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훈련으로 녀석의 습관을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개통령’(한 동물훈련가를 이르는 말)이 TV 프로그램에서 개들의 습관을 며칠 만에 변화시키는 것처럼 드라마틱하지는 않더라도 시간과 끈기를 가지고 반복, 또 반복하면 스텔라(앵무새 이름)의 습관도 변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아무리 양보해서 생각하더라도 앵무새가 개나 고양이보다 지능이 떨어져 보이지 않았으니까.
스텔라는 개보다 확실히 먹는 것을 덜 밝히고 고양이보다 깔끔하다. 물통에 물을 갈아주면 깨끗한 물로 세수부터 한다. 날개 안쪽, 그러니까 인간으로 치면 겨드랑이도 열심히 씻는데 그 모습이 우습기도 하다. (겨드랑이 씻기가 쉽지 않은 신체 구조가 안타까울 뿐이다.) 식탐이 적어서 밥통에 모이를 갈아줄 때 좋다고 덥석 달려드는 법이 없다. 음악을 틀어놓을라치면 늘 함께 노래를 부른다. 이 정도면 ‘교양조류과’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다. 새의 삶에도 나름의 품격, 즉 조격(鳥格)이란 게 있다.
그래서 스텔라가 거실에 있는 나뭇가지에 앉아 줄기와 이파리를 물어뜯을 때마다 녀석을 쫓아냈다. “해피트리 위에 앉지 말라고!” 처음엔 타일렀고 나중엔 욕하면서 수건을 던지기도 했다. 수개월 노력한 끝에, 나무 한 그루가 완전히 말라 죽고 나서야 나는 알았다. 나무랄 걸 나무라야지, 새가 나무 위에 앉는 걸 나무라다니. 그건 자신의 유전자 염기 배열을 바꾸라고 요구하는 것과 다름없다. 유전자를 탓할 수는 없다. 우리는 스텔라와 함께 사는 방법을 터득했다. 스텔라가 새장 밖을 날아다닐 때는 해피트리 위에 보자기를 덮어씌웠다. 새는 하늘거리는 천 위에 앉거나 천을 쪼아대는 법이 없다. 이 역시 유전 기질이니까.
사람도 그렇다. 유전 기질을 비난할 수 없다. 피부색 등 외모와 타고난 체질을 비하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자유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주어진 것이니까. 그런 ‘다름’은 존중받아야 한다. 검정 머리를 가진 아이에게 왜 금발이 아니냐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21세기 인간사회의 상식이리라. 타고난 ‘다름’에 원하는 색깔을 입혀서 깎아내리고 조롱하는 일은 ‘격’ 떨어지는 일이다.
박노자 교수(노르웨이 오슬로대학 한국학)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유럽에 인종주의가 다시 퍼지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 네덜란드에 간 한국인 연구자들이 “저기 코로나가 온다”라는 말을 들었다거나, 기내 화장실에 한국말로 ‘승무원 전용 화장실’이란 안내문이 붙어 있다는 것이다. 에이 설마, 유럽 지성인들의 수준이 그렇지 않겠지. 일부 삐딱한 사람이 언론 또는 박 교수 눈에 비친 거겠지, 라고 생각하려 한다. 그들의 인격이 ‘조격’만 못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발열 증세가 있는 중국 국적의 여성을 진료하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지난 1월 중국 사람들 모임이 있어 다녀왔다고 했다. 모임 뒤 13일째 증상이 있는 상태여서 선별진료소로 보내야 했다. 그 여성이 코로나19에 걸렸을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환자를 검사 장소로 보내고 다른 의료진을 투입하고 환자의 검체를 기관에 보내는 과정은 너무나 번거로웠다. 만약 양성으로 보고되면 그 사태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나와 내 가족은 2주간 꼼짝 못하고 자가격리 대상이 된다. 나뿐이랴, 오늘 환자와 만난 의료진과 그 가족은 몇 명인가. 내가 집에 가는 길에 식당에 들렀다면 그 식당은 당분간 영업을 못한다. 생각만 해도 아득해 나도 모르게 여성을 쏘아봤나보다. 옆에 있던 딸이 추궁하듯 엄마에게 쏘아붙였다. “그러게 거길 왜 가? 평생 안 다니던 데를 하필 이 시국에 가냐고!”
