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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천국의 공기

하는 짓이 ‘스모그스러운’ 베이징에서 사는 방법
등록 2019-05-15 12:40 수정 2020-05-03 04:29
국제회의가 열리면 맑아지기도 하지만, 평소 중국 베이징 날씨는 징그럽게 스멀거린다. 연합뉴스

국제회의가 열리면 맑아지기도 하지만, 평소 중국 베이징 날씨는 징그럽게 스멀거린다. 연합뉴스

<font size="4"><font color="#008ABD">2011년 11월5일 천국의 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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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비가 내린다. 중국 베이징에 살면서부터 비 오는 날이 가장 좋다. 먼지가 안 날리기 때문이다. 요즘 베이징 공기는 가히 살인적이라 할 만큼 위험한 수준이다. 하늘이 파란색이라는 건 이미 망각된 지 오래. 하늘이 파랬던 시절이 있었나?

며칠 전 신문에서 본 웃긴 이야기 한 토막. 하지만 이것은 지어낸 유머가 아니라 실화다.

탄광으로 유명한 지역, 산시성이 고향인 사람이 어느 날 베이징에 놀러 왔다. “베이징은 과연 수도답군요. 이렇게 공기가 좋을 줄이야. 숨 쉬는 게 아주 편해요. 당신들이 정말 부러워요, 이렇게 공기 좋은 베이징에 살아서.”

중국에서 가장 공기가 나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동네가 바로 산시성이다. 탄광이 많아서 1년 내내 하늘이 지구 멸망 직전의 잿빛인데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탄가루와 먼지로 폐병 환자가 가장 많다는 지역이다.

베이징에 사는 나는 이 ‘미친 공기’ 때문에 죽을 거 같은데 그보다 더 공기가 안 좋은 산시성 사람에게 베이징은 공기의 천국이 될 수 있다는 현실. 참 슬픈 ‘중국적’ 현실이다.

해발 5천m 이상에서 나오는 ‘옥수’인 티베트 설산 물만 마시고 산다는 ‘중난하이’(중국 국가주석과 고위 관료들이 사는 곳) 사람들도 이 ‘천국의 공기’는 피할 수 없겠지?

<font size="4"><font color="#008ABD">2016년 12월18일 스모그 황금연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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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색경보. 공산당보다 더 무서운 ‘그놈’이 습격했다. 올가을 가장 강력한 놈이라고 한다. 스모그! 중국어로는 우마이(雾霾). 한국에서는 초미세먼지라고 하나? 암튼 이름 부르기도 소름 끼치고 징그러운 놈이다.

지난 금요일 저녁 8시부터 다음 주 21일까지, 베이징에 사는 모든 사람이 숨 쉴 수 있을 정도의 입만 벌린 채 ‘닥치고’ 살라는 메시지가 왔다. 안 그러면 ‘당신 생명을 책임질 수 없다’고. 악질도 이런 악질이 있나. 위험 경고는 했으니 죽든 말든 당신 책임이라는 건가.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임시 휴교령도 내려졌다. 주말을 끼면 무려 닷새간의 황금연휴다. 철부지 아이들은 휴교 소식에 ‘스모그 천국’ 베이징이 너무 좋다고 덩실덩실 춤까지 춘다. 학교가 얼마나 지옥 같은 곳이면 숨 쉬기도 힘든 이 공기가 더 좋다고 저 난리 블루스를 추며 깔깔거리는 것일까.

아이들은 자기 지옥에서 해방됐지만, 정작 나의 지옥 생활은 지금부터 시작. 삼시 세끼를 꼼짝없이 집에서 해결해야 하는 게 가장 큰 난제다. 손가락만 누르면 언제 어디서든 달려오는 ‘오토바이 아저씨’(배달음식)를 부르려 했더니 “우리는 살려고 밖에도 안 나가면서 어떻게 배달 아저씨에게 이 더러운 공기를 마시게 하느냐”며 “엄마는 정말 자기 목숨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난데없이 나를 살인자 취급하는 딸아이.

“그럼, 다 같이 굶자. 앉아서 숙제나 해!”

