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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노조 와해 사건이 남긴 것들

삼성 노조 와해 사건이 남긴 과제
등록 2020-03-14 14:09 수정 2020-05-06 15:29
2019년 12월17일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2019년 12월17일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문: 협력사 노조 설립에 대해 아시나요?
답: 언론을 통해 들었습니다.

문: 노조 현황을 아시나요?
답: 금속노조 산하라는 것만 압니다.

문: 조합원 수나 몇 개 센터가 노조에 가입했는지 아시나요?
답: 정확하게 모릅니다.

문: 노조와 관련해 보고받은 사실이 있습니까?
답: 없습니다.

2013년 10월11일 박상범 삼성전자서비스 당시 대표이사가 고용노동부 중부지방고용노동청 경기지청에서 조사받은 내용을 삼성전자 인사팀이 정리한 것이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소속 엔지니어들은 2013년 7월24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를 결성했다. 노조는 삼성전자서비스·협력사 관계자들을 탈퇴 회유와 단체교섭 지연·해태 등에 대해 부당노동행위로 고발했고, 이에 따라 박 대표이사가 조사받게 된 것이다.

<한겨레21>이 지난 2월 입수한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 1심 재판기록과 판결문을 보면, 박 대표이사가 한 답변 가운데 ‘사실’인 것은 하나도 없다. 당시 삼성전자서비스는 물론, 모회사인 삼성전자, 그룹 미래전략실까지 노조 현황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미리 세워둔 ‘서비스 안정화’ 같은 전략을 바탕으로 움직였고, 조합원을 미행하거나 가족관계·이혼여부·재산상태도 파악하고 있었다. 삼성은 협력업체를 폐업시키고, 조합원을 표적감사하고, 단체교섭을 미루는 방식으로 노조를 탄압했고 조합원 두 명이 목숨을 끊었다.

부당노동행위 손 놓은 고용부·검찰

당시 부당노동행위를 막는 방법은 고용노동부와 검찰의 적극적인 수사였다. 2019년 12월 1심 재판장이 이 사건 선고 공판에서 “피고인들이 부인하시지만 증거가 너무 명백했다”고 말했던 것처럼, 부당노동행위 수사에서 필요한 것은 강제수사를 통한 증거 확보였지만 아무것도 이뤄진 게 없었다. 여러 차례 기회가 있었음에도 검찰과 고용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박 대표이사가 조사받고 사흘 뒤인 2013년 10월14일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2012년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을 공개한다. 이는 2018년 4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돼 이번 수사의 단초가 됐던 삼성그룹 노사전략 문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문건에는 삼성에버랜드에서 결성된 금속노조 삼성지회 노조 와해 내용이 포함됐는데, 고용부는 강제수사 없이 2014년 말 이 문건에 대해 “작성하다 중단했던 문건을 누군가 유출해 수정한 것”이라는 삼성의 주장을 받아들여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2014년 1월23일 에버랜드 부당해고 관련 행정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이 이 문건을 “삼성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음에도 검찰과 고용부는 추가 수사를 하지 않았다.

고용부는 오히려 삼성 관계자를 불러 달래는 데 그쳤다. 삼성전자 내부 문건을 보면, 2013년 11월8일 삼성전자 인사팀 박아무개 변호사(고용부 사무관 출신), 삼성전자서비스 최아무개 상무는 고용부 노사관계지원과장과 금속노조 담당 사무관을 면담한다. 이 면담을 박 변호사가 정리한 내용을 보면 “지금까지 문제가 없던 초일류 기업에서 최근 지속적인 노사 분쟁이 생겨 고용부 차원에서 당부할 사항이 있어 면담을 요청했다”며 “표적감사·지역조정은 문건처럼 실행된 부당노동행위로 오해하기 좋으니 가급적 중단하기를 바란다”고 고용부가 삼성에 ‘당부’한 것으로 나타난다. 언급된 문건은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인 것으로 보이는데, “문건처럼 실행된 것”으로 보이면 철저한 수사를 했어야 정상이지만 “그러지 말라”고 당부한 셈이다.

2014년 1월24일 박 변호사가 작성한 고용부 부당노동행위 수사 동향 문건에도 “지방(고용노동)청에서 고용부 본부에 큰 방침은 정해달라고 요청했는데 담당 과장이 머뭇거리고 있는 입장”이라며 “표적감사와 관련 압수수색까지 생각하고 있었지만, 2월 말까지 수사를 마무리하라는 지시에 (압수수색을) 접는 분위기”라고 적었다. 삼성이 구체적인 수사 진행 상황을 아는 것도 흥미롭지만, 내용도 매우 정확했다. 실제 2014년 1월28일 고용부 노사관계법제과의 ‘삼성전자서비스 고소고발 관련 압수수색 검토’ 문건에는 “표적감사 근거 자료인 (수리 작업) 오류 데이터를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에서 제공하였는바, 의도적으로 조합원에게 불리하게 제공됐는지 의심된다는 수사 감독관의 의견에 원청 관할인 경기지청이 전산 데이터 원본을 확인하기 위해 압수수색 필요”라고 적혀 있었지만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한겨레21>은 당시 노사관계법제과장인 김아무개씨에게 압수수색을 실행하지 않은 이유와 2월 말까지 수사를 마무리하라는 지시가 이뤄진 배경을 물었으나, 김씨는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기억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지형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이 1월9일 서울 충정로 법무법인 지평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김지형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이 1월9일 서울 충정로 법무법인 지평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원청은 당연히 ‘사용자’

부당노동행위를 포함한 노동관계법 위반 수사는 보통 검찰 지휘를 받아 특별사법경찰관인 고용부 근로감독관이 수행한다. 그러나 근로감독관은 노사분쟁을 예방·해결하는 행정적인 역할과, 노동관계법 위반 여부를 수사하는 사법적인 역할 두 가지를 동시에 수행하는 이중적인 지위 때문에 제대로 수사할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노동관계법 위반을 시정하면 형사처벌 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중재’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횡령 피의자가 빼돌린 돈을 변제했다고 처벌받지 않는 경우는 없지만, 노동관계법 근로감독 등에선 이런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최근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직접수사가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전적으로 근로감독관이 수행하는 노동관계법 수사가 제대로 될지 우려된다.