여성은 코로나19 검사에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아마 검사 결과가 나오는 하루 동안 감당한 불안과 따가운 시선에 적잖은 마음고생을 했을 것이다. ‘병에 걸린 사람’들의 심정을 옆에서 봐서 안다. 병에 걸렸다는 것 자체로 이미 충분히 아프고, 특히 전염병에 걸렸다면 충분히 타인의 시선을 몸 깊이 받아 삼킨 상태다. 그러니까 아프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따가운 말을 던지는 건 안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왜 ○○○를 먹냐고!’ ‘왜 그런 곳을 다녔냐고!’ ‘왜 생활수칙을 안 지켰냐고!’ 등의 말들은 타인이 하기 전에 스스로 수도 없이 되뇌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아플 땐 그저 위로와 격려가 제일이다. 아산과 진천, 이천 주민들이 보여준 품격 있는 모습처럼 말이다.
2월17일 눈 내리는 날, 유전자가 내리는 봄 생각눈이 내린다. 입춘이 지난 지 언제인데, 이제야 눈다운 눈을 본다. 시기마다 절기마다 정해진 모습이 있거늘, 올겨울은 ‘자연’이 반칙하는 느낌이다. 살을 에는 듯한 찬 바람 겪어본 일 없이 엄동설한이 지나고, 구정 입춘을 지나 봄맞이 준비를 하려는데 한파가 몰아닥치고 눈이 펄펄 내린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은 바람 따라 살랑살랑 춤추니 어디로 떨어질지 눈송이 자신도 모른다. 도로 한복판에 떨어지면 1초 내로 녹아버리고, 나뭇잎이나 주차된 자동차 위로 떨어지면 앞서 떨어진 눈송이와 한데 섞여 눈꽃의 삶을 즐긴다. 탄생도 죽음도 모두 팔자인 것이 눈꽃의 삶이다.
봄기운이 완연해지면 또 다른 것이 바람을 타고 내릴 것이다. H₂O가 아닌 훨씬 더 복잡한 분자로 구성된 것인데, 바로 유전자다. 송홧가루는 소나무 유전자를 싣고 바람을 타고 내리고, 민들레씨도 바람을 타고 날아다닌다. 참나무, 밤나무, 은행나무 등도 바람에 유전자를 실려보낸다. 이들 나무의 꽃을 풍매화라고 한다. 이들의 운명도 눈과 비슷하다. 착륙 지점을 모른 채 출발해 자신의 운명을 그저 바람과 지형에 맡길 뿐이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유전자는 발현도 못해보고 자연으로 돌아가고, 일부는 다시 생장의 길로 접어들어 이듬해 봄 또 다른 유전자를 대기로 흩뜨릴 것이다. 유전자에 형광물질을 입혀 눈으로 볼 수 있다면, 봄 풍경은 색색의 유전물질로 가득한 ‘유전자 은하수’가 흐르는 하늘일 것이다. 봄은 유전자가 내리는 계절이다.
유전자가 물 분자보다 복잡하지만, 실체는 놀랍도록 단순하다. 네 가지 염기 물질(ACGT, 단 RNA는 티민(T) 대신 우라실(U)을 구성분으로 가짐)이 어떻게 배열되느냐가 송홧가루와 민들레씨의 차이일뿐더러, 멀리는 인간과의 차이이기도 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적 불안의 핵심으로 작용하지만, 바이러스 역시 유전자 덩어리다. 코로나바이러스 유전자는 염기 물질이 하나로 이어져 RNA의 단일 줄기를 형성한다. 동그란 몸체에 돌기가 삐죽삐죽 튀어나와 마치 왕관처럼 생겼는데, 이것을 지시하는 유전자 성분은 송홧가루나 인간이나 바이러스나 동일하다.
유전자를 가진 것들은 자손을 널리 퍼뜨리려는 원초적 욕망을 공유한다. 그리하여 생명의 정의 중에는 스스로를 복제하는 유전자가 있다는 것도 포함된다. 바이러스를 생명체로 보는 것에는 논란이 있지만, 유전자 복제를 한다는 생명체의 중요한 특징이 있음은 분명하다. 다만 바이러스는 단순한 몸을 가지고 있어 세포 대사를 하지 못한다. 반드시 다른 살아 있는 세포 안에 들어가야만 살 수 있다.
바이러스 유전자도 살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을 뿐이다. 다만 욕망에 행운이 깃들어 그들은 크게 번성할 수 있었는데, 바로 숙주의 기침과 콧물이었다. 숙주로서는 이물질을 배출하려는 생리 기제일 뿐이지만, 기침과 콧물은 바이러스가 다른 숙주로 전파되는 유용한 방법이 되었다. 스스로 움직일 줄 모르는 바이러스는 언제나 이동을 위해 다른 생명체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런 행운이 주어졌을 때 바이러스는 인간세계에서 뉴스가 될 수 있었다.