덕분에 세끼 중 한 끼는 라면, 한 끼는 볶음밥으로 해결하고, 아침은 대충 거르기. 어제 하루 세끼를 이렇게 ‘덜 이기적’으로 해결하니, 오늘 아침부터 당장 ‘눈에 띄는’ 효과가 생겼다.

“엄마, 아저씨들도 돈 벌어야지. 우리가 시켜먹어야 돈 벌 거 아니냐. 맛난 것 좀 먹자.”

“어떻게 네 목숨만 생각하니! 아저씨들의 생명권도 존중해야지. 이 스모그 다 마시면 죽어! 오늘도 남은 찬밥 볶아서 라면이나 먹자. 이기적으로 살면 안 되지!”

“란서우샹구(蓝瘦香菇)!”(‘괴로워서 울고 싶다’는 뜻)라고 절규하며 쓰러지는 딸.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절대로 자기 목숨만 생각하며 이기적으로 살면 안 된다며?

우리는 이렇게 하늘이 준 ‘선물’, 스모그 황금연휴를 아주 ‘이타적’이고 ‘경제적으로’ 잘 보내고 있다. 이러다 내일쯤 폭동이 일어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스모그는 하야하라, 하야하라, 하야하라!”

<font size="4"><font color="#008ABD">2016년 12월21일 ‘개 같은, 매독 같은’ 스모그 공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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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스모그, ‘매독 같은’ 스모그가 쳐들어온 지도 거의 일주일째. 지옥의 묵시록, 이건 분명 묵시록적인 재앙이다. 지금 베이징에 사는 사람은 모두 지옥에 살고 있다. 눈에 보이는 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곳 베이징이다.

일주일째 ‘집’에 갇히니 한숨이 쌓여 우울이 되고, 우울이 쌓여 분노가 된다. 분노의 희생양은 휴교령이 떨어져 종일 집에서 뒹구는 아이들. 공기오염 지수를 넘어서는 엄마의 짜증과 ‘쥐 잡듯 닦달하는’ 분노 표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휴교’가 기쁜 두 철딱서니.

휴교령이 내린 학교에서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공부하라’는 지령이 떨어진다. “수업은 중단돼도 학업은 중단하지 않는다”는 구호를 시작으로 자택 학습과 숙제 진행 상황을 보고하라고 ‘지랄 독촉’을 한다. 매일 오전 8시면 모든 부모가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학교 단체대화방에 “○○○ 학생은 이미 책상으로 등교해 공부 시작”이라는 보고 구령을 일제히 발송.

“우리 집 아이는 아직도 처자고 있고 종일 뒹굴고 논다”며 ‘진실 보고’를 했더니, 단체대화방에 “분위기 흐리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가 뜬다. 아들 녀석은 학교 가서 선생님에게 혼쭐이 나겠지. 이 도시는 공기만 지랄맞은 게 아니라 하는 짓도 죄다 ‘스모그스럽다’.

“베이징은 살아서 지옥이었다. 지옥이 아닌 삶을 사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그 극소수가 자기 삶을 지옥이 아닌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었다.” 어떤 소설 문장에 베이징만 넣으면 바로 딱 지금 상황.

중국 정부는 2008년부터 대기오염 문제를 해결한다고 설레발치더니, 대체 지금까지 뭘 한 것일까? 부패한 호랑이와 파리 새끼들만 잡느라 환경오염 따윈 돌볼 겨를이 없었나. 2014년 1월 베이징시 인민대표대회에서 왕안순 시장이 “2017년까지 스모그 문제를 해결 못하면 내 목을 잘라 보여주겠다”고 호언했던 것 같은데, 지금쯤 단두대에 목을 내놓고 있어야 하지 않나? 설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면 자기 손에 장 지진다던 이정현처럼 생까려고? 스스로 베지 못하겠으면 베이징 탈출하기 전에 내가 당신 목은 베고 가마.

이틀 전인가. 베이징과 톈진, 허베이성 변호사 5명이 이 세 지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환경보호에 법적 책임을 이행하지 않은 정부를 고소한다”는 내용. 허난성 정저우에 출장 갔다가 심한 스모그를 만난 한 남성도 현지 정부에 “내 마스크 값을 내라”는 소송을 제기했다고 한다. ‘목 자르겠다’던 왕 시장은 고소 안 당하나?

