박원순 시장까지 살인 혐의로 신천지 고발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의 신천지 신도 1500여 명이 조사를 거부하거나 소재가 파악되지 않았다. 또 서울시가 경기도 과천 예배(2월16일)에 서울 연고자 4800여 명이 참석한 사실을 파악한 뒤 신도들에게 집회 참석 여부를 물었는데, 과천 예배 참석자의 절반이 넘는 2700명이 이를 숨겼다고 한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박 시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살인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경고한 뒤 이를 강행했다.
법조인들은 박 시장의 고발에 곱지 않은 시선을 던졌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그가 종교 탄압 논란을 일으킬 게 뻔한 고발을 강행했기 때문이다. 인권변호사는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이들에 대한 부당한 인권침해에 맞서 싸워야 한다. 더욱이 박 시장은 인권변호사로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구로동맹파업 사건, 우 조교 성희롱 사건 등 현대사에 한 획을 그은 소송에 모두 참여했다. 그런 경력을 높이 산 시민들의 지지로, 그는 최초로 ‘3선 서울시장’이 됐다. 이런 배경을 가진 그가 ‘신천지 지도자들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초심을 버린 행동으로 보였다.
‘미필적 고의’라는 말은 형법 조문에 없기 때문에 재판부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 재판부는 수사기록과 법정에서 피고인이 한 진술 등을 보고 이를 판단한다. 이 때문에 검사나 수사관은 재판에서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받기 위해 최대한 피의자를 추궁하게 된다. 죄책을 느낀 피의자는 검사의 추궁에 시달리다가 자포자기 상태에서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는 자백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피의자의 방어권과 무죄 추정 원칙은 무시된다. 이런 이유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를 금기시하는 법조인도 많다. 검찰 출신의 한 법조인은 “인권변호사라면 미필적 고의란 말은 입에 올려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박 시장도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나중에 신천지 고발의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신천지 고발 직후 이를 정치쇼라고 비판한 야당 정치인들을 향해 “정치평론가들의 한가한 소리”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3월2일 이만희 총회장이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들께 죄송하다. 방역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하자, 박 시장은 다음날 언론 인터뷰에서 “서울시의 고발은 이만희 총회장이나 지도부를 처벌하자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다. (신도들 상태를) 빨리 확인해서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고발 취지가 서울시민의 안전을 위한 것이었음을 강조한 거다.
검찰이 신천지 수사에 나서더라도 지도자들에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를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총회장 등이 교인들에게 방역에 협조하지 말라고 지시했더라도 그것만으로는 고의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사망자가 신천지 교인에 의해 감염됐는지 확인해야 한다. 코로나19 치사율이 메르스나 사스에 비해 높지 않은 것도 고려해야 한다. 치사율이 낮으면 살인죄 적용은 무리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신천지 강제수사(압수수색) 지시를 거부한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추 장관은 2월28일 “보건 당국의 역학조사를 거부할 때는 고발이나 수사 의뢰가 없더라도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에 착수하라고 검찰에 지시했다”는 문자메시지를 기자들에게 보냈다. 당시 신도 명단 제출에 협조하지 않은 신천지를 겨냥한 것이었다.
하지만 대검은 당일 오후 코로나 수사 유의사항을 담은 업무연락을 각급 검찰청에 전달했다. 대검은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에 돌입할 때 반드시 대검과 사전 협의하라’ ‘질병관리본부 등 방역 당국은 방역에 필요한 관련 명단을 확보한 상태이므로 당장은 강제수사가 필요하지 않다’는 등의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추 장관의 지시와는 전혀 상반된 내용이다.
검찰의 몽니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대구지검은 대구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3월3일 신천지 대구교회를 상대로 신청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했다. 검찰은 2월29일 경찰이 긴급하게 신청한 압수수색 영장에 대해서도 ‘교인 명단을 누락한 신천지 쪽의 고의성이 뚜렷하지 않다’는 이유로 반려했다.
추 장관은 검찰의 이런 태도에 강한 불쾌감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법무부 관계자는 “검찰의 태도는 신천지 수사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지기 싫다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국가기관이 공권력이 필요할 때 이를 행사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윤 총장이 신천지에 대한 강제수사에 신중한 것을, 박근혜 정부 때 있었던 ‘구원파 수사 트라우마’ 탓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때 검찰이 대대적으로 시작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구원파 교주)에 대한 수사는 검찰에 엄청난 타격을 입혔다. 당시 김진태 검찰총장은 ‘세월호 참사’ 나흘 만인 2014년 4월20일 인천지검에 특별수사팀을 꾸려 유병언 전 회장 일가의 경영 비리 수사를 지시했다. 검찰은 유 전 회장의 경영 비리(선박 안전을 무시한 회사 운영)가 세월호 참사의 직간접적 원인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 수사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박근혜 정부에서 유 전 회장과 구원파 쪽으로 돌리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당시 김진태 검찰총장이 대검 간부회의에서 “이런 사건에는 ‘돼지머리 수사’가 필요하다”고 발언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수사 대상을 고사상에 올릴 ‘돼지머리’에 비유한 것이다. 국민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희생양’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구원파 수사는 박근혜 정권의 입맛에 딱 맞는 수사였다.
수사는 인천지검 차원을 넘어 검찰 전체가 동원되다시피 했다. 다른 지검에 있는 수사관과 검사들도 파견돼 수사팀 규모가 무려 110여 명에 이르렀다. 심지어 대검 청사에선 외교부, 합동참모본부, 행정안전부, 경찰청, 해양경찰청, 관세청 간부들이 모여 유 전 회장 검거를 위한 유관기관 회의까지 열었다. 이는 청와대 차원의 지시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검찰 손에 기댈 수밖에 없나그러나 검찰은 유 전 회장 검거에 실패했다. 검찰은 그해 5월 유 전 회장의 은신처를 제보받아 급습했지만, 정작 그가 숨어 있던 방은 수색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검찰은 그로부터 두 달쯤 뒤인 7월21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유 전 회장이 이미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어야 했다. 유 전 회장은 이보다 40여 일 전인 6월12일 변사체로 발견됐지만, DNA 감식 결과가 나온 뒤에야 그가 숨진 사실을 알게 됐다.
검찰은 큰 타격을 입었다. 최재경 인천지방검찰청장은 수사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표를 냈다. 김진태 검찰총장도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검찰 고위 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구원파 수사는 불순한 의도로 시작된 수사였다. 검찰권을 정치 목적으로 사용할 경우 얼마나 후유증이 큰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추 장관의 신천지 강제수사 지시도 정치적 의도가 깔렸다고 의심받는다. 검찰이 강제수사에 나선다면 문재인 정부에 비판적인 여론이 신천지로 옮겨갈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장관에 취임하자마자 검찰의 힘을 빼려고 애써온 추 장관이 지금 검찰 수사를 재촉하는 모습은 그 ‘의도’를 의심받기에 딱 좋다.
검찰의 개입은 시간문제일지 모른다. ‘코로나 정국’ 마무리도 검찰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신천지 관련 사건뿐만 아니라 코로나19 사태를 둘러싼 정치적 고발 사건들도 검찰이 처리할 수밖에 없다. 결국 검찰의 시간은 또다시 돌아온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검찰공화국’은 영원한 걸까.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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