태아 소두증을 유발해 임신부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지카바이러스는 모기를 타고 돌아다녔고, ‘조류독감’으로 불리는 바이러스는 철새를 타고 대륙을 횡단했다. 바이러스는 아니지만 다른 미생물을 좀더 보자. 말라리아원충 역시 모기가 바이러스 매개 숙주였고, 가을철 열성 질환인 쓰쓰가무시병은 등줄쥐에 서식하는 진드기 유충을 타고 다니다 유충이 사람을 물면 사람 몸속으로 넘어왔다. 카우보이처럼 뭘 타고 다니다니, 하여간 행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병을 일으키는 질환 몇 개를 나열하다보면 세상이 유전자 전쟁터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유전자 활동 범위는 ‘병원 미생물’ 그 이상이다. 이미 우리의 생존 자체가 유전자 활력장 안에 있어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피부와 장내에 있는 미생물 수는 100조 개로,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 수의 열 배나 된다. 이들 모두 자기 자리에서 ‘살고자’ 노력하고, 우리 생명은 그들의 노고 위에 얹혀 있다. 배 속 대장균은 내가 먹은 음식을 먹고 살지만, 그들이 섬유소를 분해하고 몇 가지 비타민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나는 살 수 없다. 대장균 유전자의 욕망 덕분이다. 코리네균은 겨드랑이와 발가락 사이 같은 습한 곳에 살면서 병을 일으키는 곰팡이와 경쟁한다. 피부와 구강과 대장에 서식하는 세균들의 유전적 욕망이 없으면 인간 유전자의 삶도 위태로워진다. 미생물은 사람의 건강을 위협하기 이전에 함께 공생하고, 우리는 모두 지구라는 행성에 얹혀살고 있다. 각자 유전적 욕망을 가지고서 말이다.
만약 유전자에 형광물질을 입혀 우리가 볼 수 있다고 치자. 봄 하늘만 ‘유전자 은하수’로 뒤덮이는 것이 아니다. 24시간 한순간도 쉼 없이 우리 생명을 이루는 몸 자체가 서울시청 앞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다.
환자의 퇴원 날짜를 잡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인플루엔자바이러스(독감) 폐렴으로 고생하던 분이었다. 일주일 이상 악화되는 폐렴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느라 애탔는데, 며칠 전부터 뚜렷한 호전 소견을 보이다 드디어 오늘 퇴원 날짜를 잡았다. 다른 종류의 바이러스성 폐렴도 아마 대체로 비슷할 것이다. 흉부 CT(컴퓨터단층촬영)상 젖빛 유리 음영이 폐 한쪽 구석에 생기더니 점차 확산된다. 맑은 하늘에 얇게 구름이 끼기 시작하더니 점점 두꺼운 구름 덩어리가 퍼지면서 날이 어두워지는 것처럼. 환자 얼굴도 어두워지고 숨도 차오른다. 환자는 폐렴이 진행되면서 비강(코안) 캐뉼라(체내 삽입 관)로 공급하던 산소로는 모자라서 마스크로 산소를 공급해야 했다. 며칠은 식사도 중단해야 했다. 지금은 많이 회복돼 이틀 전 식사도 시작했고, 오늘 아침에는 산소 공급도 중단했다. 입원한 지 19일째다.
요즘 언론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코로나19에 의한 폐렴도 비슷한 경과를 보일 것이다. 물론 호전되지 않아 사망에 이르는 환자도 있을 텐데,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보면 코로나19의 사망률이 인플루엔자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일 것 같다. 사망자 대부분은 고령층이고 당뇨나 만성 폐질환 등 기저질환이 있는 분들일 것이다. 올해는 유난히 독감에 폐렴이 동반되는 경우를 많이 봤다. 개인적인 경험이라 통계적인 의미는 없지만, 지난 10년간 봉직 생활을 돌아보면 올해가 독감 폐렴이 가장 많았던 해다. (내가 본 환자 중) 얼추 세봐도 지난해 겨울 독감 폐렴으로 돌아가신 분이 다섯 명이 넘는다.
환자의 병세가 악화됐던 일주일 전의 일이다. 보호자에게 환자 상태가 악화될 가능성을 설명해야 할 시기였다. 나는 점점 어두워지는 흉부 사진을 열거해 보여주면서 설명했다. 환자 몸속 인플루엔자바이러스가 좀처럼 잡히지 않고, 80대 후반의 고령이고 심장 질환이 있다는 점이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음을 얘기했다.