지금 베이징 스모그 문제를 해결하거나 견디는 방법은 대충 세 가지로 모인다. 첫째, 제발 바람아 불어다오. 둘째, 더 비싸고 좋은 마스크를 쓰고 각자 집에 공기정화기를 사는 것. 셋째, 외국 정상들이 대거 방문하는 국제회의가 자주 열리는 것(그런 날은 무슨 수를 썼는지 공기가 거짓말처럼 깨끗해진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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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올림픽을 전후로 2017년까지 베이징은 거의 최악의 스모그를 겪었다. 특히 2013~2017년에는 ‘스모그 엑소더스(탈출)’가 유행할 정도로 심각했다. 올해로 중국에서 산 지 20년째, 그중 베이징에서만 18년째 살고 있는데 그 기간에 나는 수백 번 ‘이주’를 고민했다. 맑은 공기와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여기’보다 좋을 것 같았다. 주변에 진짜 베이징 탈출을 한 사람들도 있었다. 중국 언론에선 이를 ‘환경이민’이라고 했다. 이는 한동안 베이징 중산층에 새로운 삶의 경향이 되기도 했다.

아들과 같은 반에 다니던 링링과 샤오밍은 각각 윈난 다리와 캐나다 밴쿠버로 이주했다. 베이징을 떠나면서 그들의 부모는 반 단체대화방에 각기 비슷한 말을 남겼다. “드디어 떠납니다. 결단을 내릴 수 있어서 기쁩니다. 베이징에서 더 산다는 건 하나밖에 없는 우리 아이에게 큰 죄를 짓는 것 같았습니다. 공기와 물, 햇빛은 인간의 생존에 가장 필수적인 것인데 베이징에서는 이것이 모두 오염돼 살 수가 없네요. 부디 남아 있는 여러분 건강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조만간 또 소식 전할게요.”

중국에서 가장 공기 좋고 아름다운 동네인 윈난 다리에서 객잔(숙박시설)을 운영하며 제2의 인생을 시작한 링링 가족은 이후 종종 그곳 생활 소식을 전했다. 양털 구름이 둥둥 떠다니는 그림처럼 파란 하늘을 머리에 이고, 대나무 바구니를 등에 걸머진 채 아이 손을 잡고 장 보러 가는 링링네 가족 사진은 ‘우리들’ 가슴을 방망이질했다. ‘우리도 떠날까?’

초등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캐나다 밴쿠버로 떠난 샤오밍은 ‘천재’가 되었다. 그 나이에 구구단도 제대로 못 외우는 또래 캐나다 아이들 사이에서 두 자릿수 이상의 곱하기 나누기를 할 줄 아는 샤오밍을 ‘수학 천재’로 우러러본다고. 샤오밍은 중국에서는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천재’가 되었다며 학교가 이렇게 재미있는 곳인 줄 처음 알았다고 한다. ‘학교는 곧 지옥’이라고 아는 아들 녀석은 샤오밍이 보낸 문자를 보여주며 말했다. “엄마, 나도 캐나다 가면 천재가 될 수 있어. 샤오밍은 중국 학교 다닐 때 나보다 훨씬 공부를 못했는데도 수학 천재라고 한대. 그럼, 난 천재왕이 될 거야.”

2017년까지 근본적인 스모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목을 걸겠다”고 했던 왕안순 전 베이징 시장은 약속한 해가 되기도 전에 다른 관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전히 베이징에선 스모그가 극성을 부리는데, 과연 누구 목을 베어서 잿빛 하늘에 제사를 올려야 하나.

그래도 예전보다 파란 하늘을 보는 날이 많아지기는 했다. 노력하긴 한 것 같다. 공기가 조금이라도 나빠지면 전날까지 안 불던 초강력 바람이 밤새 불고 예고치 않던 비도 갑자기 내려서 다음날이면 금세 공기가 좋아지고는 한다.

하지만 베이징은 지금도 여전히 ‘떠나고 싶은’ 환경 지옥, 스모그 천국이다.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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