뒤늦게, 우연한 기회로 시작된 부당노동행위 수사와 이에 따른 법원 판결은 대상이 삼성이어서만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19년 12월 서울중앙지법은 삼성전자서비스 지회에 대한 와해 전략과 실행이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삼성전자,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에 이르기까지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이뤄졌다고 판단하고, 삼성 관련자 26명에게 유죄 판결했다. 이 판결은 원·하청 고용관계에서 원청 사용자도 하청업체 노조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첫 판결이었다. 원청 경영진도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사용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아웃소싱을 비롯한 간접고용 원·하청 노동관계가 만연해졌다. 2019년 기준 300명 이상 사업장의 간접고용 노동자 비율은 18.1%, 1천 명 이상 사업장의 비율은 20.9%로 나타난다.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노조를 결성해 자신들의 노동조건을 향상하기 위해 교섭하지만, 계약 기간이 짧고 회사 운영을 원청이 주는 용역·도급비에 의존하는 하청 사용자는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제대로 교섭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 1심 재판은 원청 사용자도 ‘부당노동행위의 주체’로서 사용자 책임을 진다는 점을 확인한 수준이지만, 노동법학계를 중심으로 이를 더 넓게 해석해 노조법상 사용자의 또 다른 의무인 ‘단체교섭 의무’도 져야 한다는 취지로 확장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원청 사용자에게 ‘공동사용자’ 의무를 지게 한다면 하청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극단적인 투쟁을 벌일 가능성도 낮아지고, 이 사건에서처럼 경찰이 거간꾼으로 등장해 이득을 챙기는 일도, 노조의 민주성을 해치는 방식인 ‘블라인드 교섭’도 없을 것이다.

피해자를 특정하지 않은 사과

이번 사건에서 삼성이 침해한 것은 노동자들의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삼권(노조 와해), 사생활의 자유(노조 조합원 감시·미행), 표현의 자유(익명게시판 사찰), 사상·정치활동의 자유(연말정산 기부금 내역 사찰) 등 수없이 많다. 그러나 삼성은 2019년 12월 노조 와해 1심 판결이 난 뒤 “노사문제로 인해 많은 분들께 걱정과 실망을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하다”며 “앞으로는 임직원 존중의 정신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이고 건강한 노사문화를 정립해나가겠다”는 네 줄짜리 사과를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명의로 내는 데 그쳤다. ‘비노조 경영’ 폐기 선언도 없었고, 사과의 대상을 ‘많은 분’으로 표현했을 뿐 실질적인 피해를 당한 노동조합과 조합원을 특정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자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3월11일, 노동관계법 위반 요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데 대한 반성과 사과, 재발 방지안을 노사가 소통해 만들 것이라는 약속, 더는 무노조 경영 방침이 없을 것이라는 선언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직접 표명하라고 권고했다.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을 맡은 서울고법 재판부가 이 부회장에게 주문한 것으로, 준법감시위의 활동이 이 부회장의 형량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인 상황이다.

삼성에 사과란 무엇일까? 삼성이 그동안 이미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해 사과하고 개선안을 내놓은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에버랜드 편법 승계, 삼성 비자금 사건 등에서도 사과 뜻을 밝혔다. 그럼에도 불법과 부정이 계속됐다. 심지어 2018년 5월 이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건 재판을, 삼성전자가 노조 와해 사건 수사를 받는 중에도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 사건 관련 증거인멸이 벌어졌다.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임직원들에게 실형을 선고하며 “부하 직원들이 상사 지시에 적법과 불법을 따지지 않고,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고, 그 지시를 맹목적으로 수행하는 문화라면 과연 그것이 세계적 기업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해나가는 데 바람직한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고 판시했다.

지금 필요한 건 ‘과거와의 단절’

다시 감옥에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이 부회장은 조만간 권고를 받아들여 사과할 것이고 재발 방지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대책을 말하기 앞서 삼성에 필요한 것은 과거와의 단절이다. 수많은 희생을 낳았던 삼성의 비노조 전략은 폐기돼야 한다. 또한 사건에 연루된 임원들에게 삼성 내부에서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아직도 피고인 대다수가 현직이다. 노조를 만들고 가입했다는 이유로 온갖 혐의를 붙여 해고됐던 이들에 견주면 그 자체로 불공정하다. 또한 삼성 내부에서 생겨나고 있는 노조의 권리, 더 나아가 노동자들의 권리가 온전히 보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최근 생겨난 노조에 이렇다 할 부당노동행위는 없었다고 하나, 이런 모습이 이 부회장의 재판이 끝난 이후에도 지속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위해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상황은 더이상 없어야 한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제1301호부터 이번호까지 4회에 걸쳐 이어온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1심 재판기록’ 보도를 일단락 짓습니다. 하지만 <한겨레21>은 미처 입수하지 못한 재판기록을 추가 확보하고, 항소심 재판 과정이나 결과 등을 이후에도 계속 깊이 있게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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