그러고 나서 퇴근해, 운전 중이었다. 정말 우연히, 1990년대 활동하던 ‘푸른하늘’ 유영석의 노래를 듣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많이 들었던지라 20년 만에 듣는 노래임에도 기억이 생생해 목청껏 따라 불렀다. 익숙한 멜로디에 20년 동안 묵혀 두었던 가사가 방언처럼 터져나왔다. “이 어둔 밤, 이 어둔 밤, 이 어둔 하늘 아래서 그댈 떠나가야 한다면, 나의 슬픈 마음도…”를 부르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울컥 뭔가가 올라왔다. 물론 스스로 웬 청승이냐며 감정을 추슬렀지만, 하마터면 울 뻔했다.
이 어두운 엑스레이를 내가 왜 보고 있어야 하나. 뭐, 이런 감정이랄까. 스마트폰을 열면 포털 뉴스의 상위 순위는 바이러스 이야기고, TV를 틀면 무시무시한 바이러스의 위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시절. 생각해보니, 나는 상시로 이런 위험에 노출된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기자들이 되도록 자극적인 단어를 선택하고 싶어 하는 것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나 ‘비상’ ‘재앙’ ‘우왕좌왕’ 등 거슬리는 단어가 너무 많다. 내가 이런 격앙된 단어를 특별히 더 싫어하는 이유가 있었다. 만일 이런 보도들이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면 나처럼 바이러스 환자를 보는 사람은 어떻게 사냐, 이런 항변이 올라오는 것이다. 이 ‘어두운 하늘 아래서’ 말이다.
바이러스 질환에 대항하는 데 쓰는 군사 용어도 썩 내키지 않는다. 어떤 지도자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겠다는 표현을 썼다. ‘코로나19 드론으로 잡는다’는 제목의 기사도 나왔다(말이 되나?). 환자가 발생하면 적국의 부대가 국경을 밀고 넘어온 것 같은 표현을 쓰기도 한다. 방역이 ‘뚫렸다’ 또는 ‘구멍이 생겼다’. 그냥 환자 몇 명이 발생했다고 해도 될 텐데 말이다.
난 이번 사태에서 정부와 질병관리본부의 대처가 아주 훌륭하다고 본다. 일선 진료기관의 선별진료소 운영도 아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선에서 고생하는 의료인들에게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변종 바이러스도 수많은 바이러스 중 하나일 뿐이다.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건 불가능할지 몰라도, 바이러스가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있지 않도록 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바이러스가 몸속에 들어오지 않도록 개인위생 수칙을 지키면 된다. 그리고 바이러스가 몸속에 들어간 사람을 보면 회복될 수 있도록 조용히 응원하는 것이다. 그래야 스스로 증상이 의심될 때 손을 번쩍 들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따가운 시선’을 받는 분위기에선 자신의 몸 상태를 숨기는 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아프니까 나를 좀 봐달라’는 요청을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사회가 더 빨리 바이러스 확산을 멈출 수 있다. 2차, 3차 감염자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지역사회 감염이 진행될지 모르겠다. 이런 때일수록 더 차분해졌으면 한다.
오늘이 우수(雨水)라고 한다. 눈이 녹아서 비나 물이 된다는, 날씨가 풀리는 시기를 표현하는 절기다. 그래서인지 며칠 몰아쳤던 한파가 한풀 꺾인 것 같다. 이대로 쭉 날이 풀렸으면 좋겠다. 추위는 몸을 움츠러들게 하는데, 날만 풀리면 몸뿐 아니라 마음도 활짝 펴질 것 같다. 한겨울 바이러스 소식에 움츠러든 마음이 오늘 아침 뉴스에 더욱 움츠러든 탓이다.
한 여성이 병든 몸으로 여기저기 다녔고, 지역사회 감염자가 대구 지역만 13명 쏟아져 나왔다. 병원 쪽에서도 화들짝 놀랐다. 닷새째 감염자가 나오지 않아 이제 소강 국면인가 싶었는데, 이틀 만에 확진자가 15명 늘어났다. 질병관리본부에서 달라진 지침도 내려왔다. 해외여행이나 확진자와의 접촉이 없어도 폐렴이면 모두 다 코로나19 검사를 하고, 호흡기 질환자는 별도 공간에서 진료하라는 것이다.
병원에서 회의가 있다고 호출이 왔다. 내일부터 우리 병원은 호흡기 증상이 있는 환자는 모두 선별진료소에서 진료하기로 결정했다. 지역사회 감염에 대응하는 수위를 한층 높이는 것이다. 감염 감시 활동이 2주째 계속돼 이미 지쳐버린 병원 직원들에게는 정말 슬프고 암울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방역 당국도 병원도 노력해야 하지만, 시민들의 에티켓도 정말 중요한 시기다. 그리고 하나 더 꼭 바라는 게 있다. 이제 우수 아닌가. 하루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다.
따뜻한 날씨를 더욱 간절히 바라게 되는 건, 바이러스가 더위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세균과는 많이 다르다. 바이러스에 비하면 세균은 수백, 수천 배의 덩치를 가지고 있다. 바이러스를 일인 회사에 비유한다면, 세균은 수백 명의 근로자가 일하는 중소기업 정도 될 것 같다.
세균은 각종 물질대사가 가능하다. 무더운 여름날, 우유를 실온에 두면 금세 맛이 변해버린다. 세균이 먼저 먹어버린 탓이다. 세균은 음식을 먹고 대사해 배설할 줄 한다. ‘음식이 상했네’ 이 말은 ‘어떤 놈(세균)이 먼저 먹었네’라는 뜻이다. 상한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났다면 원인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세균이다. 음식이 여름에 잘 상하는 것은 물질대사에 능한 세균이 활동하기에는 덥고 습한 날씨가 좋기 때문이다.
반면에 바이러스는 이러한 물질대사가 안 되는 단순한 유전물질 덩어리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스스로 먹어치울 능력이 없다. 반드시 살아 있는 동물이나 식물의 세포 안에서만 살 수 있다. 따라서 기침할 때 비말과 함께 튀어나온 바이러스가 맛있는 음식 위에 떨어졌다고 해도 바이러스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 오히려 살아 있는 세포 바깥으로 나왔으므로 또 다른 숙주를 찾지 못하면 죽고 만다. 이때 온도가 높을수록 소멸하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더운 여름에는 전염이 더 어렵고 반대로 온도가 낮은 겨울에는 세포 밖에서 생존 시간이 길기 때문에 전염이 더 잘된다. 구제역 바이러스가 돼지 사료 차에 묻어 다른 농장까지 이동할 수 있는 것은 한겨울의 추운 날씨 덕분이다. 생각해보시라. 여름에 구제역 바이러스가 출몰해 돼지가 몰살당했다는 뉴스는 들어본 적 없지 않은가. 겨울철에 감기 등 바이러스성 질환이 더 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바이러스 종류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그렇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라 누구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겠지만, 날씨가 따뜻해지면 확산이 느려질 거라는 점은 분명하다.
봄이여, 빨리 오시라. 우수 아침 확진자가 대거 발생했다는 소식에 마음이 우수(憂愁)에 잠긴 사람들을 위하여 따뜻한 봄바람이여 빨리 오시라.
2월20일 선별진료소병원 밖에 천막으로 된 진료 공간이 몇 개 더 세워졌고, 호흡기 증상 환자들은 선별진료소에서 진료받기 시작했다. 의료진도 찬 바람 맞으며 환자 접수와 진료를 해야 하니, 환자도 의사도 정말 고생이다. 호흡기 증상 환자는 선별진료소에서 1차 진료를 하기 때문에 건물 안 로비와 진료실에 환자 수가 줄었다.
선별진료소에는 코로나19 검사 수가 크게 늘었다. 지역사회 감염이 시작됐다는 소식에 불안이 확산되니, 지금 내가 앓는 감기 증상이 코로나19 때문인지 일반 감기 증상 때문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을 ‘정리’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역학상 인천에서 감염자는 아직 없어 코로나19로 진단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무작정 사람들을 돌려보내기도 어려운 일이다.
직장에서 검사 독촉을 받고 오신 분도 여럿 있었다. 이런 식이면 검사량을 감당할 수 없을 듯싶기도 하다. 질병관리본부의 권고대로 가벼운 감기 증상 환자는 집에서 쉬는 것이 제일인데, 염려는 끊임없이 환자들을 병원으로 재촉한다. 오늘 하루 수십 건의 검사를 하겠지만, 그중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올까?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만일 확진자가 선별진료소에서 걸러지지 않고 병원 내에서 진료받을 경우 병원 전체가 마비되니 작은 가능성만으로도 선별진료소로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의심환자가 응급실에서 진료만 받아도 해당 응급실은 폐쇄되고 환자는 바이러스 검사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만일 코로나19 검사 결과가 양성이 나와 확진자로 분류되면 환자의 동선에서 일하던 모든 사람이 자가격리 조처된다. 건물이야 소독하면 된다고 치더라도 사람이 일을 못하니 병원 문을 닫아야 한다. 그럼 치료받아야 하는 다른 질환 환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환자가 집단 발생하는 대구와 경북의 병원 상태는 안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전국에 우리 병원처럼 선별진료소를 운영하는 곳이 549곳이라고 하니, 부디 노력이 열매를 맺어 유행 단계에 이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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